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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을 보내며...

병역거부를 하고 나서부터 여러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각자의 표정이 있다. 모두 슬퍼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두 담담해하지도 않는다. 어떤 이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어떤 이들은 담담해하고 어떤 이들은 해석하기 힘든 표정을 짓는다.

 

병역거부자보다 더 힘든 건 그들을 보내는 가족들이다. 표정에서 그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보통 아버지들은 마지막까지 말이 없다. 아직도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모습이다. 그러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반면 내가 느끼기에 어머니들은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어머니고, 향후 일정을 캐묻고 수감생활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어미니다. 어머니들은 보통 아버지들 보다 쉽게 병역거부의 가치를 인정한다. 최소한 이해하려 애쓴다. 아무래도 경험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아버지들은, 동시에 가장이었고 군인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두고 두고 자식이 겪게될 사회적 불이익을 생각한다. 앞이 깜깜하니까 당장 해야할 일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병역거부를 긍정하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형량은 반으로 줄었고, 국회에서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고, 언론은 끊임없이 병역거부자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성과들에 만족해하면서 한 명 한 명 수감되는 모습에 무뎌지기도 한다. 각자 영리하게 수감생활을 꾸려가고 더 밝은 모습으로 나오리라 생각하며 편하게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오늘 또 한 명의 병역거부자 재판에 다녀오고 나서 지금 내 기분은 아주 예민하다. 그가 재판을 받고 형사의 손에 이끌려 가고 남은 사람들은 그를 보내며 걱정한다. 오늘 어머니는 냉정하게 다가올 날들을 준비하고, 아버지는 마냥 답답해하시고 이모는 시종일관 불안한 듯 수다를 떨다가 울기를 반복한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지만 그런 행동엔 익숙치 못하다.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왜 갇혀야 하나? 그들이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란?'

물론 그 이유란 열가지도 더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열가지 이유인즉, '인간에게 평화란 비현실적인 이상일 뿐'이라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매번 병역거부자들을 보낼 때마다 짜증과 분노와 무기력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안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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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최호근 지음, 책세상)

 

 

1.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20세기는 학살의 세기였다.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였다.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말들이다. 그 만큼 인류는 또 다른 인류를 상대로 많이 싸웠고, 많이 죽였다. 그래서 결국 국제사회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들을 마련했다. 그 제어장치는 한없이 미흡하고 그 미흡한 제어장치마저도 수없이 부정되고 있으나 제어장치를 강화시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반인도 범죄와 전쟁범죄 규정이 있음에도 제노사이드 범죄를 따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확히 제노사이드 범죄는 반인도 범죄 및 전쟁 범죄와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 책은 이런 학술적인 물음에 답할 목적으로 쓰여진, 논문같은 책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배어있는 분노의 목소리가 충분히 마음을 아프게 하고, 뒤돌아보게 만든다.

 

반인도 범죄나 전쟁범죄로는 규정할 수 없는 특정 집단에 대한 말살계획이 제노사이드다. 제노사이드는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정치적으로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집단학살이다. 국가 내지는 준국가 집단이 시스템을 동원해서 조직적이며 계획적으로 특정 집단을 제거하려는 계획이 제노사이드 범죄다. 21세기형 범죄인 동시에, 기계화된 인강성의 바닥을 보여주는 범죄다.

 

저자의 분류법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제노사이드 범죄는 다음과 같다.

 

1. 프런티어 제노사이드 - 예)북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학살, 영국의 테즈메이니아인 학살(호주)

2. 나치 독일의 제노사이드 - 유대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등 우생학에 근거한 무차별적 학살

3. 민족과 종교가 결합된 제노사이드 - 예)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인종청소

4. 혁명의 이름으로 일어난 제노사이드 - 예) 스탈린 치하의 정치집단 학살/소수민족 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

5. 식민화 과정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 - 예)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

6. 종족 분쟁과 제노사이드 - 예)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학살,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인 학살

 

대부분 얼핏 한 두번쯤은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 구체적인 정황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위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제대로 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2.

구체적인 상처를 대면하게 되었을 때 함께 아파하고 극복할만한 용기가 있을까? 상처를 외면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래서는 상처를 인정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언제나 이건 과거일 뿐이라고,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제주 4.3이나 보도연맹과 같은 한국적 경험이 제노사이드 범죄로 규정될 수 있는 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 역시 충분한 집단학살의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이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0년은 망각의 역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을 보고 듣고 끝내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변화는 시작된다.

지금도 집단적인 광기 속에서 자라나는 폭력의 씨앗을 본다. 황우석에 대한 집단적 열병과 맹목적인 지지 속에서, 4년마다 반복되는 월드컵에 대한 열광 속에서, 경제적/군사적 강대국을 꿈꾸는 집단적 열기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편한 심기 속에서, 문화적 교류현상이 아니라 국익의 수출로 인식되는 한류 열풍 속에서 그런 광기를 본다.

 

병역거부는 이러한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작은 행동이다. 나는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논리는 이미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부정되었다. 이건 실제 전쟁이 아니라, 단순한 훈련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당신이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그 훈련은 무엇을 전제로 한 훈련인가? 그저 나는 재수 좋게 빗겨가기만을 바랄 것인가? 아주 작은 일부터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걸 부정하고 냉소하다보면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아주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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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1

원래 장정일하면 마광수와 함께 90년대 '야한 소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작가라는 인식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가 작가 장정일에게 관심을 갖게된 것은 수감 도중에 우연히 '생각(행복한 책읽기)'이란 책을 읽게 되면서다. 장정일의 잡생각을 모아놓은 책인데 그의 생각도 흥미롭지만(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지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의 인생편력이 흥미를 갖게 만든다.

 

어릴 때 여호와의 증인이었고, 그 핑계로 중학교에서 학교생활을 마감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폭력 전과로 소년원에 갔고 그 곳에서 작가가 되기를 결심하며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는 무서운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다. 시인으로 등단해서 시집을 여러 편 냈으나 점차 소설로 업종전환, 시인처럼 노력 안하고 날로 먹는 인간들이 어딨냐며 강도높게 시창작을 비판.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외설시비가 일더니 급기야 유죄판결로 또 구속. 지금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범우사)'가 6권까지 발간 되었으며 2000년 '보트하우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소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호기심에 읽게 된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수감 중 내 독서편력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다섯 시면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 평생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던 그의 꿈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장정일의 독서일기 6'에서 '독선과 오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독서는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로까지 여겨진다'는 과격한(?) 독서관을 피력하기 시작한 그는 요즘 TV프로그램을 하나 맡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 인기를 타고 한 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의 소설들이 김영사 이름을 달고 다시 나왔다.

 

2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드는 궁금증이 몇 가지 있다.

장정일은 왜 SM이나 변태성욕을 끊임없이 소재로 다뤄왔을까? 

은행원, 소설가를 비롯해서 왜 항상 비슷한 캐릭터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할까?

글쓰는 행위는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그래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걸까?

 

장정일은 지루한 일상을 싫어한다. 또 그 일상을 유지하는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삐딱하다. 반체제적이라기 보다는 반사회적이다. 객기도 있었다. 그의 소설에는 도덕적인 저항 따위를 꿈꾸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항상 변신을 꿈꾸는 인물들이 나온다.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항상 은행원을 등장시키는 이유도 그런 욕망의 표현이다. 가난 속에 성장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 때문에 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그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소설가로 변신한다. 소설가는 글을 통해 끊임없는 변신을 꿈꾸는 존재다. 장정일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평범한 소설만 양산해내는 소설가들을 욕한다. 소설가의 욕망은 뭇대중의 욕망과 달라야 하는데 오늘의 작가는 아파트든 자동차든 대중들이 욕망하는 것을 똑같이 욕망한다고 한국 소설은 보나마나한 것이라고 욕한다. 변신, 또 변신. 장정일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된 테마. 그래서 '보트하우스'에선 카프카의 '변신' 모티브까지 차용해서 소설을 한층 더 난해하게 만든다. 타자기가 된 사람, 저울보다 더 정확하게 무게를 측정하는 사람 등등.

 

소설 '보트하우스'에서 애라의 생각을 따라가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되풀이의 연속, 그것이 지옥이다. 따라서 희망 또한 단순한다. 반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심지어 강남이 천국이라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반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복으로부터 우리를 가장 크게 구해 내는 건 사랑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또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고, 또 만지고 싶은 반복의 유혹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큰 희망이다

 

이리하여 그의 소설에는 성행위가 많이 강조되는데, 그것도 평범한 성행위 묘사는 별로 없다. SM과 변태성욕을 긍정하는 이유도 변신의 욕망 때문일까? 아무튼 그가 연애와 섹스의 가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생각'에 보면 소파에 연인과 누워 하루 종일 키스하는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섹스를 하는 순간에 순간적인 해방이 자주 이뤄지고, 섹스가 새로운 변신의 출발점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심지어 타자기가 된 여인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자판 한가운데 정액을 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섹스가 이제는 변신이라는 적극적인 행위 속에도 가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성적 욕망이 대부분 남성의 언어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하겠다.

 

3.

....

 

"화해와 통합은 당신의 관심사가 아닌가요?"

"그건 기업가들이나 정치가들이 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화해와 통합을 통해서 이득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진정한 작가는 화해와 통합을 획책해서 부정 이익을 챙기려는 집단에게 경고를 하는 한편 독자에게 깨어 있을 것을 권고합니다. 매개 없는 화해와 통합을 판매의 비결로 삼는 베스트셀러에겐 없는 덕목이지요...(중략)" (보트하우스,162페이지)

 

장정일은 단순히 삐딱하지 않고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이다. 사회에 대한 냉소와 반감도 자주 표현된다. 그렇다면 그는 체계적으로 저항을 해 볼 생각은 없는걸까? 아마도 그는 소설이 지나치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화해와 통합을 거스르는 일탈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행동은 각자의 몫이니까.

 

4.

 

이 쯤에서 왜 소설 제목이 보트하우스인지 말할 수 있겠다. 보트하우스에서 그는 비치파라솔 그늘 아래 긴 의자에 누워 얼음이 둥둥 떠있는 콜라나 마시며 아무 생각없이 사는 꿈을 꾼다. 그는 끝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끝맺었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에게 주문하는 이유는 뭔가?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그 노인처럼 거친 파도와 맞서라고 자신을 유혹해 달라고. 그래서 방치되고 있는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그가 건전한 시민의 독서관을 피력하고, 진보적 매체에 기고글을 쓰고, 책소개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건 제 나름의 노력을 시작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침대에 누워 평생 책만보는 편안한 인생은 이제 쫑난거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애초에 그런 생활이 안맞는 사람이 있다. 그런 생활이 잘 맞게 된다 해도 그 땐 이미 정체성마저 바뀐 후일지 모른다. 그는 아마도 후자를 택하겠지.(하고 생각한다) 다음 소설이 나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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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中에서

166

 

음 직장에서의 일이야... 보름 전의 일이지.... 유리상자 안에 앉아 있는데.... 도대체 어느 은행마다 잔돈을 교환하는 장소를 왜 유리 칸막이로 덮어씌워 놓는 건지 알 수 없어.... 하루 종일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어?.... 한 중년부인이 와서 깔깔한 만 원권 한 장을 내어놓으며 오천 원권 두 장으로 바꾸어달라더군.... 그래서 오천 원권 두 장을 창구 밖으로 내밀어주었지... 그런데 다시 천 원권 열 장으로 바꾸어 달라더군.... 오천 원권 두 장을 받고 보니 차라리 천 원권 열 장으로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그래서 고분하게 천 원권 열 장으로 다시 바꾸어주었어.... 그런데 그것을 받아쥔 그 자리에서 발도 한 걸음 떼지 않은 채 서서 다시 그 천 원권 열 장을 창구로 밀어 넣는 거야...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바라봤지... 그 여자는 굵은 목에 진주 목걸이를 몇 겹으로 둘러 감고 있었어..... 인도여자처럼 깊고 굵게 쌍꺼풀이 져 있었고.... 입술엔 붉은 입술연지가 칠해져 있었어.... 네가 상상해 봐.... 그녀는 천 원권 열 장을 내 창구 속으로 밀어 넣곤 다시 오백 원짜리 스무 개로 바꾸어달라는 거야....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녀에게 따지려고 했어...아니 따졌지...공손히... 손님 저는 바쁜 사람입니다... 그녀는 나를 동전 바꾸는 기계로만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어... 오백 원짜리 스무 개....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내 분노엔 대답하지 않았어... 개 같은 년.... 나는 이를 물고 그녀에게 오백 원자리 동전 스무 개를 내주었어.... 그러자 그녀는 다시 그걸 창구로 밀어 넣으며... 어휴, 나는 그년을 죽여버리고 싶었어.... 그런데 바로 내 뒤에서 은행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거야.... 뭘 생각했겠어,내가? .... 집 안에 득시거리는 동생들과 부모들의 찌들린 얼굴이 떠올랐지... 개 같지 않아?.... 나는 다시 백 원짜리 동전 백 개를 내주고... 연이어 오십 원짜리... 십 원짜리로 바꾸어주었어.... 만원권을 천 개의 십원짜리로 바꾸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 있지 않을지도 몰라.... 천 개의 동전주머니를 들고 낑낑거리며 돌아가는 그년의 뒷모습을 보았다면 말이야.... 그런데 그년은 내게 그것을 도로 밀어넣으며 만 원권으로 바꾸어달라는 거야... 옛날에 본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영화가 생각나더군... 사단체육대회에 나가서 상대 선수를 죽게 한 뒤 다시는 권투를 하지 않으려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권투를 다시 시키려는 그의 상관은 그의 결심을 바꾸게 하기 위해 기합을 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연병장의 한 귀퉁이를 삽으로 파게 하는 거였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그걸 다 파고 나자 그의 사관은 자신이 읽고 있던 신문지를 구덩이에 던져넣은 다음 다시 흙을 덮으라는 거였지.... 무용한 노동....기쁨 없는 노동.... 내 것이 아닌 노동.... 그처럼 가혹한 벌은 없는 거야....

 

 

 

궁금해서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검색해 봤다.

메인 카피는 '청바지처럼 꽉!끼는 가벼운 포르노그라피'

<싱글즈> 예고편을 보고 그저 그런 '야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대개 영화 광고는 핵심을 '오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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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1.

 

바자 피쳐 에디터 김경 인터뷰 모음집 제목이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디제이덕

 

2.

 

디제이덕, 혀가 짧아 국내에선 가장 잘 들리는 랩 때문에 애초부터 좋아했었다. 랩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내가 랩을 평가하는 기준은 첫째가 무조건 잘 들릴 것!! 

겨울이야기와 여름이야기는 나의 노래방 고정 레파토리.

제법 놀 줄 아는 날나리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L.I.E'같이 사회성 짙은 멘트를 날리며 돌아왔을

때도 의심을 전제로 한 애정이 겨우 생겨날똥 말똥이었으나...  국가보안법 철폐 문화제에

나와서는 '국가보안법이 뭔지 잘 몰라도 우리 가사 짤린 것처럼 검열하는 건 좋지 않다'는 멘트

를 날려 애정의 강도가 꽤나 높아진 것. 행사를 주최한 입장에서 문화제가 망하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인데, 어쨌든 디제이덕 이름값 덕분에 문화제는 대박이 터졌다. 거기에 아주 적절한 멘트

한마디에 녹아났던 수많은 사람들...

 

3.

 

그런 디제이덕에게 애증의 감정이 생겨난 것은 베이비 복스와 벌인 설전 때문.

힙합은 장르 특성상 가사말에 상당한 무게를 두기 마련. 게다가 비주류 장르라는 특성 때문에

대개들 자의식이 강하고 반사회적인 메세지도 자주 등장. 오죽하면 은지원도 자기가 아웃사이더인

양 늘 '은지원도 랩한다고...그 누가 뭐라해도 랩한다고' 강조하잖아. 게다가 엠씨몽은

'슈퍼맨이 되겠다던 꼬마 아이는 오늘도 세상과 ON and ON' 맞짱 뜨고 있다잖아.

그런데 못마땅한 것은 이 힙합 가수들이 대개 남자들이고, 경우에 따라 솔직함을 넘어 종종

마초 근성을 심하게 드러낸다는 것. 핫팬츠에 탱크탑 입은 댄서들이 부비부비 댄스를 남발하는

무대야 그렇다쳐도, 여성비하적인데다 돈에 심취한듯한 분위기는 최악. 그야말로 형용모순.

제 목소리는 내는 가수들일수록 밑바닥 정서가 강해서, 꼭 땡전 한 푼 없이 살아왔다고 하소연

하는데 곧 죽어도 맨날 압구정동에서만 논다. 배는 곯아도 차는 끌고 다니면서 클럽 다니고

여자애들 꼬셔서 놀고 즐긴다. 보일러 땔 돈도 없다면서 밍크코트 입고 다닌다. 압구정동에 있는

값비싼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면 그게 '서민적'이라고 생각하는 철없는 애들이다.

그런 애들이 투팍인지 뭔지 자기들이 신봉하는 가수를 표절했다고 베이비복스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놀아나는 이쁘고 무식한 년들 취급을 하더니, 급기야 '미아리 복스'라는 언어폭력까지

저지른 것.

마초 랩퍼들은, 남 욕하기 전에 온통 모순 투성이로 얼룩진 제 몰골을 들여다 볼 것.

 

4.

 

아무튼 인터뷰는 꽤나 재밌다.

 

김경 : 가사가 굉장히 사회비판적이네요.

이하늘 : 난 배운 게 별로 없어 비판적이고 그런 건 몰라요.

김경 : 가사가 방소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는데, 고쳐서 다시 심의에 응할 생각은 없나요?

김창렬 : 우리가 바꿀 놈처럼 보여요?

 

....

 

다음 인터뷰. 김창렬은 약속 시간에 늦어 나오지 않고 있다. 당황하고 있는 촬영팀.

 

이하늘 : 있으나마나 한 녀석이니까. 그냥 우리까리 하지.

..

이하늘 : 아무 생각 없는 애예요.

이재용 : 글쎄요. 창렬이랑 대화를 해본 지가 되게 오래된 거 같아요. 일단 걔가 약혼을 했잖아요.

아, 이 얘기 안 꺼내려고 했는데... 그런데 약혼까지 가려면 여자한테 얼마나 푹 빠져 있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하늘이 형하고 저하고는 좀 멀어졌어요.

...

이하늘 : 디제이덕이 여기까지 올 때 나란 존재를 많이 반영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나란 존재는 없어. 그랬으면 아마 솔로 앨범이 나왔겠지. 나 혼자는 의미 없고 혼자 절대 할 수도 없는 거거든.

그런데 솔직히 창렬이 없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재용이 없이는 못하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창렬이가 빨리 정신 차려서, 내 짐을 조금 덜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대놓고 이렇게 인터뷰할 수 있는 가수들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재밌는 애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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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뎅에게 보내는 편지

언제나 냉정한 듯하지만 때론 장난스러운 부르뎅. 그래서 가끔은 건조해 보이기도 하는 태훈이. 얼마 전 갑자기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 나를 놀라게 했던 부르뎅. 전쟁없는세상을 시작한 이후로 늘 곁에 있어서 서로 많이 알고 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게 더 많은 태훈이.

난 너와 용석이의 병역거부 이유서를 보고 지난 몇 년간을 돌아보았다. 병역거부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계속되는 일정에 쫓기던 그 때를. 반복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되지도 않은 답을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던 그 때를. 그래서 어느 한가로운 날 가만히 누워 자신을 생각하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고장난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던 그 때를. 내가 했던 말들을 되새김질하기 바쁘고, 내가 뱉은 말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혼자 헤매이던 그 때를. 그래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사람은 결국 개별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때를. 가끔은 불면증을 어쩌지 못해 생각없이 리모콘을 누르며 밤을 새기도 했던 그 때를. 어쩌면 인생은 항상 이렇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버거운 상대를 대하면 나가는 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때를.


착취된 피땀이 모여 누군가에게 부를 가져다주었고, 그 부가 권력을,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기를, 그리고 그 무기가 다시 슬픈 눈물의 사람들을 겨누고 있다는 너의 병역거부 이유서. 사상의 한 귀퉁이가 심각하게 무너졌을 때, 껍데기뿐인 병역거부자에 불과했다는 자기 고백. 너의 병역거부이유서를 읽으며 생각한다.

버려야 할 것들과 새롭게 받아들여할 것들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였던 그 때를. 때로는 겉잡을 수 없는 적대심과 분노로, 들끓는 승부욕으로, 거친 말과 배타적 태도로 살아왔던 그 때를. 

세심하게 보호받아야 할 너의 신념은 이미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너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은 널 병역거부자로만 검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때로는 너 자신이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편견의 장벽이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긍정보다는 냉소가, 대화보다는 침묵이, 관심보다는 소외가, 애정보다는 외면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완벽을 기대하면 상처받는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등지는 게 더 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난 오늘 네 결심을 축복해주고 싶다. 원래 값진 인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에게는 이 과정을 충분히 이결낼 만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한 너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긍정의 에너지가, 희망의 언어가, 평화의 기운이 너와 함께하리라 믿는다.

수감되면 종종 글로 찾아가도록 하마. 항상 건강하고 밝게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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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와 병역거부 토론회

한국종교, 스스로 길을 묻다

 

서구사회와 반대로, 한국 종교는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하고 다소 뒤늦게 병역거부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병역거부자 오태양과 김도형은 불교신자였으나 사람들은 병역거부와 종교의 관계를 심각하게 묻지 않았다. 병역거부 운동 초기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데도 병역거부를 했다는 사실만이 화제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발 앞서 생각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현역군인이 병역거부 하는 일도 가능하겠다고. 천주교나 기독교 신자가 병역거부를 하게 된다면 종교계 내에서도 병역거부 관련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리라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전자는 강철민의 농성으로 현실이 되었다. 군입대 뿐만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양심에 위배되는 부당한 행동을 강요했을 때 개별자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후자는 천주교 신자 고동주씨 병역거부가 계기가 되었다. 이제 종교계도 오랜 침묵을 깨고 발언하려 한다. 흥미로웠다. 한국 현대사에서 종교는 과연 제 역할을 다 했는가? 한국 종교는 국가안보와 국민여론이라는 장벽을 넘어 병역거부를 옹호할 수 있을 것인가? 토론회는 한국 종교 스스로 길을 묻는 자리였다. 그래서 열린 토론회는 <한국종교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자못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 토론회 전체 풍경(12월 12일 오전10시,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노회찬, 임종인 의원 축사, 발제자 2인 각각 30분씩 발제, 지정토론자 4인 15분씩 발제, 질의응답, 전체토론까지 4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회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고~고고~(자료실에 올릴 예정이니, 토론회 자료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회찬 의원 축사
 
 
이 늦어져서 이런 토론회들이 마련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병역거부는 군대문제라기보다 신앙, 양심, 사상의 자유 문제로 봐야한다. 다른 사람의 신념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차별, 억압의 상태 벗어나는 게 문명이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이 기본권으로서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타인의 신념 존중하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 최근 황우석 교사 논란을 보며 다른 생각, 다른 판단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을 보았다. 애국 이름으로 포장해서 다른 생각을 매도하는 데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차이를 인정 못하는 우리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다. 오늘 이 토론회가 그런 의미에서 유익한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함께 열심히 하겠다.
 

>>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임종인 의원 축사

 

입법운동 상황을 말씀드리겠다. 현재 국방위원 18명 가운데 9명이 찬성, 9명이 반대하고 있다. 구성은 열린우리당이 9명, 민주당 김홍일의원, 한나라당이 8명이다. 현재 한나라당 전원과 열린우리당 김명자 의원이 반대하고 있다. 얼마 전 국회 여론조사에서 65%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문안에 문제가 있었다. 여론조사 다시할 예정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무조건 반대한다고 보고 한나라당의 태도가 중요하다. 찬성측이 강제로 표결 밀어부칠 예정이 없다. 한나라당 설득이 중요하다. 최소한 표결 과정을 막지는 못하게 병역거부 관계자들이 박근혜 대표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토니 블레어를 비롯해 유명한 외국 정치인들의 지지의사를 받아볼 생각이다. 국내 유명인사 선언도 할 생각이다. 대만처럼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병역거부는 대체복무 입법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군대가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상황에서 군대개혁운동 역할도 한다. 군대는 바뀌어야 하고, 반드시 바뀔 것이다. 또 양심의 자유와 시민권을 확대시킬 것이다. 작년에 처음 입법 얘기했을 때 국방위원들이 다 ‘이게 무슨 소린가’했다. 이정렬 무죄판결 때도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훌륭한 판결이라고 했다가 당원들에게 엄청 비난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곧 되리라 생각한다. 종교인들이 도와줬으면 한다.

 

>>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


 

발제 1 - ‘보편적 인권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 그리고 종교의 역할’

 

이대훈(참여연대 협동처장, 평화학 연구자)

 

 

이 자리에 병역거부 운동을 해오시던 분들이 많으실텐데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고동주 씨를 비롯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는 기본인권의 문제다. 인권의 보편성, 불가침성을 적용해 볼 때, 병역거부권을 보장해주는냐 마느냐 하는 선택사항이 존재하지 않는 최소한의 권리 문제라는 것이다. 병역거부를 인권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예외성 인정할 수 없다. 가령 국가안보, 재정상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보장하지 않는 것은 사회가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도 의사표현의 자유로 보장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어떤 사회가 인권을 기본적인 사회운영원리로 삼고 있는가의 문제다. 정치공동체가 인권을 정치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문제다.

유엔 89년도 결의안이 중요하다. 양심의 자유 일반으로 확대 해석했다. 1998년 결의안은 ‘마그나카르타’라 불린다. 한국정부는 국제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헌법상 국제법 존중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인권 관련 국제법은 대체로 무시해왔다. 정상적 민주국가라면 이런 괴리가 없어야 한다. 강제사항이 없으므로 시민사회가 나서서 다양한 루트로 압박을 해야한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평화박물관’에 간 적 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병역거부자들이 탄광이나 산림노동을 하며 3~4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사진을 봤다. 이처럼 초기에는 극심한 처벌이 뒤따랐다. 허용한 나라조차도 매우 제한적으로 특정교파만 인정하거나 비전투 복무를 권장했다. 한국사회의 최근현황은 최정민 씨가 나와 있으니 생략하겠다.

끝으로 도전과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먼저 선택적 병역거부, 시민으로서 군인의 권리에 대한 문제가 있다. 불법무기사용, 부당한 명령, 민간인 학살 등 양심에 반하는 경우 현역 군인이 선택적 거부 할 수 있다. 병역거부는 집총거부를 넘어 양심의 자유 문제다. 여기에는 부당한 군사적 명령에 대한 거부권도 포함된다. 한국은 시민으로서 병사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전혀없다. 군인을 어떠한 시민으로 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군인의 시민권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 불복종 권리는 물론, 명령을 거부했을 때 구제절차도 사전에 교육시킨다. 반면 우리는 명령 불복종에 대한 이해가 없다. 국가명령에 대해 개인의 윤리적 판단권을 열워둬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군이 핵무기를 사용하려 할 때, 핵무기 사용은 국제법상 불법이므로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양심의 자유, 윤리적 판단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적용범위는 매우 넓다.
다음으로 최대장애물인 국가안보문제가 있다. 국가안보는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 모든 전문가가 해석의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가령 서해교전도 어떤 사람들은 국가안보 문제로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꽃게잡이(생계) 문제로 이해한다. 그 동안 소수 안보전문가들의 해석만을 추종해왔다. 안보 관련 해석, 토론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설득과정에 참여해서 안보논리의 독점을 깨야한다.

 

 

>>발제 중인 참여연대 이대훈씨

 


발제 2 - 한국 종교와 양심적 병역거부, '정통'과 '이단'을 넘어서

강인철(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발제문 자체가 매우 길다. 다 이야기 할 수 없으니 중요한 요점만 지적하겠다.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 주요종교의 대응방식(가령 군종장교 같은), 주류 기독교 특히 한기총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먼저 병역거부자를 배출한 세 종교(개신교, 불교, 천주교)의 전쟁에 관한 입장을 살펴보자. 천주교의 경우, 정의로운 전쟁은 사실상 현대 전쟁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교황청 역시 점차 평화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해서 공식적으로 병역거부 지지 의사를 표하고 있다. 개신교는 초기부터 평화주의 지향한 몇몇 교파가 있었다. 특히 WCC(세계교회협의회)의 경우 창립총회부터 전쟁교리를 비판하고 정의로운 전쟁을 극복하려 했다. 심지어 양심적 납세거부권까지 인정하고 있다. 천주교보다 훨씬 빨리 공식 결의로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 불교는 기독교같은 통일적인 중앙조직이 부재하지만 대체로 정의로운 전쟁을 긍정하고 있는 듯하다. 교리 상으로 평화주의와 혼재하고 있는 양상이다. 적어도 한국불교는 평화주의가 소수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렇다면 전쟁을 인정한다쳐도, 부당한 전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오늘날 선택적 병역거부 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1968년(베트남 전쟁 중)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미국 천주교의 경우 선택적 병역거부 문제를 적극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한국종교는 전쟁을 어떻게 바라볼까? 개신교 주류는 한국전쟁을 긍정했다. ‘성전’, ‘거룩한 전쟁(Holy War)', '십자군 전쟁’등에 비유하며 매우 호전적 자세를 보였다. 2001년 이후로 한국교회협의회(NCC) 중심으로 평화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쪽도 나타났다. NCC는 교리상 이유보다, 현실적으로 한기총과 복수가입해 있는 단체들 때문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강철민 농성 과정에서 이미 견해는 굳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불교가 가장 적극적인 종교세력이다. 적극적 입장 피력은 없으나 내부 반발이 거의 없다. 천주교는 발표 시기만 남아 있을 뿐, 공식적으로 지지한다고 봐야한다. 왜냐면 교황청의 공식 입장이 병역거부 지지인 상태에서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스스로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외견상 한기총 외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은 없다. 그럼 한기총은 왜 반대하는 것인가?

한기총은 이단과 국가안보 논리를 들고 있다. 그 기저에는 한기총의 전쟁이론이 놓여 있다. 한기총은 이라크 파병은 물론 추가파병까지 적극 옹호했다. 심지어 선제공격까지 운운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대북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라크 침공도 마찬가지로 불법적인 선제공격이다. 선제공격은 절대로 정의로운 전쟁에 포함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익이나 한미동맹 따위도 정의로운 전쟁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결국 한기총은 성전이나 십자군 논리를 이용해서 전쟁을 합리화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나 종말론 같은 교리를 이용해 매우 호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내부의 배신자를 향한 처벌이 가장 가혹했다. 정통과 이단을 둘러싼 처절한 싸움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한기총은 심지어 이단을 향한 국가폭력까지 정당화한다.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병역거부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단과 배교를 강요하고 강력한 국가폭력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예수재림교는 핵심교리를 수정하기까지 했다.

한국종교가 강경한 태도를 취할수록 내부 신자들은 열광하겠지만, 전체 상황을 볼 때 외면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발제 중인 강인철 교수


 

지정토론

 

지정토론1 - 천주교 / 박창균(신부, 창원 성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지정토론2 - 불  교 / 전재성(한국빠알리성전협회 대표, (사)작은손길 이사)
지정토론3 - 개신교 / 정종훈(목사, 연세대 교수)
지정토론4 - 시  민 / 최정민(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지정토론자 발제는 생략합니다.

 

>>지정토론 발제자들.. 왼쪽부터 박창균씨, 전재성씨, 정종훈씨, 최정민씨

 

 

질의응답 및 전체토론

 

- 정종훈 : 이대훈 선생에게 질문. 양심적 병역거부가 애국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애국과 맞물릴 수 있지 않을까? 강인철 교수에게 질문. 대체복무제가 시행되면 종교가 먼저 그 과실을 누릴 수 있다는 발언은 집단적 이기주의의 위험이 있지 않은가?

 

- 인터넷 신문 ‘참말로’ : 병역거부에는 꼭 평화주의같은 입장표명이나 절차가 있어야 하나? 그냥 병역거부면 안되나?

 

- 청중 : 강인철 교수에게 질문. 종교단체의 경우 자신이 속하는 단체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어 유리하다는 주장도 그렇고 지나치게 교파별 분석에 신경쓰다보니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집단적인 결론만 내린 게 아닌가? 시민과 종교인은 별개의 인간인가? 정종훈 선생에게 질문. 진정한 애국이란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전체에게 질문. 인터넷 신문 참말로의 질문에 동의한다. 소위 병역거부와 병역기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식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기피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 사회자 : 패널들이 각 종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토론회 관례상 이렇게 분류한 것이다. 오늘 질문이 날카롭다.

 

- 이대훈 : 청중에게 답변. 현재 상황에서는 병역기피자에게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자살과 사고사 등등 일반적으로 군대 안보내려는 심리를 이해한다. 과도하고 비효율적인 군대를 개혁해야 한다. 모병제도 토론 가능하다. 병역거부자와 기피자가 칼같이 나눠지지 않는다. 아무튼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기피자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심’은 가치관의 문제다. 평화주의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기보다 어떤 상황을 강요받았을 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구체적 상황이나 명령을 요구받았을 때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무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쪽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각자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자체로는 존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병역거부자는 어느 나라에서나 소수였다. 다른 생각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정종훈 선생에게 답변. 애국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는 국가간 무역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 시민권의 문제가 핵심이다. 일국 시민권은 이미 다 해체되어 가는데 약자들에게만 일국적인 시민권을 강요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에게는 사실만 모든 권리를 주고 있지 않나?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어떤가? 애국을 조건으로 정치공동체를 성숙시키는 시대는 지났다. 그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가 문제다. 일단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

 

- 정종훈 : 이대훈에게 답변. 병역거부자들이 매국노라는 비난을 듣는 게 안타까워 애국이란 표현을 썼다. 애국과 애국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 ‘네 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다. 네 이웃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나라사랑에서 인류에 대한 사랑까지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듯이 올바른 의미에서 나라사랑을 한다면 인류 공동체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화실천이나 보편적 대의와 융합되는 나라사랑을 말한 것이다.

 

- 강인철 : 박창균에게 답변. 90년대 이후 한국 종교는 생명운동에 주력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전쟁문제는 분리해서 사고한 게 문제다. 풍요로운 생명 담론이 개인의 문제로 탈정치화되면서 약자들로부터 멀어졌다. 이제 종교가 전쟁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운동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 번 토론회의 계기를 제공한 고동주씨, 천주교 신자 최초로 병역거부를 했다. 후원회 사람들과 함께 토론회를 경청하고 있다.

 


- 박창균 : 12월 5일 정평회의에서 고동주 문제를 논의했다. 공식입장을 정리하자고 정식 안건으로 요청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가 거부감을 많이 주고 있으니 대체복무 도입과 고동주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 강인철 : 비록 부담스런 용어 사용을 피했다고는 하나 중요한 진전이다.
정종훈에게 답변. 평화교리 교육의 중요성 공감한다. 아울러 신학계 내에서 한기총 계열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토론회를 자주 연다면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
청중에게 답변. 어차피 지금 최대 걸림돌은 한기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집중 비판을 한 것이다. 천주교는 찬성할 수 밖에 없다. 공식 입장이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당분간 계속 침묵할 듯하고 NCC는 찬성입장이다. 한기총의 태도 변화 내지는 지속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와 관련해서 한국 종교가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미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다. 좀 더 대체복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외국 사례처럼 판정절차도 점차 기계적으로 갈 것이다. 아직은 판정절차 논의가 부족한 상황인데 병역거부 운동 초기라 그렇다. 결국엔 누가 누구의 양심을 보증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처음엔 민관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을 뽑아 병역거부 판정을 내리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권위있는 종교인의 신원보증같은 방식으로 점차 간소화, 기계화 될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권리가 확장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독일의 경우도 이제는 모병제 논의가 진행 중인데 모병제를 할 경우 대체복무가 감당하고 있는 복지분야 재정과 인원을 메꿀 방법이 없다. 대체복무는 아주 싼 비용으로 사회복지 요구를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다. 이 정도로 대체복무 효용이 높다는 게 증명된다면 점차 인정되는 추세로 갈 것이다.

- 사회자 : 오늘이 종교계가 모인 두 번째 자리다. 움츠려 있는 종교계가 나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도 천주교 신자이고, 인권운동 한 지 얼마 안됐는데 모든 문제의 대척점에는 항상 종교인들이 있어 씁쓸하다. 너무 민망할 때도 많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내부 변화와 성찰이 있어야겠다. 그런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 오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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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이후(기고글)

또 이사를 했다. 메가패스를 다시 깔았는데 모뎀을 바꾸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우리집 컴퓨터는 악성 스파이웨어와 바이러스 놀이터가 되었다(고 짐작할 뿐-.-;;). 결국 포맷했다. 여기는 PC방이다. 다시는 PC방 신세 안 져도 될 줄 알았는데 역시 바깥세상은 나름대로 험하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을 타는데 환승역을 못 찾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엉뚱한 출구로 나와서 헤매기도 했다. 너무나 빠르게 걷는 사람들, 너무나 계획이 많은 사람들, 너무나 돈 욕심이 많은 사람들, 챙겨야 할 관계가 너무 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난 당분간은 이렇게 어리버리 하겠지. 곧 그마저도 적응이 되겠지. 그래도 나오니까 참 좋다. 이 맑은 공기, 푸르고 높은 가을하늘은 정말이지 매력 그 자체다. 적응이 빠를수록,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 아름다운 것들도 잊고 살게 될까? 솔직히 사람에 대한 매력은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이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게 될까?


구치소와 군대는 비슷한 면이 많다(고 짐작할 뿐-.-;; 군에 다녀온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까). 본인의 선택과 무관한 집단생활, (소위 짬이 쌓여) 갈수록 편해지는 위계서열 구조, 수많은 벽 앞에서 자포자기하게 되는 심정.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들 끼리 집단생활을 하는데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공간이 너무 좁은 게 결정적이다. 3평도 안 되는 공간에 7명까지 들어온다. 다리가 겹치는 건 둘째 치고 재수 없으면 어깨도 못 펴고 자야한다. 그런데도 화가 안 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런데 그 좁은 공간에서 서열이 높은 사람은 조금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구조가 그런 식이니 딱히 누구에게 화를 내기 애매할 때가 많다. 이럴 땐 ‘그러니까 감옥이지 달리 감옥이냐’는 운명론적 사고가 싹튼다. 사람들과 1:1로 얘기를 해보면 각자 불만이 다 있다. 특히 누구 누구는 이래서 재수없다는 식의 감정을 다 가지고 있다. 1:1로 수다떨기가 서로 맺힌 감정을 푸는 데 효과적일 때도 많다.

갈등을 무마시키는 가장 큰 무기는 위계서열. 일단 이 구조에 적응하려면 처음엔 고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인내한다. 더러 불만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보려 하지만 토론에 익숙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남성들만의 세계라 더 거칠다. 가끔 주먹다짐도 벌어지지만 대개는 폭언으로 끝난다. 징벌을 받으면 자기도 손해니까. 교도관들도 어지간하면 말로 해결하라 하고. 그 다음으로 시간이 지나면 나도 곧 서열이 올라간다는 기대심리가 생긴다. 기대심리는 웬만한 불만을 참게 만든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감옥 생활은 조금씩 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만큼 익숙해지기도 하고 대처방법을 터득해가니까. 사람들은 위계질서가 가하는 폭력도 두려워하지만, 그 구조에 적응 못해서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군대, 회사, 학교, 감옥... 이 세상에 많은 것이 얼추 비슷한 방식으로 굴러가겠구나 생각도 든다.


처음엔 굴욕감도 조금 있었다(그래, 지나고 나니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 가끔은 정말 진저리나도록 사람이 싫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냉정해지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가 될 때도). 뜻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 나중엔 점점 늘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너무 안 가더라. 도 닦으러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온갖 수단 다 동원해서 제 입맛에 맞출 때까지 저항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그리 간단한 건 아니다. 난 여러 가지 태도를 두루 고려해서 적당히 잘 지낸 거 같다.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상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하고. 시스템을 알고 나니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잘 지냈다. 서로 조금은 들어주려는 노력도 하고, 더러 사소한 것들은 배려도 해주고. 평범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모아놓으면 누구라도 예민해질 수 밖에. 이건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동하는 사람들하고 있어도 반드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들도 많았다. 요컨대 인간관계의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걸 순응이냐 저항이냐 하는 식으로 사고하는 건 좀 자신을 지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생각을 바꾸니까 좀 편해졌다. 무리 가운데는 꼭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개개인마다 사고방식의 차이가 많이 난다. 무조건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면 더러 통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는 생활에 적응하더라. 안 그럴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했던 거 같다. 조금은 달라 보려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더러는 오래 살다보면 정들기도 한다.(이건 참 신기한 발견이었다. 친구도 별로 없는데...) 결정적으로 자존심을 상할 정도로 거친 사람들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자존심이 다쳤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 만큼 거친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이 생활이 잘 안 맞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여기서 바뀐 생각이 또 하나 있다. 원래 난 공무원을 싫어했다. 국가는 자본가들의 위원회고, 공무원은 그 위원회를 떠받치는 벽돌같은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 역시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박봉을 탓하고,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고, 내집 마련 생각에 가슴 설레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려고 주식투자에 목을 매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 내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들. 정치적인 문제를 두고 입장을 가르면 더러 같은 편에 서는 경우도 많다.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교도관은 공무원 중에서도 가장 막다른 선택이라는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사람은 원체 복합적인 존재니까. 무엇보다 1:1로 만나면 그들 역시 다양한 감정을 가진 인격체다. 그러니 공무원이라는 집단을 묶어 생각하지 말고 각 개인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부분에서는 묘한 인간적 유대가 생겨나기도 한다. 아주 미세한 연대의식이랄까? 참 외로운 사람들 많더라. 무슨 책이었었나? ‘상대방에 대해 너무 완벽한 걸 요구하면 자신도 상처받는다’는 말을 보았다. 자신이 완벽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걸 인식하면 할수록 상대방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되는 거 같다.


처음에 병역거부를 결심했을 때는 형량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워낙 의지가 남다를 때였으니. 당연히 3년형을 예상했다. 출소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부터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갔다. 짐작컨대 군에 입대한 사람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3년형을 받았다면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해서 이만큼 온 거라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작은 변화도 그 과정을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벅찬 감동인가!! 1년이 가까워오면서 자주 구치소를 배경으로 꿈을 꿨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여러 번 등장했다. 자고 일어나면 멍한 상태에서도 그 꿈 때문이 기분이 무지하게 찝찝했다. 1년 6개월에 가석방까지 받아서 나왔으니 참 다행이다. 이 좋은 가을에 나와서 참 재수좋다.


GP 총기난사 사건 때, 리셋 증후군이란 말이 사회화되었다.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에 익숙한 신세대들은 삶도 언제든 리셋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철없는 행동을 벌인다는 식이다. 정말 속편한 논리다. 온라인 게임 수출국이니, IT 최강국이니 자랑하다가도 무슨 사건만 터지면 애먼 곳만 두드린다. 관련이 없진 않겠지. 그렇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존재냐? 사회적 책임은 생각도 않는 한심한 사람들.

출소를 앞둔 시점부터 리셋 증후군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봤다. 이 시기를 나는 리셋시키고 싶은건가? 처음엔 뭔가 의미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이런 저런 계획을 잡고 바깥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건 단절의 시간임이 점점 더 분명해져가더라. 혼자 견뎌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마음을 콩 밭에 두고 안에서 잘 살기는 힘든 노릇이다. 한 두 달이면 가능하겠다. 그렇지만 1년이 넘는 시간은 그런 식으로 지내기 힘들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야말로 자연스레 빵잡이가 되었다. 다들 그렇듯이. 그러면서 점점 지루함에 지쳐갔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잘 지냈다. 마음 속으로 자신에게 ‘넌 참 잘해냈어’라고 한마디 해주고, 밖에서 격려해준 사람들에게도 ‘참 고마웠어’라고 한마디 해주었다.


그 시간을 리셋시킬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많은 걸 배웠다느니, 자유로운 공기와 푸른 하늘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느니 그런 말들을 할 수도 있겠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몸 버리고 마음 상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저 난 지금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게 쉬고 싶을 뿐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야할 일들이 파도처럼 몰아치리라. 그러기 전에 마구 쉬어보자.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을 어이없는 듯 쳐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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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강철민의 행동이 남긴 것

강철민의 행동이 남긴 것



1.  현재까지 경과


2003년 7월 7일  강철민 군입대

       파병반대를 생각하며 군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11월 17일 백일 휴가

       11월 18일 신문 기사를 보고 염창근 씨(최근 이라크전 파병 반대를 이유로 병역거부)와 연락

       11월 19일 염창근 씨를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해오던 사람들과 만남.

       11월 21일 휴가 마지막 날, 파병반대 병역거부 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이등병의 편지' 발표.

                  어머니, 삼촌 상경 및 부대 복귀 설득

                  KNCC 인권위원회에서 파병반대 농성시작

       11월 22일 0시 부대 복귀 시한 경과                  

                 스물두번째 생일축하 잔치

       11월 23일 계속된 지지방문자들과의 만남, 언론인터뷰

       11월 24일 향후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서 강철민, 변호인단, KNCC, 지원단 사람들과의 회의

                 자발적인 강철민지지 문화제 시작 <심봤다! 강철민>

       11월 25일 <심봤다! 강철민> 2회, 촛불집회 시작

      11월 26일 이등병 강철민씨 향후 일정및 종교 시민사회단체 의견 발표 기자회견

             <노무현대통령께 드리는 두 번째 편지 발표>, 청와대 면담을 위해 평화행진 계획 발표

     11월 27일 3차 촛불시위 및 문화제

     11월 28일 11시 기자회견

               <저는 파병반대의 길을 계속 걷겠습니다>

                12시 <강철민과 함께 나누는 평화의 식탁>

                1시  기독교 회관앞 약식집회

                2시 “강철민과 평화를 위해 걷자” 행진 시작

                2시 10분 경찰과 대치

                2시 40분 수방사 헌병대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

     12월 12일 강철민 씨 첫 공판 - 광주 31사단

               강철민 씨 “ 파병 철회때까지 병역거부할 것 ”, 군 검사 징역 3년 구형

     12월 27일 강철민 씨 선고공판, 실형 2년 선고

     12월 31일 항소, 육군교도소로 이감


※ 군사재판은 2심까지 밖에 없으며, 강철민 씨는 현재 육군교도소에 있음.

주소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이황3리 사서함 900-10 (우편번호 467-909) 강철민 앞



2. 농성과정


지난 해,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반전운동이 크게 성장했다. 역사적으로 반전운동은 가장 많은 사람들을 저항의 광장으로 불러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으로 시작되었던 68년을 전후로한 전세계적인 저항을 되새기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대대적인 규모의 반전시위는 국익과 힘의 논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반전 운동이 들끓었던 유럽 역시도 이라크 전쟁이 가져다 줄 국익을 계산하는 정치인들의 사고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었다. 반면 이전과 다른 저항의 형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다른 한 편으로 끈질기게 평화를 위해 활동할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늘어간다는 점에서 2002년의 저항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강철민을 계기로 뭉쳤던 농성단이 그러한 변화의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자발적인 의지들이 합쳐진 농성 프로그램, 평등하고 민주적인 농성단 운영,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소통과 홍보, 평화적인 수단의 행진과 다양한 저항방식들 등등. 몇 달 전을 생각해보면 강철민 농성장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슈들로 농성이 곳곳에서 진행되었었다.

우리들이 농성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민주주의, 자발적 의지, 그리고 진심어린 행동들이었다. 우리는 강철민의 양심에 진심으로 동감하고 함께 행동하려고 했다. 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소외되거나 단순히 지지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의 주체가 될 때 농성이 참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 때로는 의견의 충돌이 없을 수 없었고 그것을 시시각각으로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내는 일이 항상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농성을 마무리 할 때 한총련의 조직적 개입으로 함께 토론해서 냈던 결론이 번복되고 다시 재번복 되었던 경우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또 아무리 지도부 없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농성장 내에서의 지도관계와 위계적인 서열은 항상 문제가 되었다. 임시로 구성된 지원단 집행체계는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언론과 접하고, 더 많은 일이 몰리는  사람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항상 운동의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수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강철민 농성은 매우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길 것이다. 병역거부자, 아나키스트, 문화 활동가, 평화인권 행동가 등등 다양한 이들이 농성에 함께했으며 이들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이전 대중운동의 주류에서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조직적으로 사람을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되며 다양한 활동들을 만들어냈던 강철민 지원농성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매일 문화농성단이 직접 기획하고 홍보해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던 저녁 문화제와 촛불집회, 마지막날 장미꽃을 들고 청와대로 향했떤 평화행진은 아마도 내 인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3. 전쟁과 선택적 병역거부


양심적 거부자들은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양심에 따른 거부를 수행하는 동기에 따라 종교적 거부자(religious COs)와 세속적 거부자(secular COs)개인적 혹은 정치적 동기에 따른 거부자들)로 분류될 수 있으며,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신념의 범위에 따라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보편적 거부자(universalitic COs), 특정 전투에 반대하는 선택적 거부자(selective COs) 특정 무기를 거부하는 임의적 거부자(discretionary COs)로 나뉜다.

선택적 병역거부는 20세기 대규모 전쟁으로 때로는 아주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기도 했으며,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저항들을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선택적 병역거부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된 지 채 몇 년 되지 않았고 반전운동이 본격화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저항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나고 영향을 주었다. 반전운동의 대중적인 성공 이후로, 한국군이 파병되어 침략자의 일부가 되는 순간 선택적 병역거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그리고 실제로 강철민을 통해 그러한 생각이 현실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차 세계 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냉전이 시작되었고, 자본주의는 이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이나 공황을 겪지 않고 20년간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역설적으로 전쟁을 통해 자극받은 과학기술의 발달은 마치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듯이 보였으며,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타협으로 자기 지분을 높이는 법에 익숙해졌다. 상대적인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모두가 텔레비젼과 전화를 소유할 수 있는 풍요의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베이비 붐1)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 되었을 때 불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대학은 이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져서 수많은 도시에서 대학생 수가 10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비좁은 강의실과 보수적인 커리큘럼, 안정을 선호하는 숨막히는 기성제도, 성적 편견, 권위주의, 무기확장(특히 핵무기), 군사주의와 전쟁으로 점철된 세계. 불만은 점점 거칠어졌고 젊은이들은 락음악에 열광하며 프리섹스를 즐기는가 하면 종종 마약을 애용하기도 했다. 자신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기성언론에 맞서 지하언론으로 맞섰으며 점거를 통해 저항을 표현했고 수만개의 꼬뮨을 만들어 기성 가치관에 맞섰다. 학생운동은 순식 간에 급진화되었고 폭발적인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었다.2) 히피문화가 다수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좀 더 자유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저항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폭발하였다. 젊은이들은 전쟁을 통해 기성의 삶의 가치 전반을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일상적으로 감염되어 있는 군사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백일몽으로 끝난 꿈같은 나날들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열정을 통해 보게 된 세상의 부조리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적어도 학생들은 점증하는 전지구적 군사화, 일상적 전쟁의 위협, 대학과 군수산업의 관계를 바로 보게 되었으며, 그에 저항하는 방식을 새롭게 찾아냈다.

1965년부터 미국의 지상군이 베트남에 파견되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토론회(teach - ins3))를 통해 동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적인 반전행동에 나섰다.4) 특히 반전시위가 폭발적으로 전개된 계기가 된 것은 대학생들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대폭 철회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이었다. 1966년 2월에 병무청장 루이스 허쉬(L.B. Hershey) 장군은 모든 남자 대학생들에게 ‘병역시험’을 보게하여 성적이 낮은 순으로 징병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허쉬 규정’을 발표했는데 이 발표는 미국 대학생들의 정부에 대한 반감,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필립 베리건(P. Berrigan) 신부는 뉴포트의 징병사무소를 습격하여, 징병 서류에 피를 쏟아붓는가 하면 대학생들은 저항의 표현방식으로 공개적인 집회에서 징병카드를 모아 태우는 방식으로 전쟁참여 거부의사를 표현하였다. 이렇게 해서 기소 당한 사람이 20만 9,517명, 징역은 3,250명, 집행유예가 5,500명, 불기소 처분이 19만 7,750만명 이라고 하니 저항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간다.5) “베트콩들은 우릴 깜둥이라 부르지 않는다” “사람 죽이기 위해 1만 마일 날아갈 생각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알리는 알리는 1967년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한 편, 반전가수로 잘 알려진 존 바에즈는 반전콘서트를 허락하지 말라는 보수세력의 압력에 맞서 워싱턴 파크 앞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무료공연으로 맞서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다면, 혹은 ost를 들은 사람이라면 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학생들은 대학과 군수자본의 관계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이에 맞섰다. 국방부나 기업의 후원 하에 진행된 생물학전, 화학전 관련 연구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착취적인 투자를 지원하는 연구 등이 밝혀졌고, 대학이 이러한 현실의 모순을 만들어내는 데 깊이 협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은 저항했다. rotc 건물을 점거하거나, cia나 군수회사6)를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대다수 학생들은 ‘정의롭지 못한 침략전쟁은 거부한다’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대대적인 선택적 병역거부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여러 가지 형태의 선택적 병역거부가 계속되고 있다. 침략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침략전쟁에 항의하는 선택적 병역거부자들이 싸우고 있다. 미국은 현재 약 270만명의 남성 및 여성들이 현역병이나 예비군으로 복무하고 있다. 자신의 양심상 이라크 전쟁에 파견되기를 거부한 군 복무 장병들의 규모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집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반전 단체들은 지난 1월 군인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며 비상 전화망을 통해 상담을 타진해온 전화 건수가 3천500통에 달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에 대한 학살에 항의하는 병역거부자들이 다수 있다.7) 이들과 마찬가지로 남과 북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동족에게 총을 들 수 없다거나, 혹은 한국 정부가 파병을 하는 상황에서 이에 저항하는 행동으로 징병을 거부하는 것 역시 적절한 의사 표시 방법의 선택적 병역거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선택적 병역거부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선택적 병역거부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전쟁과 군대 자체를 인정하면서 선택적으로 특정 전쟁을 반대한다는 신념은 매우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정된 어떤 지원이나 법률적 대안을 마련하기도 매우 힘들다. 그 때 그 때 상황논리, 여론, 정치권 동향 등이 해결방향을 결정 지을 수 밖에 없다.


4. 재판 그리고 이후 활동


현재 강철민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농성단은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지지 서명을 받고 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농성단이 무죄를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유인물에서 발췌, peace.gg.gg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헌법 제5조 1항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조항에 따르면 대통령(군 최고통수권자)는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 위헌적 행동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우선한다. 더욱이 군형법 상 항명은 ’정당한 명령‘에 위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말하는 데 여기서 정당한 명령의 기준은 무엇인가? 최소한 헌법은 준수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정당성이 성립된다. 강철민의 경우는 헌법에 따르자면 오히려 법을 철저하게 준수한 것이 되는 셈이고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기에 되는 것이다.


2. 1998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결의안 77호를 통해 “복무중인 군인일지라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현재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미군 병사중 1700명이 휴가를 나와 복귀를 거부하고 있으나, 쉽게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3. 2차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독일군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유죄선고를 받았다. 국가가 학살과 침략행위에 참가하고 동조할 때 개인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박정희,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이에 저항하는 군인이 있다면? 광주시민을 진압하려는 명령을 거부한 군인이 있다면? 나치에 협력하기를 거부한 군인이 있다면? 거꾸로 어쩔 수 없는 명령이었다고 하나 이러한 행동에 동참했을 때는? 역사적인 평가는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 역시도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고 공격해 들어왔다. 우선 이라크 전쟁이 침략전쟁인가 하는 규정부터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철민이의 경우 직접 파병을 요구받은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공격은 여기에 집중되었다. 철민이는 한국군대라는 조직의 결정에 동참할 수 없으며, 한국군대가 그러한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단 하루도 그 조직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모든 결정에 100% 동의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행동에는 100%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강철민은 인간이기 이전에 군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군사법정은 오만한 태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친구에게 진 빚을 갚는 편이냐?’, ‘미국이 한국전쟁 때 얼마나 참전했는 지 아느냐?’, ‘모르면 사지선다형으로 물어볼테니 답해라.’ 등등 재판부가 쏟아내는 말들은 하나같이 훈계조다. 검사는 멍청히 서있고 중간에서 냉정하게 사태를 평가해야 할 재판부가 흥분해 있는 상황. 이 한심한 상황은 그나마 여호와의 증인들이 재판을 받을 때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편이라고 한다. 판사는 시종일관 철없는 애를 꾸짖는 어른의 태도처럼 오만했다. 자신의 친미적이고 호전적인 군인정신을 가르치려 들었는지 방청석에는 억지로 끌려온 이병들이 꼿꼿하게 앉아(정확히 말하면 앉혀져) 있었다. 한심할 뿐이다. 처음 군사법정에 섰다는 변호사도 이런 재판부의 강압적인 태도에 매우 놀란 나머지 최후변론에서 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현재 강철민은 홀로 외롭게 군대와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이런 국가기관들 못지 않게 힘든 것은 사람들의 편견과 싸우는 일이다. 국가주의, 군사주의적 편견들. 인간이기 이전에 군인이 되라는 요구,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있다는 발상, 소영웅주의로 치부하려는 냉소와 조소. 그러나, 면회에서 직접 본 철민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밖에서 농성단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뜻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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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연 때 쓴 글

1. 교양(혹은 지성), 대화


5월로 기억합니다. 광운대에서 진행되었던 김규항 씨 강연회 갔었습니다.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가 으레 그렇듯이 딱히 이렇다 할 제목을 잡기 어려운 난상토론식 강연회였습니다. 굳이 내 나름대로 제목을 붙이자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정도가 가장 적당할 듯 싶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이 남는 대목은 교양과 지성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무척 성실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민족이나 국민국가와 같이 거대한 집단을 사고할 때는 매우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만큼 집단이 거대해질수록 진짜 잘못된 것과 올바른 것을 구분하기란 더 힘들어집니다. 사회 모순을 덮어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쓰는 말은 ‘국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흔히 엄숙하고 점잖은 태도로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과 형식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교양 있고 지성 있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양 혹은 지성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을 볼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9월 12일,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로 스물 다섯 해를 살아오며 여기 저기서 만났던 기억 속의 사람들과 연락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더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기뻐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 미안해하며 하고 싶은 말이 턱밑까지 올라와도 참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조용히 후원인으로 가입해서 남모르게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 내가 너를 끌고라도 군대에 보내겠다는 옛친구, 인터넷을 보고 잊었던 별명을 상기시켜가며 애석해하는 친구, 당장에라도 군대에 가길 바라는 부모님...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주를 이룹니다만 종종 이런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존경스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주위 후배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경우에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반면, 주로 인터넷과 서명운동 과정에서 만나는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대화 파트너입니다. 이들은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털어놓습니다. 그래서 종종 흥분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병역거부에 대해서만큼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병역거부로 인해 감옥을 가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증오하게 될 때 나는 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세상에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 빈곤과 모든 불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인류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독재정권도 ‘한국식 민주주의’를 말하고 부시정부도 ‘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으니까요. 누가 혹은 무엇이 진정으로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방식을 바꿔가며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언제나 모든 행동에는 명분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평등, 평화, 자유, 민주, 인권이란 이름 아래 온갖 불평등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수많은 장벽에 부딪칩니다. 양심은 종종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거대한 집단과 부딪칠 때,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이나 가치관과 부딪칠 때 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국가, 민족, 국민, 안보, 군대, 남성/여성 등 거대한 담론들과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그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글로 대신하고 진심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난 뒤에는 진정으로 우리가 함께 비판하고 뜯어고쳐 할 대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평화와 인권을 말하고 싶습니다.



2. 결심하기까지


우리 나라에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양심수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예비병역거부 선언까지 잇따르면서 전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상식이 되어 버린 이 문제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나 역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오태양 씨가 공개적으로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금기에 도전했고, 또 다른 젊은이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시민, 사회, 종교단체들이 모여 연대회의를 구성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전면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 역시 이들과 함께 행동해 왔습니다. 한 편으로, 911 테러 이후 탈냉전 이후 새롭게 조성되는 전쟁 분위기는 한국에도 깊게 영향을 미쳤고 이와 때를 같이해서 다양한 형태의 반전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국가, 민족, 계급이나 자유, 민주, 평등, 인권과 같은 말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게 되고 때로는 사회가 강요하는 통념들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언제나 동세대 청년들과 맞서야만 했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행된 수많은 폭력 앞에 때로는 무력해지기도 했습니다. 작은 권리 하나 찾으려고 나선 싸움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아파해야 했고,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나 상식처럼 받아들여져서 무덤덤해지기도 하고 내 마음 속 깊이 들어앉은 관성에 놀라기도 합니다. 집회에 나가 졸기도 하고, 빨리 행진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거의 반사적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가 왜 그리 많았는지. 요컨대 나에게 운동은 일상적인 삶이어야 했고, 그것은 거대한 권력보다 때로 타성에 젖은 자신과 싸워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매번 절대 순응하고 타협하면 안된다고 다짐하면서도 항상 수많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여전히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나를 어떤 ‘특이한’ 사람 취급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과 성적, 졸업, 직장 등 일상에 대한 고민들입니다. 나는 오늘도 며칠 전 선물받은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가방에 들고 다니며, 민족의 미래를 고민했던 청년이 사상전향서 한 장을 거부한 이유로 왜 17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는지 고민합니다. 그것에 비하면 훨씬 편한 길을 가고 있는 내가 진정으로 이겨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절대적인 권력과 맞설 때,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 바로 신념이며 양심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양심수라 불러 왔습니다. 나는 내 양심에 가장 떳떳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가장 투명하게 자신을 인식할 때 타인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신에게 가장 떳떳할 때, 사회를 바꾸고자는 목소리에 진실의 힘이 담기게 됩니다. 나는 국가나 민족 혹은 자유나 평등을 고민합니다. 반전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고민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평화란 소극적인 의미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인권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반전 운동은 동시에 가장 절실한 인권 운동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쟁과 싸우는 것이 평화인권 운동입니다. 노점상, 철거민, 정리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과 나는 병역거부자로 연대할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오늘 새롭게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가장 실천적인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내 문제를 사회 문제 속에서 고민하지 않고,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만은 예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삶과 운동은 절대 분리된 어떤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이중생활입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집단, 대학인과 동시대 청년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고민해야만 가장 확실한 답이 나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논평하기는 쉽지만 자신 안에 깊이 녹아들어있는 그 모순들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병역거부는 또 한번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때마다 기회비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따지게 됩니다. 우리는 돈, 권력, 시간, 명예만을 기회비용의 요소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꺾여야만 하는 상황보다 큰 기회비용이 있을까요? 일생을 나는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3. 평화인권 - 진보적 대학인의 새로운 행동좌표


우리는 외세와 독재에 맞서 민족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희생을 딛고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대학인은 언제나 한국 현대사의 흐름 한가운데서 진보의 저수지 노릇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진보의 기준은 언제나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어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또 어떤 문제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제는 미쳐 깨닫지 못했던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오늘날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군대와 관련된 문제들이 지금 논쟁의 도마 위에 올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평화인권이야말로 오늘날 사회진보를 갈망하는 대학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구체적인 행동좌표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 평화란 앞에서 말했듯이 전쟁을 예방하고 반대하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유․무형의 모든 억압적인 권력과 폭력에 맞서는 적극적 평화를 말합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평화는 동시에 인권의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미증유의 경험으로 남아있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평화인권 운동 역시 민중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기 위한 역사의 장강을 따라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땅에는 기본적인 인권이나 민주주의 자체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것 자체로 급진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해야 할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우리에게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고 사상전향서까지 만들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짓밟고 있습니다. 냉전시대를 지배하던 반공 의식이 민주주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복무는 둘째치더라도 우리에게는 군대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겨운 상황입니다.


둘째, 인권 운동을 통해 우리는 잊고 지냈던 권리를 되찾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됩니다. 인권의 문제는 시혜나 동정 혹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의 문제입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은 가장 보편적인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구시대적인 잣대로 어떤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권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수많은 숙제들이 의외로 금방 풀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할 때 누군가 ‘이동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생각해 봅시다. 이동할 권리는 숨쉴 수 있는 권리 만큼이나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아가기 쉽지만, 이제 우리에게 장애인이동권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물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피와 눈물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경제적 효용이나 경쟁사회 논리로만 바라본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셋째, 인권은 반전평화, 민중생존권, 병역거부권, 장애인이동권, 노동권/교육권 등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사회구성원들은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문제를 사회와 연결시켜 바라보게 됩니다. 대학인 역시 대학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군대 문제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인권의 확대를 기준으로 사고하고 실천할 때 그것은 이익집단의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 보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한 실천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더 크게 단결하게 더 넓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인권은 어떤 특정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대학인의 문제나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의 문제는 모두 인권을 되찾기 위한 우리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넷째, 서준식 선생님 말씀처럼 인권운동을 통해 우리는 극단적인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사회모순을 지적하면서 우리 역시 동일한 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만을 요구했던 암울한 시대를 지나왔습니다만 여전히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 획일주의적 사고방식이 전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습니다. 혹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우리는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주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의 권리를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위험이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혹 민족이나 계급을 이유로 다른 문제들을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획일화시키려 하지는 않습니까? 인권에는 위, 아래가 따로 없습니다. 어떤 조건이 무르익은 뒤에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지금 바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 인간의 권리와 모순에 처해있는 잘못된 의식과 제도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운동은 제도의 문제인 동시에 의식의 문제입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면, 군대 문제에 있어 우리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폭력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방적인 국가주의는 아시아에서는 더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군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든 법, 도덕, 윤리와 같은 약속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어떤 제도나 의식적인 약속을 끊임없이 토론 속에서 새롭게 고쳐나갈 힘이 그 사회에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는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두고 이야기할 때도 이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가며 군대 문제에 대해 생산적인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 산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군대를 바라보며 비판해야 될 대상은 제쳐두고 왜 우리끼리 서로 증오하고 갈등해야 합니까? 고위층 병역비리, 군대 민주화와 효율 문제, 군대 내 인권문제 등 우리는 아주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21을 보니 사병 월급 문제를 지적했는데 아주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한마음입니다.


작위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어느 개그맨과 ‘고장난 레코드를 바라보듯’ 웃어제끼는 시청자처럼 이 시대 청년들이 서로 배타적인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신화를 넘어 90년대 학생운동 역시 뼈를 깎는 반성과 모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언제나 삶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대학인의 삶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학생운동, 그래서 대학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보편적인 인간해방의 장강에 합류하는 학생운동이 언제나 우리들의 화두였습니다. IMF를 계기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청년실업해결, 등록금 저지, 대학구조조정 저지(학부제/광역화 반대)와 같은 실천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적 청년학생이나 (사회 나가면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예비 노동자로서 도덕적 당위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과제를 통해 ‘왜 대학인이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싸워나가야 하는 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어떤 문제들은 남의 문제, 학교 밖의 문제로만 보였고 어떤 문제들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회 모든 분야에는 다양한 단체들이 성장하여 단체의 이익과 더불어 사회 진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진보정당의 발전은 이런 다양한 진보적 요구들을 한 데 묶어 정책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나옵니다. 그들의 입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고, 대체복무를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연대에 대한 당위성만으로 대학인의 보편적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우리의 문제인식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실천과제를 찾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진정 대학인의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사회로 나아가는 실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보편적인 인권을 획득하는 실천을 전개해야 합니다. 반전, 평화, 인권이야말로 21세기 학생운동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군대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있는 문제, 사회구성원들이 엄청나게 불신하고 분노하면서도 언제나 순응하고 복종해야만 했던 문제, 끊임없이 사회적 적대를 조장하고 남성우월주의/권위주의/국가주의를 재생산해내는 거대한 학교. 보편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우리는 이제 제한없는 실천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마음을 터놓고 대학인들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비병역거부 선언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함께 손맞잡고 연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시작으로 50년간 비판조차 하지 못했던 거대한 문제에 직면해서 아주 중요한 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학인이 나서야 합니다. 대학인의 삶으로부터 우리나오는 진실함과 평화와 인권을 갈망하는 절실함이 한 데 뭉쳐 아우성치는 그 날을 상상해 봅니다.


4. 나가며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강연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학인들과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다소 생소하고 어색할 수 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병역거부 이유서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세상으로부터 배운 것을 세상에 되돌려 주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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