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것들의 낯설음 - 르네 마그리트

유난히 머리 속이 복잡하던 어느 날.

꽤나 오래 영향을 미칠 일에 대해 꽤나 단시일 내에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

누군가와의 대화가, 누군가의 상담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필 재수없게 걸려든 그날의 그 '누군가'는 미술관 관람을 제안했고,

쏟아내야할 말이 많아 썩 내키지 않았던 나는 거절의 미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관계로 - 게다가 미술관 못 간지도 상당 기간 된 관계로 - 일단 가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 나타난 단순함에 구원받았다고나 할까?

'뭐 그리 조급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좀 우스워보이기까지 했다.

어떻든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초현실주의 르네 마그리트.

그가 표현하는 초현실은 우리가 늘상 봐왔으나 낯설게 배치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촉이나 느낌과 전혀 다르게 표현된 사물 등을 통해

우리를 현실 너머의 세계로 인도한다.

 

[보이지 않는 선수](1927)는 운동 중인 인물의 배치에서 느낄만한 역동성보다는 육중하면서도 정적인, 우울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나무의 기둥인양 두터운 체스 모양 기둥의 빼곡함이 화면 전체를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분이다. 나무 기둥 형상이었다면 훨씬 가볍게 태양을 향해 하늘로 뻗는 기분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상자에 갇힌 boxing helena 같은 저 여성. 그림을 가까이에서보면 저 락카같은 상자안에 하반신이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헉-_-;;; 입과 하반신이 소거된 그녀, 그녀야말로 진정 안보이는 선수일까?





[중세의 공항](1921)은 원근감을 무너뜨림으로써 르네 마그리트의 또다른 초현실주의 기법을 선보인다. 머리없는 삐에로나 귀족들. 붉은 벽, 창문으로 추락할 것 같은 사람.

갑자기 1920년대의 시대상이 궁금해지네.

 

[꿈의 산물](1927)이라는 작품은 보고만 있어도 정말 암울했다.

뭔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어두움을 느꼈는데, 이는 칠흑같은 어두움이 아니라 오히려 적당한 배치와 완전 검정이 아니라서 더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어둠이었다.

 

[벨기에 섬유노동자센터를 위한 포스터] 시리즈는 멀리서 볼때부터 노동조합 내지 노동자 냄새가 확~ 났다.

붉은 깃발, 마주잡은 손과 손. 너무 전형적이다보니 할 말을 잃을 정도..^^;;

 

 

[보물섬](1942). 붉은 홍토에서 돋아난 잎, 그리고 그 잎은 새이기도 한 그런 풀이 자라는 섬. 제목만큼이나 소중한 것을 품고 있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위대한 유산](1940)

작가는 도시에서 주로 살았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자연을 품고 있는 듯하면서도 한편 탁 트인 자연은 없어보인다.

위의 [보물섬]도 그렇고 [위대한 유산]도 그렇게 생각된다. 어두운 밤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들, 그러나 숲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 어둡지만 매우 안심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야수파를 패러디해서 '바슈'('암소'를 뜻함)시기를 만들었다는 르네 마그리트.

뭣 모르는 분석일 지 모르지만 [지성](1946)을 보면 작가가 왠지 패러디를 즐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녀 3총사 촛대, 뭔가 사상 무장용 모자를 썼으나 가면으로 은근슬쩍 가린 얼굴의 남자들, 왠지 그림의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조합이다. 동시에 지성의 본래 모습이란 게 '결국 이런 것'이라는 느낌도 들게 하고...

 

[대화의 기술](1950).

거대한 돌무덤 아래 선 개미만큼 작은 두사람, 왠지 대화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기억](1948)

석고 두상 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선명한 붉은 자국. 왠지 기억은 기억이되 '상처'의 기억을 나타내는 듯 하다.

 

[신뢰]l(1964~65)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중절모와 파이프 담배대같은 아이템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하지만 중절모를 쓴 말끔한 신사 얼굴 위에 파이프 담배대라, 신뢰보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광활한 바다](1951)는 자연이되 자연답지 못한 느낌의 극치라고 생각되는데,

액자 속에 갇힌 하늘과 구름에는 심지어 구 모양의 장식까지 되어 있다.

 

 

[여행의 추억](1952)은 그 화석화된 정물로 인해 마치 그 여행이 전쟁이었거나 지진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림이라는 게 다 그렇겠지만 찍힌 파일그림보다 실물이 훨씬 색의 깊이가 더한 것 같다.

 

[심금](1960)에서 보이는 거대한 투명 와인전에 산뜻한 구름은 왠지 심금을 울리기엔 너무나 가벼울 것 같은 거대함을 선사해준다.

 

[백지]는 내 상상력의 부족으로 제목과 이미지의 상관관계가 유추되진 않지만 꽤나 깊이가 느껴지는 좋은 그림이었다. 어두운 밤 속에 불편하게 떠있는 잎들과 달이지만 어쩐지 거부감 없고 자연스러운게 더욱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번 전시에서 느낀 건데 화가란 건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인 것 같다.

작품이 모두 이해가 되었고 수준이 낮았고 ... 뭐 이런 얘기가 아니다.

별볼일없는 상상력 때문인지 처음부터 제목에 얽매여있다가 곧 포기하고 작가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내 맘대로 감상해버리기로 했다.

다만 작가 스스로 밝힌 '자신의 과거도, 남의 과거도 규칙도 싫고 싱그러운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가 좋다'는 어록의 느낌이 내게도 전해지는 기분,

그러니 초현실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 사진출처 : http://www.renemagrit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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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9 19:46 2007/02/19 19:46
Posted by jine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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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니 2007/02/21 11:00  url  edit  reply

    저도 전시회 갔었는데.ㅎㅎ [심금]같은 작품들이 많이 와서 좋았어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한 번 더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여튼 지희누나, 새해 복 많이 받으삼~ (빨리도 하는 새해인사ㅋ)

  2. jineeya 2007/02/21 22:40  url  edit  reply

    레니/오. 운 좋았군. 난 사람에게 치여서...-_-;;; 레니 덧글을 들으니 나도 느긋한 주중에 한번쯤 더 가볼까하는 생각도 드네.^^
    새해 복많이(^____^)/

  3. ㅁㄴㅁ 2012/01/23 23:15  url  edit  reply

    글을 어떻게 보라는건지 모르겠네요 글짜색이 너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