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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9/01/29 23:35

 

80세 노인.
평생 농사로 인해 겹겹이 쌓인 주름과 백발 이외에도
10대에 침을 잘못 맞아 힘줄의 성장이 멈춘 관계로 그 굵기가 오른쪽 다리의 절반 밖에 안되는 왼쪽 다리.

 

77세 노인.
경운기도 안 쓰고 농약도 안 치는 꼴통 남편에게 시집 와 오랜 세월에 걸쳐 남겨진 주름과 꼬부랑 허리.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둘보다도 더 눈에 띈 존재인 40대 소.
평균 소의 수명은 10년이지만 무려 4배가 넘은 세월을 살면서 비쩍 말라 살은 없고 뼈에 그냥 털만 씌워놓은 것 같은 형상의 몸. 그리고 귀를 찌를 듯 자라서 몇번이고 갈았던 뿔.

 

영화 [워낭소리]는 이 3명이 평생을 거쳐 다져온 삶의 소중한 보물들을 모은 것 같은 - 여러 의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몹시도 운 좋은 - 이야기다.

 



 

 

꽃같은 부자집 도령들이 수두룩 빡빡 등장하는 드라마가 유행하는 요즘,
매끄러움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주름투성이 몸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옷은 결코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수 없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화면은 꽤 매력적이다.
세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푸르디 푸른 자연은 관객석까지 그 풀향기를 전달해줄 것만 같고,
그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주름과 굽은 허리와 소의 흙딱지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만 할 필요충분조건들이었다.

 

할아버지가 데려온 젊은 일소가 늙은 소를 괴롭히는 에피소드도,
끊임없이 할아버지에게 투덜대는 할머니와 일언반구없는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들도
유쾌하기 그지없는 삶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소가 잘못 먹고 죽을 지도 모르니 논밭엔 일절 농약을 치지 않고, 매일같이 시원찮은 다리를 끌고 언덕에 올라 소 먹일 꼴을 베는 할아버지.
네다리가 꼬일 듯, 지금이라도 쓰러질 듯 싶지만, 느릿느릿 걸으면서 할아버지가 잠들 정도로 안정감을 주는 소.
소가 마지막 생명을 다한 후에도 밭 한가운데 고이 묻어주고 절에 가서 안녕을 빌어주는 관계.
생명이 생명을 위해 하는 행동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감을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한민국에선 다시 못 볼 골동품같은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삶들을 본 것 같아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웅장해지려는 사운드와 엔딩컷의 '...에게 바칩니다'는 완벽한 실수처럼 보였다.

 

굳이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좋았다.
영화의 생각(?)만큼 아련하거나 골동품같거나 철저히 남의 삶 같지도 않았다.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행복했던 이야기.
이런 삶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영화야말로 두번 다시 볼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이야기.


* 사진출처 : 다음(http://www.daum.n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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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23:35 2009/01/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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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9/01/12 11:35

전혀 당연해보이지도 않는 갑갑한 상식을 넘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힘,

젊음의 힘은 뽀얀 피부와 하얀 눈동자가 아니라 그 안에 느껴지는 정열과 금기를 쉽사리 넘는 백치미...ㅋㅋㅋ



오석근의 [교과서(철수와 영희)].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한 엄청난 기억 봉인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교과서엔 '단면적인 착한 어린이' 이미지들이 가득했지만,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시절인 '어렸을 때'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생활은 꽤나 충격적이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존재했다.

세상은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동화책 속 이야기가 아닌 경우도 있고,

반면 충격적이라고 기억했던 사실은 그저 고리타분한 편견에 의한 것일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사회가 개인적인 봉인 기술에 의존하도록 무언의 종용을 지속하면 할수록,

인간은 그것이 '억압적' 또는 '사고의 제한'을 유도한다고 깨닫는다는 점이다.

'은밀'로 가리는 것이 아닌 전형적 사고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

 

이재훈의 [UNMONUMENT- 이것이 현실입니까].

결전장의 꼭대기를 점한 winner와 정복자.

그 밖의 모든 자들은 밟히고 부서지고 쓰러진다.

결코 기념스럽지 못한 비기념비.

 

이은실의 [대치].

문지방만 넘으면 깊이와 높이와 존재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러한 압도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실제로는 넘어갈 수 있을까?

인간은 끊임없이 갇혀있다는 갑갑함, 자유에 대한 갈구를 소망하지만,

때론 정답이 존재하고 안정감 있는 틀 안에서의 휴식에 만족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생각엔... 인간이란 건 평생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어리석지만 용기백배한 짐승임에 분명하다. 아무리 거대하게 구축된 보수라도 이 점을 간과한다면 언젠간 큰 코 다칠 수 밖에...

 

고등어의 [Meat & Clothes].

고등어의 작품은 하나의 그림보다 영역 내의 모든 설치와 드로잉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야만적인 남성의 세계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수많은 소녀 또는 미성인 자들과 자아를 세우고 안락을 얻기 위해 남성의 세계에 타협해가는 자들, 또는 한쪽 구석에서 조금씩 야만을 온건으로 변화시켜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기괴하고 아름답지만 생각외로 도식적이라는 생각도 드네.

 

* 사진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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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2 11:35 2009/01/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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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9/01/06 14:11

* 전시 - [오래된 미래]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2008년 12월 11일 ~ 2009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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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꿈꾸는 인간이 그들만의 질서를 통해 재편해나가는  세계는 이미 '인공'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이제 서서히 그 안의 모든 물질은 자연과 인공의 무뎌진 경계를 오고간다.

사실 물질은 그대로이나 인간의 사고만이 오고가는 것일 지도...

이러한 현대의 한 때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줄타기같은 상상의 세계.

 

우에마쓰 타쿠마의 [Coral Forest]

 

 

 



우에마쓰 타쿠마의 [Mix White Fawn-Coral]

 

임승천의 [바벨]

 

임승천의 [3호]

 

강태훈의 [책]

 

다니엘 리의 [Dreams]

 

공성훈의 [오리와 연꽃]

 

우에마쓰 타쿠마의 [Sh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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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14:11 2009/01/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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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9/01/03 00:44

[서양미술거장전 : 렘브란트를 만나다]를 보러갔다가

다른 심(?)을 봤습니다.

'花音'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예술의전당 입구에 있었는데 정말 흥미로웠어요. 예술가들의 상상력이란 참 아름답네요.

 

* 뱀발 : 너무 오랜만에 포스트를 쓰네염~

한동안 한 고민을 너무 깊게 했더니만 정신이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려진 기분이었슴다.

지나고 보니 새삼 제 주변의 여러분들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네요.

모두에게 감사드림다~!(뭣 모르고 감사받으려니 쑥스러우시져?ㅋㅋㅋ 일단 받아두세염 *^^*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다들 행복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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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00:44 2009/01/0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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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10/31 23:48

현실이란 무엇이고 허구란 어디까지일까?

평생을 걸쳐 인간이란 얼마나 위험한 정의에 기대어 행동하게 되는걸까?

생각보다 얄팍한 경계는 인간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하다.

 

예를 들어 김세진의 [닉네임]엔 사진 아래 그녀/그들과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모를 단어들이 붙어있다. 그리고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그녀/그들을 규정지우는 딱지가 붙이게 된다.

 




안규철의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

너무나도 당당하게 적어놓은 사용매뉴얼. 누군가의 진실되어보이는 글은 해본 적 없던 상상도, 없던 믿음도 생겨나게 한다.


 

김홍석의 [This is Coyote].

어찌보면 코믹하기까지한 인형. 그러나 그것을 연기하는, 그 안에 인형의 탈을 뒤집어 쓴 사람의 사연은 겉모습만큼 유쾌하진 않다. 오히려 진짜 현실에 존재할 법한 이야기는 살벌하기 이를 때 없다.


 

 

같은 김홍석의 [The Talk] 역시 허구로 치장되었지만 꽤나 현실적일 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도 사실은 아니겠지만 언제 강제출국당할 지 모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터뷰가 어려워서 분장한 대타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제는 꽤 알려진 탤런트 안내상이 외국인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면 진짜 외국인 인줄 알았을 거라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


 

정혜경의 작품들에는 슬슬 꿈보다 현실의 무게가 커지는 30대가 되면서 와닿은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통해 떠올린 김광석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떠올려준다.

작가는 김광석을 위해 스테인레스 재질의 [세계일주]와 기타로 만든 오토바이 [Touch Me]를 만들고,

그들을 기억하는 다양한 30대의 인터뷰를 영상에 담기도 했다.


그리고 김광석을 [Touch Me]에 태우고 여행을 보내는 [CHAOS]를 만들었는데, 뭐랄까 정겨운 느낌.



박재영의 [Dr.john's LAB]과 [CERTIFICATION MODELS]는 예전 황우석 줄기 세포, 신정아 학위 위조 등과 같이 매체를 통해 쉽게 믿어지고 우리의 의식을 왜곡시켰던 사건들과 비슷한 새로운 조작을 만들어낸다. 상대방의 의지에 따라 형태를 변형시키는 '보카이센'. 이를 믿게 하기 위한 실험실과 각종 증명서들은 어디선가 본 듯하여 헛웃음을 짓게 한다.


 

 

아래는 모두 박윤영의 [Downtown Eastside]라는 작품의 일부인데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찍고 싶은 이미지만 골라서... 그냥 내 소장용.ㅋㅋ





 

 

* 사진출처 - 서울 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현실과 허구의 경계 읽기]에서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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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23:48 2008/10/3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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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10/06 00:42

평소 참~ 안보는 분야인 다큐를 두편 봤다.

 

한편은 EIDF에 출품된 한 이탈리아 동성애 커플의 프로젝트 다큐 [지난 겨울, 갑자기],

다른 한편은 EBS 다큐프라임의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시리즈이다.

 

채널 특성과 제목 상 다소 선입견의 잣대를 대보자면

[지난 겨울, 갑자기]에선 사회의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을,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에서는 재미없을 순수과학에 대한 흥미를 얻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왠일인지 소수자의 가감없는 이야기는 - 약간 씁쓸하지만 - 연신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지루할 법한 수학 이야기는 - CG의 역할에 힘입어 - 감동스러웠다.

 

오랜만에 끄집어내어진 진부하기 짝이 없는 두 단어, '재미와 감동'.

그러나 진실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진정한 다큐의 힘을 표현하기엔 꽤 알맞아보인다.

그리고 나의 선입견을 무시한 전도된 감흥 역시 다큐의 힘 중 하나가 아닐까?



재미있게 본 다큐, [지난 겨울, 갑자기]

 

루카와 구스타프는 한마디로 직업 빵빵하고, 사랑스런 애인과 동거 중이고, 부모와 친구들 모두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안정적인 중산층이다.

세상 아쉬울 것 없이 살던 어느날, 이탈리아는 동거인들의 재산 상속, 병 간호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의 통과를 앞두고 뜨거운 공방 시작.

법안은 비혼동거인 모두에게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마녀 사냥마냥 동성애자에게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다.

화면을 보면 '유럽이 저렇게 보수적인가?' 의아할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

솔직히 그곳엔 교황청이 있다는 사실도, 교황청이 보수 대마왕이라는 사실도 깜빡했다.

도대체 내가 봐왔던 진보적인 수녀님들은 뭐였나?

 

루카와 구스타프도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길거리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들의 카메라는 소심하기 짝이 없다.

동성애 커플을 'B급 부부', '악마', '질병자'로 호명하는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맞을까봐 인터뷰를 중단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일 때는 카메라를 뒤로 물려 줌인으로 촬영하고,

심지어 질병 취급에 맞장구쳐주기까지 한다.

글로 적어놓고 보니 꽤 구슬펐을 것 같지만, 그 모든 화면이 지나갈 때마다 관객들은 함께 웃으며 공감했다.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일반 대중인 그들이

정확히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만큼만의 거리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온실의 크기와 세상의 참 모습을 찾는 건 리얼하면서도 재미있고 편안했다.

반대파들의 굳은(?) 신념에 맞닥뜨릴 땐 '저런 인간들과 어떻게 하나의 지구에서 공존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화면이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외출이 투사가 되려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과정임을 관객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법 감동스러운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우리나라에도 순수과학을 다루는 다큐가 있었나? 아니면 EBS라서 가능했던 영역일까?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한다길래 다큐프라임을 처음 시청해봤는데, 거기엔 평소 입시 전문이 아닌, 내가 모르는 EBS가 있었다.

그래봤자 넓은 의미에선 '계몽'의 연장이라 불리울지라도 말이지.

 

왠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시작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 다음을 기대하기까지,

수학이라는 고리의 진행과정이 우리의 논리와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우리의 인지를 어떻게 변화시켜가고 있는지 개괄한다.

 

학교에서의 수학은 딱 떨어지는 절대 세계와 같았다.

그러나 요즘 교양서적으로의 수학책을 읽다보면, 수만큼 정리 하나하나가 혁명이고 지반부터 뿌리채 뽑히는 세계도 참 드물다.

수학의 핵심어야말로 '변화'와 '상상'이다.

 

비록 수학계는 침체기일지라도 확실히 -교과서가 아닌- 수학에 관한 교양서적은 예전부터 깊이와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래도 사람이 있고 역사가 있고 변화가 있다는 점에서, 영상이라는 또다른 매체로 본다는 점에서, 아니 평생 보기 힘들 점토판, 파피루스 한장만으로도 절로 감동하게 된다.

 

게다가 그저 '기호'일 뿐인지라 잡기 힘든 화면을 메꾸는 CG를 보면서 3D의 세계가 나를 부르는 듯한 강렬한 욕망이...^^

 

 


 

♪ 다큐프라임 -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예고편 ♪

 

 

사진출처 : http://ebs.co.kr

영상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7582&photoId=34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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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00:42 2008/10/0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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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09/16 17:12

* jineeya님의 [헤어나올 수 없는 악몽 - 눈뜬 자들의 도시 ] 에 관련된 글.

 

뭐랄까...
내가 생각해본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라는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가 없었다면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재의 책인 동시에,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은 후 보면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왠지 뒷심이 딸리는 듯하여 약간 실망할 수도 있는 책이다.

 

 



(네타 약간 시작)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등기소의 보조서기원 50대의 주제 사라마구씨는 은밀하게 유명인의 자료를 모으는 것이 취미.
유리창 하나 못 깰 온순한 그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가슴 뛰게 하는 작업이다.
직원들 몰래 자료를 빼오고 복사하고 정리하고...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빼온 자료에 섞여온 30대의 한 여성의 자료를 가지고
그녀의 행방을, 실체를 쫓아 자료 수집에 나선다.

그러나 50 평생 처음으로 공문서를 위조하고, 공기관을 몰래 침입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얻은 정보는 초라하기 이를 때 없다.
목숨을 걸고 진행한 모험 때마다 '대모의 존재', '이혼', '부모', '자살' 등 단편적인 현상 이외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자살했는 지 조차 알지 못하고 생전의 얼굴 한번 못 본 주제씨는 공동묘지에서 그녀의 묘지를 찾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한다.

유명인보다 더 어려운 일반인의 삶에 대한 추적과 죽음이라는 결론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주제씨는 그의 거듭된 거짓말로 인해 직장 내에서의 입지조차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제씨의 예상치 못한 공범 - 주제씨의 전리품(?)을 몰래 함께 탐닉해오던 소장-의 도움을 얻어
주제씨는 계속 등기소의 직원으로 살아갈 것이며, 범죄 은닉 차원에서 30대의 그녀는 등기소 서류를 통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네타 약간 끝)


소설 속에서 주제씨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추적은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30년 넘게 살아온 그녀의 모든 것은 등기소의 종이 조각과 공동묘지의 팻말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서로를 구분하고,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온 시스템이란 건 이렇게 서로를 왜곡시키는 데도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느껴지는 혼란은 사회가 뒤집어 놓는 개인의 정체성과 개인들이 느끼는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주민등록번호와 핸드폰, 면허증, 학력, 출생지 등 규정된 각종 번호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결정지워진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무의식에 가깝게 규정된 번호들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번호들은 '이름'이라는 거대 기호에 포함관계를 이룬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고, 노동의 강도는 너무 강해졌으며, 지식의 습득은 너무 과도해졌다.
이로 인해 타인에 대해 투여할 감정선과 노력의 시간은 감소하기만 할 뿐이다.
결국 일생을 거쳐 인간관계는 깊이에 대한 고찰을 상실한 채,
-개개인의 유명세에 따라 - 관계량의 부족과 과잉이라는 변주 정도로만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사회는 인간이 창조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이 들 정도로 숨막히게 짜여져버린 거미줄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 책 표지 사진 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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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7:12 2008/09/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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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03/11 00:20

'세상은 수로 이루어졌다.'

이 문장을 접하는 이들은 대체로 두가지 정도의 생각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 '매트릭스'.
수많은 코드, 결국 0과 1로 무엇이든 표현 가능한 그 세상은 인간의 눈을 가리고 손을 묶었다.
그리고 자연을 두려워하여 자연과 맞서 성과 벽을 쌓았던 인간이 자연을 에너지로 소비해왔듯,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에너지로 소비되어가는 신세가 현실일 뿐이었다.

 

하나 더 꼽자면,
수가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오만한 수학자들의 콧대.
그러나 그들은 0의 출현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무리수 등에 여지없이 설 근원을 잃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렇듯 우리가 세상을 수로 바라볼만 했던 직간접의 경험들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대체로 서늘하거나 수세적일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한 기회에 오만한 콧대의 수학자 한명을 책으로 접하게 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등장하는 박사는 30년전만해도 세상을 들썩이는 천재수학자였으나, 17년 전 교통사고 이후 기억력이 80분으로 한정지워져버렸다.
17년 전의 일은 어려운 공식도 남김없이 알고 있으나 정작 8시간 전의 오늘 일은 머리 속에 한조각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직업도 그렇고, 최근 17년간 바깥 출입도 없었으며, 기억조차 없는 그가 처한 기본적인 상황은 매우 무미건조하기 이를 때 없을 법 하다, 아니 없어야 했다...만...

 

그는 새로운 파출부의 생일과 자신의 기억 속 숫자 속에서 우애수를 발견하였고,
파출부의 아들이 모자를 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숫자도 꺼리지 않고 보듬는 관대한 '루트'라는 애칭을 부여했다.

 

이후 박사와 파출부와 아들 '루트' 사이에는
완전수와 부족수, 과잉수, 소수, 삼각수 등이 채워지면서 점점 더 풍요로운 관계로 가꾸어졌다.

 

수학의 여왕인 정수의 관계를 연구하던 박사는 분명 세상의 진리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는 일종의 오만(?) 속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에게 수는 위대한 근원이고 세상의 전부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학자나 -나도 살짝 - 박사의 생각과 같길 바라지만,

현재의 수학이론계만 본다면 사실상 기대에 부응할만한 상태는 아닌가 보다.

 

그러나 박사를 통해 깨닫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수학에 조예가 깊었는지, 얼마나 믿음(ㅋㅋ)이 투철했는지가 아니다.

그는 수에 정체성을 담아 자기 완결적 세상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일관되게 살아갔다.

그 삶은 8시간짜리 기억력을 가지게 된 순간에도 결코 폐쇄적이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하는 건 오로지 수에 대한 것 뿐이었지만,

그 속에는 우정도, 관대함도, 풍성함과 부족함도, 완전함의 기쁨도, 결국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과연 나는 그와 같이 관대하고 일관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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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1 00:20 2008/03/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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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02/10 20:28

20세기 디자인의 혁명이라 불렸다는 베르너 팬톤.(진짜?)

1900년대 중반에 한창 활동, 신소재였던 플라스틱의 사용, 독특한 디자인은

소재면에선 후질 지 몰라도

디자인면에서는 21세기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겠다 싶다.

분명 전시는 의자나 소파, 조명기구 등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왠지 공간 자체를 염두에 두고 통째로 디자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히 붙어있는 사진들이 그걸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보면 무당집 같다 생각하겠지만,

공간 자체의 안정감이 느껴져서 화려함 속에 포근함이 있다.ㅋㅋ

 

디카를 가져갈 걸. 핸카로 찍었더니 특히 빨간색들이 많이 날라가버렸다.

꽃분홍이 아니라 진짜 빨간이었는데...





베르너팬톤의 상징인 하트모양 의자

 

 


 


 

가운데 있는 2인용 소파에 사람들 앉아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다. 적당히 차이나는 눈높이..


 


 

 

 

 



 

 

 

전시에 걸려있던 사진들

 

여긴 수영장이라오.

 

 


 

 

이 사진은 naver에서 찾은 사진..

실제 전시장에서도 들어가볼 수 있다.

그런데 전시용이라 그런가 폭신폭신해야 할 것 같은데 다소 딱딱.

그래도 이런 동굴같은 분위기 좋아...ㅋㅋ

 

* 베르너팬톤 전시회(http://www.vernerpant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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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0 20:28 2008/02/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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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02/02 13:09

사람들은 보통 '함께' 하고자 할 때 서로간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론 자신의 모든 부분을 한번에 쏟아내기도 하고,

때론 잘 보이기 위해 허점과 빈 구석을 완벽히 메운 채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함께 한다'는 건 그렇게 녹녹한 일이 아니다.

무게감에 질려, 가식에 질려 오히려 다가가고픈 거리만큼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바라보기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 다가가고픈, 함께 하고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자체로는 실체가 없지만 실체만이 가지는 '그림자'를 통해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그 형식 속에서 살포시 감추어진 듯, 노골적이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지만, 

상당히 공감 가고 진정성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지고 있다.

언뜻 보기엔 매우 건조해보이는 느낌은 오히려 관람자인 나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호기심과 이야기의 상상 기회를 부여한다.

거리 두기를 통한 편안함, 이것이 '함께'의 척도를 고민해볼 여유를 부여하는 듯 하다.

 

물론 그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해답을 준다고 볼 수는 없을 듯.

 

[축구]

겹쳐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축구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바보들의 대행진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캔버스 자체를 접어 만든 실루엣이 뭔가 역동감을 더해주는데, 안내지에 의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목숨을 거는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ㅋㅋ



[바보]

이 그림은 '바'라는 글자로 그려져있는 왼쪽 사람과 '보'라는 글자만으로 그려져있는 오른쪽 사람의 대화나 숨결이 얽혀있다.

둘의 대화는 잠시 스치거나 또는 잘 아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행하곤 하는 허무와 가식과 무시의 전제가 마치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된 듯한 모습이다.

 


[연꽃을 부는 사람]

순수한 도의 상징인 연꽃을 부는 사람.

뭔가 불어서 도를 완성한다거나 파괴하는 것 같다는 개념보다

그저 도 자체에 관심없고 무지한 사람의 야사시한 행위같은 느낌이 강하다.


 

* 그림 출처 : 성곡미술관 (http://sungkok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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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2 13:09 2008/02/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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