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연대는 무엇을 위하여 변신을 하는가?

 

3월 3일 좌파연대는 오세철씨가 하나의 상을 받았다면서 성명서를 발표 했다 그 전문을 올리니 그 내용을 살펴보자

 

[입장] 오세철 교수, 자본이 주는 상남경영학자상 받아 ‘운동’ 저버리다

 

한국경영학회는 지난 2월 27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정기총회와 동계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총회는 현재 창조경제연구원 원장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를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현 정권의 ‘창조경제’ 정책에 맞춰 경영학계가 정부의 정책 분석과 진단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우리 사회의 현 분위기는 온갖 경제실정(失政)과 부정선거로 점철된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향해 범진보진영이 ‘2.25 국민총파업’을 결행하는 등 한국경영학회의 친자본적 기조와는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경영학회는 지금 불안정노동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는 아랑곳 않은 채 박정권의 나팔수로서 ‘창조경제’만을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총회의 학회 시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목격됐다. 경영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우수논문상 시상에서 최고상인 상남경영학자상(상금 1천만 원)을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수상한 것이다. 참고로, 상남경영학자상의 ‘상남’은 독점재벌 LG의 명예회장인 구자경의 아호이며, 한국경영학회에는 LG를 비롯해 삼성, SK, 국민은행 등 독점자본 기업들이 후원하고 있다.

 

===> 상의 계급적 성격과 후원자를 설명했다.

 

그간 국내에서 독점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반체제인사로 널리 알려진 오세철 교수가 바로 그 재벌이 후원하는 상을 받았다는 보도는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한다. 아무리 그가 연세대 경영대학장과 한국경영학회장(2000년)을 지냈다 하더라도, 가장 철저한 코뮤니스트를 자처하는 그의 정체성을 감안하면 이러한 수상은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좌파교수인 오세철씨가 상을 받았다

 

오세철 교수는 혁명적 지식인으로서 현재 국제코뮤니스트전망과 사회실천연구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경영학회의 기조로 볼 수 있는 노동 착취적 성격의 ‘창조경제’를 옹호하는 학자로서의 오세철과, ‘창조경제’에 맞서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는 코뮤니스트로서의 오세철이라는 두 얼굴의 심각한 모순과 직면하게 된다. 결국 이번 수상은 그가 코뮤니스트로서의 입장을 포기하고 수정주의 내지는 부르주아지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 오세철씨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수정주의 또는 부르주아지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 된다.

 

그간 한국의 시민·사회·노동운동에서 이른바 혁명가로 분류된 인사들 중 일부는 진보적? 언론들의 왜곡으로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어 공산주의자로 간단히 속류화 되어온 바 있다. 이런 점은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투쟁하는 전선체 성격의 제 단체 및 정당과 일정한 거리를 둔 자유주의 엘리트로서 혹은 소부르주아로서, 계급 간 첨예한 대립에서 기회주의적 태도로 운동을 혼란케 한 사실과 유관하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독점재벌을 위시한 지배계급은 반체제 인사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설득과 탄압을 겸한 이른바 ‘당근과 채찍‘이라는 계급지배전략을 강도 높게 구사해 왔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고양되고 이를 토대로 개량주의적인 시민사회운동이 전면화 되어 국가의 폭압통치가 일정 정도 후퇴되는 신자유주의시기를 맞이했다.

 

이때 지배계급은 반체제 세력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거둔 불로소득을 뇌물(돈)로 이용하는 지배전략을 종종 구사했다. 여기에는 통상 노동귀족 또는 관료로 호명되는 인사들이 사실상 부르주아지의 동맹군으로 편입되어 갔는데, 이번 수상에서 보듯 오세철 교수 또한 재벌이 흘린 상금이 죽음의 독배임에도 불구하고 성큼 받아 마심으로써 독점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 재벌이 주는 상금은 독배다.

 

그것을 받으면 독점부르주아와 동맹을 맺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간 변혁운동에 함께 해 온 오세철 교수가 지배계급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아무쪼록 진보좌파진영 인사들은 그 지난한 그러나 그만한 가치를 지닌 변혁운동을 일거에 무위로 돌리는 일이 없게끔 이번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운동에 매진했으면 한다.

 

===>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재벌에게 받으면 너도 수정주의 내지 부르주아로 간다.

 

아울러 그가 회원으로 있는 국제코뮤니스트전망과 사회실천연구소는 오세철 교수의 상남경영학자상 수상과 관련하여, ‘운동의 원칙’에 입각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기를 기대한다.

 

===> 국제코뮤니스트전망과 사회실천연구소는 오세철교수가 상을 받았으니 입장표명을 해라.

 

인용을 전체적으로 하고 주석을 달았다. 찌질 거리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오세철씨가 상을 받았는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상을 받으면 안 되는 데라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생각이 나뉘지만 본인은 이글을 보고 생각하면서 하나의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어떠한 내용과 근거가 없이 부르주아가 주는 상을 받았다는 그러한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변절했다는, 부르주아와 동맹의 관계로 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은 순수하고 자신은 깨끗해서 변절자를 처단할 능력이 되어서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누구는 그런 상을 받았기 때문에 질투심에 그렇게 글을 쓴 것인지, 아니면 속상해서 쓴 글인지 어떻데 봐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 동안의 내부 토론을 계속해서 열었고 본인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성명서가 누구를 위해서 쓴 글이고 그 대상자가 스스로가 명확하게 선정하지 못하고 무작위로 뿌려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아는 사람, 또는 활동가, 아니면 오세철씨를 잘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한 쓴 글이라면 그들만 읽어보라고 성명서에 제출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본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어떠한 내용도 없이 성명서를 발표를 했고, 그 성명서엔 왜 오세철씨가 그러한 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인한 결과가 나오던지 아니면 결과의 이후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어야 했다.

 

하나의 모습만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도 그러한 상을 받지 못한 애증에 의한 질투심인가? 아니면 어떠한 선입견을 가진 채 그것이 무조건적인 필연의 결과로서 표현하고픈 것인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수준의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물인지? 무엇으로 표현을 하던 그것은 그동안 잘못되어 왔던 운동의 흐름을 바꾸고, 새롭게 운동을 정립하고자 했던 좌파연대의 모습에서 이젠 마녀사냥꾼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상을 받았으니 “넌 나쁜 사람이야“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독립운동가가 일본 옷을 입고 일본이름을 사용한 것은 친일로 돌아선 것인가? 윤봉길의사 일본 옷을 입고, 일본인 이름으로 상하이 기념식장에 잠입을 했고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 무엇이 보이는가? 3월 8일의 한겨레신문을 보면 서경석 교수에 대한 글을 보면 백낙준의 친일에 대한 비판을 했다고 연세대의 명예교수직에 선정했으나 보류된 사실이 있음을 알리면서, 그 글의 마지막엔 “서 명예교수는 친일학자로 비판받는 두계 이병도를 기리는 두계학술상을 1992년 받은 바 있다.” 서 교수는 상을 받았으니 그는 친일에 매우 우호적인가라고 판단해야 하는가?

 

물론 오세철교수를 잘 알고 있는 측근들 또는 그의 행동에 대한 내용을 자주 듣는 사람들에겐 그의 이번 수상에 대한 내용으로 무엇이보여주는 것인지를 알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외 사람들은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의 행적에 대한, 그 동안의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과정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그리고 그 이후의 전망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는 글로서 무엇을 단죄하겠는가? 그것이 죄악으로 보인다면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고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모양새다.

 

현상이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과학은 필요하지 않다. 어떠한 모양의 결과가 나타나려면 그러한 운동의 진행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필연이다. 과정에 대한 분석과 증거가 나오지 않고 하나의 현상만으로 마녀사냥식의 단죄를 내리면 필히 문제가 생기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반동의 날개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을 부정하고 증거를 밀어내며 또 다른 조작을 하기 위한 날개 짓을 하는 것이다.

 

하나의 단편적인 사실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한다고 하는 것은 과학을 우롱하는 처사다. 하나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과학은 증거의 자료와 근거를 내놓는다. 좌파연대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오세철씨가 부르주아와 동맹, 또는 변절을 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부르주아가 주는 상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좌파연대는 후자 하나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러면 변절했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증거를 보여주어라. 좌파연대는 그러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는 한 마녀사냥꾼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동안 재능에서의 환구단의 운동모순에 대하여 열심히 비판을 했고, 재능 노조의 발전에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운동에 대한 퇴보로 일보전진하고 있다.

 

본인은 오세철씨가 상을 받아서 옳다 그르다고 하는 이원론적인 방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좌파 오세철씨가 부르주아가 주는 상을 받았다는 것으로 하나의 죄를 지었다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류는 큰 문제는 아니다. 오류는 고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묵인 방조한다는 것은 반동이다.

 

이젠 이러한 짓을 하지말자.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는 한 좌파연대는 그동안 자신들이 비판 했던 내용들이 허공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좌파연대가 비판을 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마녀사냥이라는 의미로, 하나의 예로 이번 성명서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판단 한다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성명서를 다시 발표하기를 부탁한다.

 

이 글은 내부토론이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운동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좌파연대의 방침에도 맞는다는 생각에 외부에 공개를 하고, 외부에서도 그동안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에 타성에 젖은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토론의 장을 활성화 하고픈 염원으로 올린 것이다. 무엇을 비판을 할 땐 그것에 맞는 근거와 내용을 제시하고 자신의 오류가 나왔을 땐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오류를 인정한다는 것이 창피하고, 세월이 지나가면 잊혀질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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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와 Ⓑ가 ㉮의 안건을 가지고 이견이 발생했다. 서로의 견해의 차이는 극복하기보다는 말의 의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의 감정이 상했다. Ⓑ는 Ⓐ를 조직에서 퇴출시키겠다고 했다. 그것을 들은 Ⓐ는 조직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 사조직화가 진행되는 조직에 더 이상 몸을 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 “왜 나이든 사람을 화나게 했는가?”라고 Ⓐ에게 문제제기를 했다. Ⓐ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멍해졌다. 서로의 견해차이로 사상에 대한 투쟁은 언제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하기위해선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하지만 Ⓐ는 그러한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감정이 상하거나 화가 났다는 것과 나이다 많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존재할까하는 판단에서 도덕이라는 판단이 생각이 났다.

 

이러한 도덕의 핵심은 윗사람을 공경해라. 웃어른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하나의 규칙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평등해지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나이든 사람, 자신보다 위치가 높은 사람에 대한 존경과 흠모를 느껴야 하는 가부장제적인 봉건적 유교적 사고방식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누구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자신의 주권을 지켜나가고자 한다면, 첫 번째로 깨드려야 하는 것은 나이와 선배와 후배의 위치에 따르는, 그리고 조직의 위치에 따르는 서열적인 문화다. 그리고 토론의 과정에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이론이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무시당하는 경우, 그리고 의견의 개진 중에서의 서로의 견해차이로 인한 충돌이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아무리 토론이 그렇게까지 전개되었다고 자신이 위에 있는 위치의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감정까지 살펴보면서 토론을 해야 한다면 자유로운 토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억압적인 방식으로 강제성을 강요하는 토론의 형식만을 강제하는 장이다.

 

실제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동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서로 평등하다는 것, 같은 뜻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것, 함께 어려움을 뚫고 나가 자라는 여러 가지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은연중에 서열화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우리의 운동 속에서 뿌리를 공고히 내리고 있음에 실망감이 한층 더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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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0 20:00 2014/03/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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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가  | 2014/03/22 02:02
일왕에게 상을 받았나요, 폭탄을 던졌나요.
오교수가 경총에 폭탄을 던졌나요, 걔들한테 상을 받았나요.

서교수도 잘못했네요. 일제 비판하며 친일 교수상 받았다면.

"오류는 큰 문제는 아니다. 오류는 고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묵인 방조한다는 것은 반동이다" 오류를 옹호하는 건 그럼 뭘까요?

"오류를 인정한다는 것이 창피하고, 세월이 지나가면 잊혀질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