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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아침부터 글을 읽다가 좀 짜증이 난다.

 

그 사람이 살아갔던 길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극히 제안된 시선만으로 판단하고 말을 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불쾌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오늘 아침이 그렇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별 것 아닌 거에 열을 올리며 옹호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스친다. 하지만 옹호가 아니기에 내 짜증에 대해 부끄러움은 없다.

 

누군가 적어준 글을 읽는다고 그 사람을 앵무새 같다고 혹은 생각없이 따라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전달하는 이가 글에 공감하고 자신이 느낀바를 감정을 담아내어 전달하는 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목소리로 전달하는 이가 글 속의 주인공과 같은 처지 혹은 관점을 갖고 있다면 그 이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이가 글을 써주고 선택해준 것을 받아들인 다는게 눈여겨 볼 일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든 역할을 한 사람이 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역할을 기계적으로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유연하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특정지으며 사람들과 조합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혼자 일을 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모으고 모으는 게 문제인데, 짜증을 넘어 안타까운 부분이다.

 

살아온 시간과 역사 등등을 떠나 태도의 문제이고, 오늘 아침 신경을 곤두세웠던 부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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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1. 예전에 알게된 분이 전태일 재단에서 일하시게 됐다고 하며, '서울에 오게 되면 (이소선)어머니 한번 뵈러 가요. 젊은 사람들 찾아오시면 좋아하니까요.' '네, 좋아요.' 서울에 갔지만 너무 바빠서 결국 뵙지는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게 생각난다. 

 

2. 급하게 단체 페북에 입장을 올리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님이 돌아가셨다고 올렸다. 그때 나 역시 누구의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냥 한 노동운동가로서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다가신 한 시민으로서 추모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표현하게 됐다.

 

3. 특별히 감정이 고양되지는 않는다. 어느 때부턴가 이소선님이 노동자대회의 마지막 순서가 되면 무릎을 짚으며 힘겹게 무대로 올라가시며 '언제 또 나올지 모른다, 이게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말씀을 할 때부터 저 말이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느꼈으니까.  절절하니 갈라지는 목소리로 '단결해야 한다'고 말하셨으니, 실천하는게 추모하는 길이겠지. 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고 신발끈이 풀리지 않았나 다시 보면서 준비하는게 추모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4. 그냥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전태일 열사가 이소선님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꿈과 어깨에 지고 있던 짐을 부탁했기에 그 짐을 놓을 수 없었던 님께서 지금껏 있는 힘을 다해 끌고 오셨던 거라고. 그래서 의식을 잃고도 끝까지 이 땅에 남으려고 하셔서 의식불명 상태로 보내셨던 거라고. 그래서 열사가 이제는 너무 애쓰셨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만 내려 놓고 쉬셔도 된다고, 그래서 눈을 감으셨다고.

 

너무 모질게 살아오셔서 편히 눈을 감지 못하셨겠지만 이젠 편히 쉬시길.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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