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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09/16 17:12

* jineeya님의 [헤어나올 수 없는 악몽 - 눈뜬 자들의 도시 ] 에 관련된 글.

 

뭐랄까...
내가 생각해본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라는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가 없었다면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재의 책인 동시에,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은 후 보면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왠지 뒷심이 딸리는 듯하여 약간 실망할 수도 있는 책이다.

 

 



(네타 약간 시작)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등기소의 보조서기원 50대의 주제 사라마구씨는 은밀하게 유명인의 자료를 모으는 것이 취미.
유리창 하나 못 깰 온순한 그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가슴 뛰게 하는 작업이다.
직원들 몰래 자료를 빼오고 복사하고 정리하고...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빼온 자료에 섞여온 30대의 한 여성의 자료를 가지고
그녀의 행방을, 실체를 쫓아 자료 수집에 나선다.

그러나 50 평생 처음으로 공문서를 위조하고, 공기관을 몰래 침입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얻은 정보는 초라하기 이를 때 없다.
목숨을 걸고 진행한 모험 때마다 '대모의 존재', '이혼', '부모', '자살' 등 단편적인 현상 이외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자살했는 지 조차 알지 못하고 생전의 얼굴 한번 못 본 주제씨는 공동묘지에서 그녀의 묘지를 찾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한다.

유명인보다 더 어려운 일반인의 삶에 대한 추적과 죽음이라는 결론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주제씨는 그의 거듭된 거짓말로 인해 직장 내에서의 입지조차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제씨의 예상치 못한 공범 - 주제씨의 전리품(?)을 몰래 함께 탐닉해오던 소장-의 도움을 얻어
주제씨는 계속 등기소의 직원으로 살아갈 것이며, 범죄 은닉 차원에서 30대의 그녀는 등기소 서류를 통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네타 약간 끝)


소설 속에서 주제씨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추적은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30년 넘게 살아온 그녀의 모든 것은 등기소의 종이 조각과 공동묘지의 팻말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서로를 구분하고,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온 시스템이란 건 이렇게 서로를 왜곡시키는 데도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느껴지는 혼란은 사회가 뒤집어 놓는 개인의 정체성과 개인들이 느끼는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주민등록번호와 핸드폰, 면허증, 학력, 출생지 등 규정된 각종 번호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결정지워진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무의식에 가깝게 규정된 번호들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번호들은 '이름'이라는 거대 기호에 포함관계를 이룬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고, 노동의 강도는 너무 강해졌으며, 지식의 습득은 너무 과도해졌다.
이로 인해 타인에 대해 투여할 감정선과 노력의 시간은 감소하기만 할 뿐이다.
결국 일생을 거쳐 인간관계는 깊이에 대한 고찰을 상실한 채,
-개개인의 유명세에 따라 - 관계량의 부족과 과잉이라는 변주 정도로만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사회는 인간이 창조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이 들 정도로 숨막히게 짜여져버린 거미줄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 책 표지 사진 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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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7:12 2008/09/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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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03/11 00:20

'세상은 수로 이루어졌다.'

이 문장을 접하는 이들은 대체로 두가지 정도의 생각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 '매트릭스'.
수많은 코드, 결국 0과 1로 무엇이든 표현 가능한 그 세상은 인간의 눈을 가리고 손을 묶었다.
그리고 자연을 두려워하여 자연과 맞서 성과 벽을 쌓았던 인간이 자연을 에너지로 소비해왔듯,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에너지로 소비되어가는 신세가 현실일 뿐이었다.

 

하나 더 꼽자면,
수가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오만한 수학자들의 콧대.
그러나 그들은 0의 출현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무리수 등에 여지없이 설 근원을 잃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렇듯 우리가 세상을 수로 바라볼만 했던 직간접의 경험들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대체로 서늘하거나 수세적일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한 기회에 오만한 콧대의 수학자 한명을 책으로 접하게 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등장하는 박사는 30년전만해도 세상을 들썩이는 천재수학자였으나, 17년 전 교통사고 이후 기억력이 80분으로 한정지워져버렸다.
17년 전의 일은 어려운 공식도 남김없이 알고 있으나 정작 8시간 전의 오늘 일은 머리 속에 한조각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직업도 그렇고, 최근 17년간 바깥 출입도 없었으며, 기억조차 없는 그가 처한 기본적인 상황은 매우 무미건조하기 이를 때 없을 법 하다, 아니 없어야 했다...만...

 

그는 새로운 파출부의 생일과 자신의 기억 속 숫자 속에서 우애수를 발견하였고,
파출부의 아들이 모자를 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숫자도 꺼리지 않고 보듬는 관대한 '루트'라는 애칭을 부여했다.

 

이후 박사와 파출부와 아들 '루트' 사이에는
완전수와 부족수, 과잉수, 소수, 삼각수 등이 채워지면서 점점 더 풍요로운 관계로 가꾸어졌다.

 

수학의 여왕인 정수의 관계를 연구하던 박사는 분명 세상의 진리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는 일종의 오만(?) 속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에게 수는 위대한 근원이고 세상의 전부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학자나 -나도 살짝 - 박사의 생각과 같길 바라지만,

현재의 수학이론계만 본다면 사실상 기대에 부응할만한 상태는 아닌가 보다.

 

그러나 박사를 통해 깨닫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수학에 조예가 깊었는지, 얼마나 믿음(ㅋㅋ)이 투철했는지가 아니다.

그는 수에 정체성을 담아 자기 완결적 세상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일관되게 살아갔다.

그 삶은 8시간짜리 기억력을 가지게 된 순간에도 결코 폐쇄적이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하는 건 오로지 수에 대한 것 뿐이었지만,

그 속에는 우정도, 관대함도, 풍성함과 부족함도, 완전함의 기쁨도, 결국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과연 나는 그와 같이 관대하고 일관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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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1 00:20 2008/03/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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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7/22 12:51

 

세상의 눈과 귀가 된 미디어 자극적인 소재만을 쫓아가는 사이,
우리들의 사는 세상엔 전쟁, 살인, 강간, 빈곤 등
인간 내부의 잔인함만을 확인할 수 있는 각종 인간성 상실의 현실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과연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자연스러운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오랜만에 들고 나온 그의 소설 [파피용]에서 주인공들이 선택한 인류 희망의 쟁취 방식은 바로 '탈출'이다.

 



과학자 이브가 발명한 빛으로 가는 우주선 모형, 그가 발견한 20조 킬로미터 너머 인간이 살만한 환경의 행성으로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에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이 몰락해가는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뜻을 함께 하는 재벌 맥 나마라, 항해사 엘리자베트, 기획및 관리자 사틴, 환경 및 심리 전문가 아드리앵 등은
20조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까지 14만4천여명을 태우고 1000년에 걸쳐 항해할 우주선을 만들어 마지막 희망의 전달을 시작한다.
우주선 안엔 중력과 인공태양을 만들어지고 노아의 방주마냥 동물, 식물 등 모든 필요한 생물체와 냉동 수정란이 담겨졌다.

 

처음엔 좋았다.
그들은 이미 각종 폭력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정치가, 공권력, 종교인, 군인 등을 배제시켰고
농부, 요리사, 대장장이, 건축가, 장인, 예술가 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전문가들을 선발한 상태였다.
그들은 자연 친화적 소재로 원하는 곳에 집을 지었고, 협동노동을 하였고 그렇게 행복한 듯 했다. 사람이 죽으면 흙에 묻히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졌다.
그러나 불현듯 발생한 첫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파피용호는 인류가 몇천, 몇만년을 걸쳐 겪었던
공권력과 왕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창출, 비노동, 환경의 생존을 위한 반란, 전쟁 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결국 1000년이 조금 넘어 행성에 도착할 즈음엔 단 6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중 행성에 착륙할 수 있었던 건 단 2명.
또 수정란으로 부화시킨 뱀에 물려 1명 사망.

 

혼자 남은 아드리앵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잇지 못했다는 좌절과 외로움의 세월을 보내다가 문득 수정란 중 인간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수정 시 필요한 골수를 얻기 위해 자신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수정란을 부화시킨다.
그렇게 태어난 에야에게 아드리앵은 자신도 잘 모르는 선대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에야는 난청 끼가 있는 지라
아드리앵을 '아담'이라 부르고,
우주선 만들었던 '이브'라는 이름을 자신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오래전 소형 우주선으로 탈출했던 사틴을 '사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생각해낸 인류 생존에 대한 단 한가지 놀라운 추측이다.

 

이것은 우주의 의지일지는 모르나

이대로라면 인간은 영원히 진보를 모르고 쳇바퀴만 돌리고 있는 다람쥐일 뿐이다.

 

그야말로 인류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과 권력욕, 소유욕에 대해 거대한 두려움을 품게 된다.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모든 인류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비결은 개미와 같은 공동체 사회의 구현일 것이라고...

그러나 행복의 기준같은 거, 사람마다 다른 게 당연하지 않을까?

쥐와 같이 각개격파의 이기주의만이 행복이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지 모른다.

희한한 건 쥐나 개미 양쪽 집단 모두 같은 비율의 높은 생존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베르베르는 질문하고 있다.

개미처럼 살건지 쥐처럼 살건지...

물론 개미처럼 살거라고 말하길 바라면서...

 

그러면서 살포시 마지막 주문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물론 이것이 베르베르의 마지막 외침이기는 하나
과연 가능한 것인지는 우리의 가슴 속에 대고 물어야 할 일이다.

 

* 사족 - 이번 소설은 베르베르의 이전 작품에 비해 극히 소품적 성격의 글이다.

그래서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살짝 실망이다.

1000년의 역사를 [개미]만큼 풀었어도 좋았을 법 한데,

더이상 글 쓰기 싫었는지 몇 페이지로 순식간에 정리를 해버렸다.

담긴 아이디어는 참신하나 상당히 아쉬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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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2 12:51 2007/07/2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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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7/07 13:41

이 책엔 단편소설이 있지만 소설책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산문도 있지만 산문집이라 규정할 순 없다.

사진도 있고, 콘탁스 G1 카메라 리뷰도 있고, 여행 기록도 있고, 심지어 음악 14곡이 수록된 음악CD도 붙어있지만,

사진집이라 하기엔, 카메라 설명집이라 하기엔, 여행책이라 하기엔 빈 구석이 너무 많다.

그런 책, 김영하가 쓴 [여행자]는 그런 책이다.

서점 어느 구석에 쳐박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아마도 비소설 부분에 꽂혀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르 구분 불가능의 책.




어느날 라디오를 듣다가 작가 김영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름지기 글쟁이는 글로 말하는 법.

그러나 그는 동료들도 인정하는 대단한 수다쟁이같다.

실제로 라디오 속 그는 나이 40이 넘었지만

마치 10대의 감성을 가진 50대 아줌마처럼 떠들고 있었다.

언젠가 미니 콘서트장에서 본 김수철이 생각났다.

이런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이 세상이 원하는 대로 점잖빼고 살고 있어 속의 끓는 피를 어찌 다스려야 할지 골머리 썩히는 겉만 어른된 자들의 특권이다.

언제나 구름위를 걷는 듯한 그들이야말로 '차분'의 진정한 깊이를 알고 있을 지도...

 

김영하의 [여행자]는 모두 8편이 나올 예정이라는 데, 그 첫번째 여행지는 바로 하이델베르크다.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이 이 책은 단편소설에 여행기, 사진, 카메라 리뷰 등이 모두 들어있다.

그러나 그는 글쟁이이다. 그것도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글쟁이.

그가 흡수한 글만큼이나 이 책은 그 모든 것이 나름의 감성의 지도를 따로 질서정연하게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무언가 쓸데없는 복합과 모순에 빠질 틈조차 주지 않게 만든 깔끔한 책이다.

사실 이 점은 가장 좋은 점이긴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왠지 '소설을 읽는 듯 했는데, 어느새 자기 여행기가 되더니 짧은 사진집이 되었다가 소설로 돌아왔다가...' 뭐 이런 보기좋은 환타지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진에 중점이 가있는듯한데 소설이 더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든 재미있고 좋고 쉬운 책이다.

음악을 들으며 읽다보면, 누구나 쉽게 '차분', '관조', '평온'이 일관되게 느껴진다.

나도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이렇게 테마를 가지고 한권씩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죽음'을 생각한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기 좋은 도시', 그가 본 하이델베르크다.

그 죽음은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는 야외 카페에 조용히 앉아 책 한권을 읽고 있는 것만큼 차분하고 고요해보인다.

죽음을 생각하기에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착각할지도 모를 만큼.

 

* 사진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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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7 13:41 2007/07/0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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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3/12 11:42

현실의 생생한 묘사를 담은 글이 내 마음에 닿을 때,
그 묘사의 상황은 어느덧 내 눈 앞에 드넓은 벌판처럼 펼쳐지고,
나는 반경 수미터,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공간을 재창조하기 시작한다.

 

표현이 사실적일수록 나의 머리가 수용 가능한 것일수록
재창조된 공간은 신뢰감을 얻고 사실성을 획득한다.

 

보통은 그러할 진데...

 

무협에 당도하면
수십, 수백을 단칼에 쳐도,
수백, 수천년을 뛰어넘어도,
수천, 수만리를 단숨에 넘어도
모든 상황이 생동감있게 펼쳐진다.

 




빙판에 매장했다가 다시 꺼내고도 동상에 걸리지 않고,
함께 묻어두었던 쇳덩이로 칼을 만들면 그 칼이 주인 옆에 붕붕 떠다니고,
심법을 쓰면 마치 거울인양 자신의 '자아'가 아닌 타인의 자아만을 비추는 얼굴이 되고,
평범한 초식 하나만 그어도 그의 숨은 내공을 눈치챌 수 있고,
뿜어져나오는 살기만으로도 죽을 듯 숨이 막히고...

어쩐지 현실에서도 존재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 가득 채워준다.

 

7편의 무협단편을 담은 진산무협단편집에는
정파와 사파의 대서사나 각종 검법의 세세한 설명은 없다.
다만 읽어나가다보면 왠지 '강호에서 산다'는 것, '강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강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단편이라는 짧은 문장들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수많은 내용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아무런 거부감이나 비약없이 자연스레 넘어가는 감정선을 느끼면서 작가의 수려한 문장에 감탄하게 된다.

 

일찌감치 강호를 벗어난 자는 인간의 삶을 얻었고 평범한 주검이라는 선물이 덤으로 기다리고 있다.
강호에 남은 자 중 너무나 살리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주검이라는 알지 못하는 검은 나락에 빠진 듯 쓰러져간다.
그러나 그들의 주검은 강호에 꽁꽁 묶인 자들에 비해 훨씬 담담하게 선택할 수 있는 어떤 선택지와도 같은 느낌이다.
다소 비열한 듯, 냉혹한 듯 보이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은 그 곳은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강호'라는 철조망 속의 고독 뿐이다.

 

강호를 살아가는, 한때 강호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바쳐 깨닫게 되는 삶의 마음가짐과,
사랑이든 증오든 때로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든 생생하고 애달픈 마음의 이야기를 진하게 읽은 기분.

 

고요속에 가슴에 손이 얹어지고 눈이 감겨지는,

심박동이 마구 뛰다가도 평정을 찾게 되는,

행복한 순간이다.

 

* 사진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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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2 11:42 2007/03/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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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11/26 18:14


이 책을 산 이유는 크게 세가지 정도 들 수 있다.

 

1. 가격이 싸다.

2. 사은품이 있다!

3. 내용이 재미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이 중 두가지 정도는 만족스럽다.

더더욱 다행인 것은 3번도 꽤 만족스럽다는 점이다.


 



1. 가격

 

원래 정가는 9,500원이나 인터넷 할인가 950원이 깎인 다음

무려 3,000원짜리 할인쿠폰이 붙었다.

그래서 실제 구입에 든 비용은 5,550원.

땡 잡았다!

물론 이런 단순 계산 방식의 구매로 인해 난 이미 한 인터넷서점에서 '실버회원'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2. 사은품

 

사은품은 '책 한권 더'에 '쵸콜렛피자무료시식권', '다이어리'까지.

 

한권 더 온 책은 '마트형 인간의 그럴싸한 밥상차리기'이길 바랬으나, '아들아 당당한 부자로 살아라'가 도착했다.

아무리 눈 씼고 봐도 동네주민 중에 아들에게 이따위 책을 줄만한 위인은 없는 지라 선심 쓰기도 틀렸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정~~~말 이상하다!)

그리고 어찌나 아들만 부자여야하는지.

 

쵸콜렛피자무료시식권 역시 다른 무언가를 사야 덤으로 더 주는 거였고, 그나마 가게는 그닥 가볼 일 없는 동네.

친정이 그 동네인 언니에게나 줘볼까나?

 

다이어리는 생각외로 원츄~!

아마도 2007년도 내내 jineeya에게서 새빨간 다이어리를 보게 될 것 같다.

 

3. 내용

 

어릴 적부터 작두개미 연구에 흥미를 보여 언젠간 적두개미를 연구하겠다는 꿈을 품은 TC.

그러나 그는 어느새 35년동안이나 상환해야할 대출금 덩어리인 집과 자동차, 가구과 차고 정도를 가진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회계사다.

 

세째아이를 갖고 싶었으나 아이를 키울 '다락방이 없어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막아야한다는 공포스러운 사실을 깨달은 어느 날.

그는 자기 인생과 이 나라(체제)의 대차대조표를 짜본 결과

1) 자신이 빚진 것은 실은 돈($)이 아니라 시간(T)이며 결국 T = $이다.

2) 이 체제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에게 빚진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생 적두개미를 연구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TC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차리는데 바로 '시간을 파는 자유주식회사'.

그가 작은 플라스크에  담아 파는 시간은 온전히 산 사람의 소유가 되었고, 이 상품은 공존의 히트를 치게 된다.

 

처음 5분짜리 시간의 플라스크를 팔았을 때, 정부와 기업은 오히려 노동자의 작업 능률이 상승한다고 무척 기뻐하였다.

2시간짜리를 팔기 시작하자 기업은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해야한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으나, 정부는 실업문제 극복이라며 여전히 좋아하였다.

1주일짜리 플라스크가 생산되자, 조만간 모든 노동자 임금의 1/4이 자유주식회사로 흘러들어갈 것이라 판단한 정부와 기업은 플라스크에 '유통기한'을 부여하는 법률을 통과시켜버린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 위기를 맞은 TC는 유통기한 15일 이내 한 사람당 35년짜리 시간들을 팔아치우고 대신 상환금 남은 집들을 모두 사들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살 집이 없어졌으나 35년치의 자신만의 시간을 되찾았고,

자유주식회사는 나라의 모든 부동산을 소유했으나 누구도 돈이 없어 집을 사지 않으니 부동산업은 쫄딱 망하고 '체제 전복세력'으로 찍혀 정부에 몰수당했다.

한편 정부는 모든 부동산을 소유하게되었으나 누구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모든 국민들의 시간이라는 부채가 자동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10일도 안되어 일어났다.

 

그럼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TC는 또다시 아이디어를 낸다.

원래 T = $.

나라는 국민들에게 시간을 빚지고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을 돈으로 사기로 한다.

다만 합리적으로.

예를 들어 집은 35년 상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 2,3년 정도의 시간으로 구매가 가능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여생 남은 시간을 기준으로 구매력이 생기는, 사실은 너무 당연한 데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게 그런거다.

결국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는 순간, 체제와 우리 사이의 대차대조표는 완전 반대가 된다. 체제는 그들이 차압해놓은 우리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부채로 떠안게 된다.

 

TC는 말한다.

"국민들이 평생 참고 살았고, 훨씬 더 여러 해 동안 감당해야 했을 대차대조표를, 체제는 단 일주일도 견딜 수 없었다는 게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그가 발명(특허 신청해서 팔았단다.ㅋㅋ)한 '시간 팔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명(?)할 수 있을 것인가?

 

 

* 사진 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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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18:14 2006/1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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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10/04 16:23

잭 런던의 장편 소설이되 잭 런던만의 장편소설이라하기엔 좀. 쓰다 만걸 후대의 로버트 피쉬가 완성시켜놓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뒷 부분은 스릴러일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앞부분에 촘촘히 다 짜여져있다.

그가 -비록 완성하지 못했으나- 썼던 이 소설은 꽤 의미심장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옛 맑스주의자들이 만든 암살단.

주로 들어오는 의뢰는

뭔가 꾸미려하지만 항상 어설퍼서 실패하고마는 아나키스트들 대신 사회의 악을 처단하고,

'아나키가 한 일'이라고 떠들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많다.

이들은 처단할 대상에 대해 실제로 '사회의 악인가?'라는 점을 냉정한 평가를 통해 판단한다.

평가 후 처단이 결정되면 1년 안에 처리하는데, 혹시 못하게 되면 의뢰인에게 대가를 다시 반환한다.

 




어느날 그들의 존재와 방식은 그릇되었다고 생각한 한 젊은이가 암살단의 지도자를 만나 지도자의 목숨을 의뢰한다.

젊은이는 그들의 존재 자체의 모순과 암살이 주는 사회의 위기에 대해 수준높고 열띤 구라구라를 통해 풀어나가고, 지도자는 결국 그의 논리에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젊은이는 '이제 암살단이 해체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지도자는 스스로를 처단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온 조직망을 동원하여 자신의 처단을 명한다.

 

갑작스레 지도자의 대리가 된 젊은이.

그가 만나게 되는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학문에 능통하고 고상하고 순수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지닌 지식인들이다.

그들의 이치에 맞는 한 무슨일이든 충실하게 따르는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이치에 너무 충실하여 조직원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지도자.

 

보기엔 그냥 '미친놈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 고지식함의 사슬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동네에서 '빨간약을 먹었다'며 좌절하는 네오의 후예들을 몇명 보긴 했어도

솔직히 운동의 역사도, 계보도, 계파도 하나도 모르니

'네가 뭘 안다고?'라고 한마디 들을 수 있겠으나,)

 

마치 원리원칙에 갇혀 끝내 자멸해버리는 일군의 좌파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진정성이라면

충분히 그들과 공명할 수 밖에 없는 측은지심이 발동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게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말이다.

여자 캐릭터는 남자들 이어주는 물건에 지나지 않아 살짝 기분 나쁘지만

어떻든 소설로써의 박진감 자체도 만만치 않은 글.

 

* 그림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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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4 16:23 2006/10/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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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8/01 06:05

[천지 개벽 이전의 시대]

 

아직 하늘과 땅이 없던 때, 세상은 어둑어둑할 뿐 형상이 없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의 존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帝江'.
제강은 '혼돈'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우게 되었다.

 

혼돈은 온몸이 마치 불꽃과 같은 색을 띄었고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지녔으며, 몸에 어떠한 구멍도 얼굴도 없었다.

( 그림 출처 : 이야기동양신화 에서... 원본은 명나라 호문환의 [산해경도]랍니다. )


한편 혼돈은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곧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다.

혼돈에게는 숙(?)과 홀(忽)이라는 벗이 있었는데, 각각 남쪽 바다와 북쪽 바다를 다스리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혼돈의 극진한 우정에 감복받아 보답을 하고자 하였는데, 몸에 아무런 구멍도 없는 혼돈을 보고, 숨쉬고 보고 듣고 먹을 수 있는 구멍 7개를 뚫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두 친구는 하루에 1개씩 7일동안 혼돈의 몸에 구멍을 뚫었는데, 아뿔싸~! 혼돈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두번째 이야기 읽기 ->  http://blog.jinbo.net/jineeya/?pid=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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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금없이 무슨 글이냐고요? ^___^


정재서교수가 쓴 [이야기 동양신화]를 읽는 중이다.
동양신화는 워낙 낯설어인지 책넘김이 꽤 좋다.

내가 발붙이며 살고 있는 이 동네 주변에서는
이런 신도 있었고, 저런 존재도 있었고, 그런 생명체도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
하지만 소설체가 아닌지라 한참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안경 너머 교수님의 얼굴이 불쑥 나오면서 한바탕 해설 들어가고~!

그냥 이야기만 쭉 듣다가 설명은 몰아서 뒤에 듣고 싶었던 나는 생각해봤다. 그냥 이야기만 뽑아서 정리하면 어떨까하고... 어차피 신화인데 뭘...
덕분에 내가 쓴 글은 비평도 독후감도 아니며 원본 책의 내용을 심하게 각색, 윤색 (심지어 퇴색)시킨 것이니 세심하게 믿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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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의하면 우리는 무수히 접해온 그리스로마의 신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에서 부터 관점을 달리 두고 편견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동양신화에서 말하는 태초의 혼돈이라는 존재는 인간중심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며, 인간도 자연도 심지어 혼돈의 상태 조차도 자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혼돈이 시간을 의미하는 숙 과 홀('잠깐', '순간'의 뜻을 지님) 에 의해 본의아니게 죽임당하게 되는데, 이제 자연의 지배가 시간의 지배, 인간의 지배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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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1 06:05 2004/08/0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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