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때. 동아리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연대사업을 '한적이 있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이주 노동자 보다 '평등노조'를 먼저 알고 막연히 연대 하겠다고 나섰던것 같다. 쓰면서도 내기억이 맞는지 확신이 안서지만. 그때가 3학년이었던가? 우리들에게 '연대'라는건 막연했고 왜 하필이면 그들과 연대 해야만 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후배들은 왜 연대사업을 하느냐고 물었지만 우리는 그럴듯한 어떤 대답도 할수 없었고. 나는 선배에게 왜 연대사업을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럴듯한 납득을 하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도 이유를 잘 찾지 못했고.

우리는 선배들이 연대하고 있던 작은 노조와의 오래된 관계를 정리하고 막연히 평등노조를 찾았다. 이주지부에는 그때만해도 실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없었고, 우리는 조직화를 위한 포스터를 붙이는 등의 일을 성수동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했고. 마석에 가서 간담회를 하고. 선전전을 했더랬다. 그때 마석에 가서 처음으로 이주노동자 분들을 실제로 만날수 있었는데 서로 어색하고 어려운 자리 였다. 한국말이 아주 유창한데다 유쾌한 버즈러씨 꼬빌씨 덕분에 분위기는 좋아 졌다...그리고 지금은 얼굴도 희미하게 생각나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조용한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직 어색한 한국말로 딱 한마디를 했는데. 그말에 우리가 세미나를 하고 어쩌고 하면서 읽었던 문서들이 무색해 졌다.
" 우리는 일했다. 그리고 돈 벌었다. 그게 왜 잘못인가. 일해서 돈벌었지 훔치치 않았다. 왜 우리 불법인가"

나는 동아리 활동을 정리하면서 연대라고 말했던 것도 정리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그들을 잊었다. 물론 소식을 후배들을 통해 듣기도하고, 집회에 나가서 멀찍이서 보라색 머리띠를 발견하고 혼자 반가워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점점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투쟁의 주체가 되어서 절박하게 싸우는 이주노동자분들 옆에 서기가 민망해졌다. 뭐라고 이 공백을 이 소홀함을 변명할까 급급해 하다가 , 혹은 귀찮음 병에 의해서 사뿐히 그상황을 곤란한 일로 만들고 모른척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것 역시 엄청나게 부끄럽고. 부담이 된다. 그냥 글 하나만 퍼와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해버린다면, 나는 계속 그러다 이 묘한 미안함까지 잊게 될것 같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겠다라는 것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일수 밖에.


덧붙여, 이글을 퍼온 블로그의 주인 '마님'과 그 친구들처럼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아리를 할때 일상적연대 일상적 연대 노래를 했는데. 그녀의 활동이 그런게 아닐까?

----------[펌] 왜 자히드를 돕는가 ------

지난 1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던 자히드가 강제출국되었다. 자히드가 경찰에 붙잡히기 며칠 전까지도 나는 자히드와 농성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하루는 명동성당에 출몰하는 '예수님, 알러뷰!' 아주머니(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항상 이 말을 구호처럼 외치는 분이다)가 자히드에게 "한국 여자들 건드리면 안돼! 그럼 벌받아! 지옥 유황불에 떨어져!"라고 말씀하셨고, 그 아주머니의 예로 한국 여자인 내가 사용(!)되었다. 나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그럼 어때요?"라고 쪼개는 반응을 보였던 반면, 자히드는 얼굴에 웃음을 띄고 있긴 했지만 예의 그 진지한 어투로 그게 무슨 문제인지를 조근조근 아주머니와 얘기하려 했다. 상대가 누구이건 가리지 않고 '진지하게' 설득하려 했던 청년, 자히드.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보았던 자히드는 여전히 진지했지만 이제까지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염 없는 눈물이 그것이었다. 자히드가 여수에 있는 동안 내내 면회를 다녔던 나는, 매일 자히드의 눈물을 보았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한국에서 겪었던 일들이 수백 번도 넘게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속을 스쳐지나갔다고 했다. 나는 자히드의 눈물을 보면서 그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되새김질되어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보호소를 떠나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헤어지면 끝일 줄 알았지만, 간간히 그의 소식을 전해듣고 그의 편지를 받곤 한다. 그의 딱한 처지에 마음이 쓰려오기도 하지만 감히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 몰라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속해 있는 이주노동자합법화를 위한 모임에서 강제추방을 당한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후원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현재로선 자히드에 관한 소개글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지금 상황에서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요한 건 '관심과 돈'이다. 통장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이건 내 개인통장이 아니라 모임의 통장이므로 내가 돈을 떼어먹을 거라고 걱정하지는 말길 바란다. ^^ 많은 이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답지하길 빈다.




왜 자히드를 돕는가
  

2003년 겨울부터 2004년 가을의 끝 무렵까지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농성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 1년 가까이 투쟁을 해왔던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접었을 때 그들이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지쳐버린 몸을 뉘일 방 한 칸도 없었고, 당장 생활을 이어나갈 돈도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호의적인 조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빈털터리인 채 한국 사회 속으로 다시 숨어들어야 했습니다.

농성을 정리하려고 어수선하던 그때 자히드가 붙잡혀 강제출국 조치를 당했습니다. 자히드는 2003년 겨울 농성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명동성당 들머리를 지키고 있었던 노동자입니다. 자기 의지로 투쟁을 시작했고 자기 의지로 농성투쟁을 정리하고자 했지만, 그는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이주노동자 투쟁에 관심을 가졌던 한국 사람들-와 자히드의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자히드는 곧 기억 속에서만 만나는 인물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였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지옥을 의미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 속에서 숨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말합니다. 귀향은 서글프게도 우리 한국 사람이 전통적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오만하게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도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자히드의 삶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한국에서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대가를 고향에서 치르는 중입니다. 한국에 돈벌러간 아들을 믿고 빚더미에 앉은 가족(당연하게도 자히드는 농성투쟁을 하는 동안 자기가 모았던 돈을 다 썼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임금상황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난 부채, 빚쟁이들의 협박, 곱지 않는 이웃의 시선들이 그를 옥죄고 있는 것입니다. <말해요, 찬드라>가 생각납니다. 찬드라는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오늘 자히드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아니면 저기 어디에선가 삶이 계속되듯이 고통, 불안, 회한, 가난, 질병도 계속 됩니다. 자히드는 여전히 투쟁 중입니다. 고통, 불안, 회한, 가난, 질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고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당면한 현실입니다. 특히 자히드는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현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의 투쟁을 반성하고, 후회하고, 자아비판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가 자기기만, 자기부정의 혼란 속에서 살아야만 할까요?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다시 자히드와 연결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자히드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생각입니다.

왜 ‘자히드’인가? 농성투쟁을 하다가 강제출국 당한 노동자가 자히드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욕심으로는 그런 이주노동자 모두를 지원하고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자히드를 지원하는 것이 귀향한 노동자와 연대하는 아주 작은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지원하는 움직임이 한국사회에서 아주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히드와 같은 당면 문제를 ‘개인의 문제’나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공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히드가 당면한 문제가 정말 사적인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들 삶의 사적 영역에서 고통 받고, 그것과 분리된 공적인 다른 영역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운동을 하거나 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외부에 있는 어떤 누군가의 초월적 지상 명령 때문에 우리가 투쟁을 한다고 상상하고 있는 겁니까? 고통은 사적이지 않을 뿐더러, 사적인 것과 무관한 공적 목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회피하는 공적 목적이란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사적인 것’이라 치부하고 밀쳐두었던 그 말을 끌어내고, 그 말을 듣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내며, 연대를 하는 모임이나 활동들이 더욱 다양해지고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귀향한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것도 그런 활동 중의 하나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말을 잃은 귀향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합시다. 그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모아 줍시다.


자히드 돕기 모금: 국민은행 843101-04-026848 임윤희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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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7 04:44 2005/03/07 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