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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5/07 17:03

* neoscrum님의 [< Seeing > 서평] 에 관련된 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서 단 한 사람을 뺀 모든 사람이 눈 멀면서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그 소설이 가장 가슴 치게 만드는 점은

어떤 도시라도 전 민중의 눈이 멀면 묘사되는 상황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매우 현실적인 인지, 사실주의적 감각이다.

 

눈먼 자가 사회의 일부일 땐

우리에서 '너'와 '나'의 분리가 명확해진다.

격리 수용되고, 다가온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하고, 먹을 것도 제때 지급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 격리된 와중에도 배급되는 음식을 독점하여 사람들의 재산을 뺏고 강간하는 매우 조직화된 -그러나 인간의 집단 형성 본능의 실체를 의심하게 할만한 매우 사악한- 집단체가 생기고...

 

모두가 눈이 먼 시점에선

인간의 창조물 도시는

- 누군가는 몇백년 몇천년 이어갈 거라 착각할지도 모르나-

신기루와 같이 단 1주일간의 인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는 곳이며,

이미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진 인간이란 존재들은

먹을 것을 약탈하고 약자를 폭행하고 함께 살기 위한 어떠한 규칙과 합의도 이루지 못한채 낱낱으로 흩어지다가

시체가 되면 개들에게 뜯어먹힌다.

 

여기서 작가는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인을 배치함으로써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폭풍우 속에서 독자를 위한 작은 숨구멍 하나를 열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일한 희망인 양

눈먼 자들의 사이에서 유지할 수 없는 정신을 유일하게 유지하며

가까스로 생존한 -더불어 주위 사람들을 함께 생존시킨 - 한 여인은 그러나,

후속편격인 [눈뜬 자들의 도시] 속 '권력에 눈먼 자'들의 사이에선 끝내 생존할 수 없었다.

 



지자체 선거가 있은 다음날, 어느 나라의 한 수도에서 투표자의 80%이상이 백지투표를 했다.

투표 결과의 무정부주의적 성격에 흥분한 정부는 같은 선거를 다시 한번 치렀으나 백지투표자의 수를 더욱 늘려주었을 뿐이다.

 

이런 극악무도할,

어쩌면 -결코 그렇지 않았으나- 국제적 거대 무정부조직의 나라 흔들기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이 투표 결과에 대해 정부는 수도 민중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기로 한다.

 

공식적으로 행해진 처벌은 계엄령 선포와 모든 행정, 입법, 사법기관의 이전.

그러나 경찰도 정치인도 사라진 수도에서 예상된 대규모 폭력이나 약탈 사건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행한 처벌 중 하나였으나 무정부주의자의 행위로 규정지워진 지하철역 폭파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시민들을 감시해도 그 뒤에 숨어있어야 할 악독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개입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도시의 민중들은

비록 폭압적 계엄령 속에서 입밖에 내지 못하지만

모두들 '시켜서 한게 아니예요. 내 의지대로 백지투표를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정부가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항복을 선언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우연히 4년 전 모두 눈먼 사태 와중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한 여인을 찾아낸 정부는 그녀를 백색투표 사태의 주동자로 지목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끝내 암살시키고 만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정부의 장난질에 놀아나거나 한 것 또한 아니다.

정부의 조작을 드러내려는 한 경찰과 어떤 언론사의 노력으로 새벽시간 아주 잠시 가판대에 나왔던 신문기사는

-비록 단기간에 가판대에서 사라졌지만-

시민들의 손에 의해 민주화 찌라시 마냥 서로 복사하고 서로에게 나누어주고 서로 읽어나가면서 퍼져나갔다.

 

 

민중의 찬란한 단결을 믿고 민중의 분열에 좌절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소설에서,

민중이 여전히 분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줌도 안되는 권력집단의 영원한 쳇바퀴 속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 색다른 좌절과 패배를 맛볼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에 나타난 긍정주의는 사라지고

노작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 사회의 사슬에 갇혔다.

 

과연 이 책의 그후,

4년 전 눈이 멀지 않았던 그녀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통해

민중은 무언가를 촉발시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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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17:03 2007/05/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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