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화와 노동자통제에 대한 다른 생각

 

해방연대의 신분 해방은 어느덧 73호라는 발행의 숫자를 기록했다.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운동하는 정치단체로써 오랜 시간 장수를 하는 신문으로 보인다. 물론 본인이 회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데 73호의 마지막면의 시리즈의 노동자, 소유하고 경영하라는 시리즈의 한편인 영국 UCS 노동자들의 자주관리투쟁으로 본 노동자통제라는 글을 보면 운동의 전술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술이란 노동자들의 위대한 승리를 위한 밑바탕이면서 주어진 시기의 구체적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투쟁방식과 투쟁수단, 그리고 그러한 투쟁형식과 투쟁방법을 규정하는 것이다. 전술이란 전략적인 승리에 복무를 하지만 일직선상에 맞추어 존재하는 단편적인 모습을 가지지 않고 시대적 상황에 맞는 특수적 모습을 가진다. 대중투쟁이 고양되는 시기와 침체되는 시기에 같은 전술의 모습을 가질 수는 없으며, 그 내용과 형태는 판이하게 다르게 표출되어야 한다.

 

먼저 사회주의자들에게 전략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당연히 사회주의에 대한 승리다. 그러면 사회주의는 어떠한 모습을 가지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제거하고, 기존에 나타났던 사회주의국가들의 왜곡된 모습을 일부참조 한다면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가지며, 인민의 대다수가 주인이 되어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인민의 대다수가 사회의 주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개인적 소유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사회의 이익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은 자본주의사회에서처럼 개인적 양심이라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외치는 동지들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 안주하여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전술적인 모습으로 국유화를 외친다. 소유의 모습이 중요한 이슈를 제기하고 공적 소유냐 사적 소유냐 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투쟁의 의미를 한정한다. 즉 선 국유화 후 노동자통제의 모습을 가진다. 소유의 개인적인 모습을 탈피해야만 자본주의의 핵심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체계를 허물 수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가장 편한 방식은 국유화임엔 틀림없다. 그리고 공적소유를 통한 대중적인 투쟁의 열기를 만들어 내기도 편할 수도 있으며, 지배계급의 도피처로 이용 될 수도 있다. 현 자본주의적 사회에서의 국유화는 어느 계급의 이익에 상충하느냐에 따라서, 계급적 역관계에 의해 그 내용이 다르게 나타난다. 포항제철, 한전, 인천공항, 철도공사 등등의 모습은 국유화 되어 있지만 언제든지 사적소유로 전환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미국의 2008년의 공황사태이후 금융회사들의 국유화이후 다시금 매각이라는 절차를 통하여 개인적 소유로 전환된 모습 등등은 국유화의 모습을 전적으로 보여준다. 국유화는 현실적 과제를 회피하는 제일 좋은 도피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해방지에서 쌍용자동차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로서, 또한 한진 중공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서 제시된 것은 국유화의 내용이었다. 노동자통제의 내용이 주가 되었지만, 그 전제는 국유화를 통한 것이다. 이번 73호의 영국 UCS 노동자들의 자주관리투쟁으로 본 노동자통제의 글쓴이는 신문의 마지막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치열한 77일간의 점거투쟁이 국유화 요구와 노동자통제로 나아갔더라면”이라고 적었다. UCS노동자들의 자주관리투쟁과 국유화의 내용은 억지 춘향의 모습을 가진다. 그 글의 내용을 참조하면 “ 점거는 또한 노동력을 자본에게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데까지 나아갔고, 근료계약이 가지는 한계들에 도전했다. 최근 논평가들은 공장점거는 계급투쟁의 일반적 전술이지 노동자통제의 경험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공장점거는 이를 통해 고양되어진 노동자통제의 본능적인 주제들이다. 노동자들은 일시적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동안에도 공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공장점거가 생산의 유지를 포함하고 있었다면, 이는 또한 생산조직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고, 어떤 영역은 자주관리의 참여로 나아갔을 것이다. 이것은 공장의 소유와 노동력의 역할과 조직을 위한 대안적인 미래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UCS노동자의 투쟁은 결과적으론 소유에 대한 문제의 형식을 가졌지만, -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거는 사적소유에 대한 반항의 시작이며, 노동자 통제를 위한 출발점이다. 이를 통해서 파업을 하느냐, 아니면 UCS노동자들의 형태처럼 자주관리로 공장을 노동자의 소유의 형식을 가지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방법의 선택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노동운동권에선 쉬운 그리고 항상 해왔던 그 습관대로 투쟁의 형식을 가져왔던 것이다. - 당시 영국정부의 50%가까이 되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1년 6개월까지 화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는 내용보다는 노동자 스스로 점거라는 형식과 더불어 자주관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회주의적 사회의 토대를 닦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노동자의 자주관리의 모습은 여로 형태를 통해서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특히 한국 내에서 노동자자주관리는 사회주의 운동권에서 이슈화를 시키기에는 부담이 가는 것이지 모르겠지만, 사례 및 운영의 문제점, 그리고 발전의 향방에 대해선 대부분의 언급이 없다. 버스 회사 및 몇 개의 자주관리를 하고 있는 중소형 기업들에 대해서 자주관리를 한다는 글만 다른 글들을 통해서 전해질 뿐이다.

 

UCS의 점거시위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이다. 그것이 파업의 형식을 가져 일시적 공황상태를 유발하던, 생산을 하여 분배를 이루는 구조를 행하던 공동의 자주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본주의적 경영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영업비밀의 철폐, 기업비밀의 해제 등을 통한 민주적인 기업운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못하고, 그 안에 물론 자본주의적 관계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가진 탓에, 그냥 보여주기 위한 기업 살리기에,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한 대안으로써 자리를 잡아 주었던 한계가 존재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해방지의 필자는 그 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운동의 진행의 한 흐름만을 바라보고 현재 한국노동운동의 한계와 그 해결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시리즈에서 하나의 예로 제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적소유의 반대적 사전적 의미는 공적소유이다. 그런데 사적 소유의 부정은 공적소유 인가? 아니다. 그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빠진 현학적인 논리 일뿐이다. 사적 소유의 부정은 무소유이다.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그것의 소유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국유화의 의미는 대중적인 이슈화를 위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일 뿐, 사회주의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엔 크게 보템이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사회에선 소유의 의미보단 관리의 의미를, 개인주의적, 영웅주의적, 관료중심주의적, 귀족주의적 관리의 모습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대중적 민주주의적 형태를 가진다. 소유의 형식에 주목하기 보단 노동자의 자발적인 경영의 참여 및 자주관리의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계급사회의 가장 큰 반발은 계급사회가, 특히 자본주의사회가 자랑해온 개인적인 모습을 깨뜨리는 것은 공동의 작업환경을 자주관리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으로 삼아야하는 것이다. 국유화를 외치는 것은 자주관리를 위한 하나의 토대 일뿐이다. 핵심은 자주관리, 노동자 통제이다.

 

아직도 도식화 되어 있는 외침이 운동의 흐름을 가로 막는다. 관료들이나 일부 개인적인 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각 조직들의 운동의 써클주의적 형태는 개인주의의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운동의 도식적인 흐름으로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국유화는 계급사회의 존속에서 개인소유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 것보단 자본주의유지의 커다란 흐름에안 되며, 도움을 주며, 인민 다수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언제나 지배계급은 대중으로부터 걷은 세금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는 형식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취하는 것이다. 국유화는 계급사회의 구조가 철폐되는 상황에서 혁명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현 상황에선 어떠한 명분을 부여한다고 해도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고 언제나 개량의 물속에서 헤엄치게 만들어 국가의 부름에 응하는 대중으로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현재 운동의 흐름에 사회주의사고가진 활동가들은 뒤처지고 있다. 운동의 흐름이 활동가들을 가르치고 있으나 그 가르침을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전술은 수세적인 시기라고 해서 항상 방어적인 모습을 가질 수만 없는 것이다.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공세적인 모습을 가질 필요도 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세적인 전술을 어떻게 구사해 나가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해야만 현대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왜곡시키지 않고 운동의 방향을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지, 현장으로 복귀를 원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원활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현장과 결합이 안 되는 원직복귀투쟁의 약점과 강점을 결합하여 현장과의 여대를 어떻게 모색할 수 있는지 우리는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 투쟁에 매몰되어 있어 큰 틀을 보지 못하고, 일보전진하기 위하여 후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현 상황에선 투쟁은 계속적으로 수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대중의 정서에만 영합하는 한계로 내몰릴 것이다.

 

우리는 쌍차나, 한진에서의 모습에서 대중들의 열망을 알고 있다. 혁명은 그러한 열망을 통하여 한발씩 우리에게 다가선다. 현재 노동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국적으로 전달해주는 그러한 매체가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내용을 왜곡되지 않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강령의 요구를 담아서 전달하는 신문이 필요한 것이다. 해방지의 상대적으로 긴 역사의 흐름에서 그러한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본인의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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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7 10:21 2012/09/1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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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reminiscence  2012/09/18 00:27
색안경님의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에 대한 다른 생각] 에 관련된 글. 글의 전반적 요지와는 상관없이 다음의 부분에 대해서만 적는다. “사적소유의 반대적 사전적 의미는 공적소유이다. 그런데 사적 소유의 부정은 공적소유 인가? 아니다. 그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빠진 현학적인 논리 일뿐이다. 사적 소유의 부정은 무소유이다.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그것의 소유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국유화의 의미는 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