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볼 때부터 하나 정도 갖고 싶었는데, 명동에 갔다가 결국 지름!
휴대폰줄로 팔리고 있었지만 마우스 쓸 때 사용하는 손목쿠션으로 사용처 전환 예정 *^^*
코 파는 날라리 딸기여사~
추운날도 다갔으니 친구들 좀 모이려나? ㅋㅋ
__________________________인사아트센터(http://www.insaartcenter.com) 오채현 조각전_2009.02.18-02.24
전래, 해학, 친근, 익살...
대충대충 판 것 같아도 이미 돌 안에 호랑이나 사람이 숨 쉬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기 그지 없다.
함박웃음이 절로 난다.
뉴스캐스트 한 달…언론사 PV 104% 증가
http://it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390209&g_menu=020300&pay_news=0
아웃링크 방식은 네이버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이득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포털도 미디어로 취급'할 여지를 줄이고, 편집권도 분산함으로써 법적 책임 소재마저도 명확히 피해가려했다고나 할까.
물론 전체 페이지뷰가 빠질 위험성이나 사이드메뉴 이용도 불가능한 점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탑 이용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 지도.. 어떻든 개편 이후에도 페이지뷰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트래픽도 나눠진 셈이니 이번 개편은 성공적이라고 봐야 하나?
네티즌은 새창의 압박에 짜증나는 듯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비슷하다 생각할테고(원래 사용자는 여러 창 띄워놓고 쓰니까),
어떻든 지금 방식이면 네이버 탑에 대한 집중도는 더 증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포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탑화면의 장악능력일테니..
- 국가기간산업 29개 업종 외국인 투자제한 완화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9020502010351661002
이것도 혹시... KT와 KTF 합병 때문?
- 방통위, 실무반 구성 기술규격 개발 착수
- 케이블업계 디지털 전환에 적극 나설 듯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9020502010431742005
일단은 실시간 방송위주 기능만 제공하는 셋톱박스로 기존 것보다 50%정도 저렴할 것 같다고..
그런데... 왜... 정부는 국민의 자본을 모아 업계 먹여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까나?
-이 시리즈가 약간의 잔혹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기에- 아직은 보면 안된다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제 쯤이면 '적응과 강화'의 일환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뭐... 결과적으로 좀 놀라웠다고나 할까?
내가 한동안 자신에게 했던 매우 곤란한 질문이 적시되어있다.
아니, 약간 틀릴지도... 나는 그 나선에 모순이 없을까봐 조바심이 나던 참이었다.
(참고로, 이 글엔 애니에 대한 네타는 커녕 감상도 없답니다.
사실 글의 주제도 애니의 내용과 살짝 벗어나있지요.
그래도 애니를 보신 분은 제가 무엇 때문에 기억을 소급하게 되었는지 이해해주실지도..)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살다가 죽기에,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일생 최대의 의문이자 정답 없(어보이)는 난제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이러한 고민에 빠지면 치열한 생각의 고리를 엮기 시작하고, 며칠간 고민을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인가?ㅋㅋ- 머리 속을 reset한 기분이 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속 편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적어도 하루이틀 쯤은 세상 모든 것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결론보다는 과정이 소중했고, 행복을 위한 필수 과정과도 같았다.
그런데 작년 연말엔 좀 달랐다.
나는 어느새 삶과 죽음과 존재에 대한 매우 물질적인 결론을 내린 후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구멍은 많아도 말이다.
생명의 탄생 신비는 모르겠지만, 물질은 어떤 형태로든 순환하고 인간 또한 그 수레바퀴에서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그냥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이 여러 성인과 군자들을 통해 인성과 윤리를 쌓아가는 과정은 흡사 근원과 분리되면서 반드시 갖춰야하는 객체성을 유지하려는 몸부림같기도 하다.
제대로 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계속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순환이라는 고리의 중력에 지배를 받는다.
만약 그 과정의 모양새를 물질화한다면 원형 또는 나선형 정도가 되려나?
순간, 언제나 경이로웠던 세상의 변화들은 구조 속에 갇힌 별볼일 없는 것들로 보였다.
혹여 그 언젠가 변화가 완성되는 순간, 또는 진리를 얻는 그날이 온다해도, 그게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이후 인간은 모든 걸 해탈하고 행복해졌다해도, 그건 어떤 감정일까? 진정 나를 포함한 모든 이가 마감이 정해진 삶을 열심히 영위할만한 가치를 가진 걸까?
며칠간 눕기만 해도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서 죽을 맛이었다.
좋아하는 커피엔 손도 대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물질과 나 사이에 벽이 생겨 차단된 느낌, 무언가 짚었는데 실물감이 없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생각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건 아마도 사실일거다.
서둘러 지인들의 품을 찾아갔다. 인간에게 있어서 실물감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인간일테니..
너덜너덜해진 정신 상태를 수습하고자 파란약을 먹고 매트릭스로 기어들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의 사고 가능 영역만으로는, 인식 가능한 물질체계만으로는 추측이 불가능하다고, 내렸던 결론에 대해 오류 처리를 하기로 했다.
일정 기간동안 나는 나의 뇌에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고 기다린 결과, 값을 내기 전 '뻑' 가버린 꼴이 되었다.
'꼴'이라 하니 약간 부정적으로 읽혔을 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그 순간엔 생존까지 걸렸다 싶은 상황에서 꽤 적절한 처리였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계속 상태를 유지할 기력은 바닥나있었다.
물론 비슷했던 예전의 경험과는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
하루이틀 쯤 눈부셔보여야 할 세상의 참맛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유리마냥 깨질 것 같은 상태를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조금씩 원래 상태 비슷하게 만드는 데만도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
당시엔 갑갑할 뿐이었는데, 지금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멀쩡한 게 더 신기할 정도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드디어(?) 해소란 없는, 과정만을 즐길 수 없는, 살면서 언젠가 불현듯 나올만한,
그리고 그 나선에 모순이 없을까봐 걱정이 되는,
그런 문제가 평생 내 속에 내재되어있으며 나의 삶과 함께 할 것이라는 점.
토우코 : 아라야, 무엇을 바라는가?
아라야 : 진정한 지혜를
토우코 : 아라야, 무엇에 바라는가?
아라야 : 단지 이 몸에게만
토우코 : 아라야, 어디를 향하는가?
아라야 :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을, 이 모순된 세계의 나선의 끝을
- 애니 [공의경계 - 모순나선]에서
오늘 문득 상도동에서 대방동까지 정처없이 걸어봤습니다.
걷다보니 단층으로 빼곡했을 어딘가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이곳에 머물렀을 분들은 오늘도 어느 따뜻한 공간에서 훈훈한 정을 나누고 계시길...
80세 노인.
평생 농사로 인해 겹겹이 쌓인 주름과 백발 이외에도
10대에 침을 잘못 맞아 힘줄의 성장이 멈춘 관계로 그 굵기가 오른쪽 다리의 절반 밖에 안되는 왼쪽 다리.
77세 노인.
경운기도 안 쓰고 농약도 안 치는 꼴통 남편에게 시집 와 오랜 세월에 걸쳐 남겨진 주름과 꼬부랑 허리.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둘보다도 더 눈에 띈 존재인 40대 소.
평균 소의 수명은 10년이지만 무려 4배가 넘은 세월을 살면서 비쩍 말라 살은 없고 뼈에 그냥 털만 씌워놓은 것 같은 형상의 몸. 그리고 귀를 찌를 듯 자라서 몇번이고 갈았던 뿔.
영화 [워낭소리]는 이 3명이 평생을 거쳐 다져온 삶의 소중한 보물들을 모은 것 같은 - 여러 의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몹시도 운 좋은 - 이야기다.
꽃같은 부자집 도령들이 수두룩 빡빡 등장하는 드라마가 유행하는 요즘,
매끄러움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주름투성이 몸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옷은 결코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수 없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화면은 꽤 매력적이다.
세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푸르디 푸른 자연은 관객석까지 그 풀향기를 전달해줄 것만 같고,
그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주름과 굽은 허리와 소의 흙딱지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만 할 필요충분조건들이었다.
할아버지가 데려온 젊은 일소가 늙은 소를 괴롭히는 에피소드도,
끊임없이 할아버지에게 투덜대는 할머니와 일언반구없는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들도
유쾌하기 그지없는 삶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소가 잘못 먹고 죽을 지도 모르니 논밭엔 일절 농약을 치지 않고, 매일같이 시원찮은 다리를 끌고 언덕에 올라 소 먹일 꼴을 베는 할아버지.
네다리가 꼬일 듯, 지금이라도 쓰러질 듯 싶지만, 느릿느릿 걸으면서 할아버지가 잠들 정도로 안정감을 주는 소.
소가 마지막 생명을 다한 후에도 밭 한가운데 고이 묻어주고 절에 가서 안녕을 빌어주는 관계.
생명이 생명을 위해 하는 행동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감을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한민국에선 다시 못 볼 골동품같은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삶들을 본 것 같아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웅장해지려는 사운드와 엔딩컷의 '...에게 바칩니다'는 완벽한 실수처럼 보였다.
굳이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좋았다.
영화의 생각(?)만큼 아련하거나 골동품같거나 철저히 남의 삶 같지도 않았다.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행복했던 이야기.
이런 삶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영화야말로 두번 다시 볼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이야기.
* 사진출처 : 다음(http://www.daum.net) 영화
오랜만에 지방 갔다가 올라오면서 들르게 된 용산의 아이파크 내부.
화려한 조명으로 구성된 인공미 가득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가고, 따뜻해보이고, 미소가 떠오르는 건,
도시에서 열심히 추억을 쌓고 있는 나 자신의 심상이라고나 할까나?
광화문 사거리 지하보도에는 통로 가운데 광화랑이라는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삼.
대체로 비어있을 때가 많은데, 오늘은 운 좋게도 테디베어 인형 전시중.
오랜만에 생각나는 영화 [클리프행어]
내가 못본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건 뭘까나? 어떻든 큐피드 베어는 왕 귀여움..ㅋㅋ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의 색 고운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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