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 - 그 새로운 이름

* 꼬마게시판(http://go.jinbo.net/jineeya)에서 퍼온 옛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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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진경 - 그 새로운 이름]
-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같은 전시회

듣기만해도 금강산 속을 걷는 듯한 감성을 전해주는 단어, "眞景".
진정한 절경을 그리고자 했던 겸재 정선의 의지로부터 꽃을 피우게 된 진경산수화는 이후 조선각지의 명승지가 그려지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경의 본뜻은 '실제의 경치'를 의미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고유명사로 인식할 정도이다. 이번 전시 [진경 - 그 새로운 이름]은 조선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경에 대해 200년도 훌쩍 넘긴 현대 작가들이 배포있게 자신만의 진경을 선보이고 있다.


원형으로서의 자연

역시 시작은 자연의 모습을 흠뻑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자연을 작품으로 접하다보니 마치 술에 취한듯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예를들어 비디오 모니터 10대를 통해 실제 하늘의 모습을 담아낸 정소연님의 작품 [하늘]의 경우에는, 15인치도 안될 작은 모니터들이었는데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뇌세포가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한지에 붓으로 규칙적인 먹점을 찍어놓은 김호득님의 수묵 작품 [흔들림]은 그야말로 점과 약간의 여백뿐인데도 꽤나 산같고 바다같은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대기로서의 풍경

한지에 채색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고운 파란색과 검정색을 가진 김보희님의 작품 [무제]는 산이라고 하기엔 낮은 언덕과 그 언덕 사이를 살며시 구비도는 호수를 그려내고 있다. 마치 신선들이 노니는 아득한 자연을 표현한 듯하면서도 어딘선가 본 듯한 느낌도 풍긴다. 반면 배병우님의 사진 작품 [오름]은 실제 우리가 보아온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 떠나 세상 처음보는 도원에 닿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양식으로서의 산수

유근택님의 작품은 A3 정도 되는 작은 화선지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앞동산의 풍경등을 담아냈다. 전시장에는 약 30장 정도 전시되었던 것 같은데, 밤과 낮, 비올때나 개었을 때, 해 날때와 달이 보일 때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앞동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가까운 대상을 주제로 표현해낸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있었던 반면, 송필용님의 작품 [만물상]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푸른 면과 하얀 선의 울긋불긋 솟은 힘찬 봉우리들과 화면 중심 하단부에 흑과 백으로 구성된 거대한 봉우리는 차가운 느낌의 색 배열과는 반대로 뜨거운 기운을 솟게 한다.


환경으로서의 도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최호철님의 작품에서는 역시 만화적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도시를 그릴라치면 차갑고 지친 느낌을 배제하고 표현하기란 힘들거다. 최호철님의 작품 역시 건조하고 기운없는 도시와 현대인을 고스라니 옮겨놓았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미소짓게 만드는 부분은 작가의 도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기 때문인 듯 싶다. 전성휘님의 작품 [도시의 섬]은 처음 볼 때는 유채로 색깔 고민없이 슬슬 그린 것 같아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촌스러운 색감을 떠올려보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지금도 광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 도시에는 원색적인 색의 아파트와 건물들이 있고, 그 한가운데 아직도 개발 논리의 뒷그늘에 자리잡고 기와집에서 옛시골의 풍경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여년 전 조선시대 작가들이 본 풍경과 현대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은 분명 차이가 있다.
옛날 양반들은 산수가 절경인 곳에 일부러 화가를 보내 풍경화로 담아오도록 했다는데, 역시 그 자연이 사람에게 맞고 자연스럽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 토박이인 내가 작품을 보면 자연의 풍경이 오히려 낯설고 지방의 어느어느 지역이라는데도 무릉도원 같아보인다. 오히려 도시의 환경에 안정감을 느끼고, 화가에게 시켜 풍경화를 그려오게 시킨 느낌이다.
그래도 과거나 현재나 작가들의 변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있다면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동반자적 개체로 자연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 전시회는 眞景을 담겠다는 거대한 목표가 아닌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과 사람과 자연을 담아낸 화가들의 집합 같지만, 화가들이 담은 모습은 서로 달라도 변치 않는 마음가짐을 통해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회였다.
아름답게 짜여졌으나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전시회...



김보희님의 [무제]


정선휘님의 [도시의 섬]


원인종님의 [치악산]


임택님의 [옮겨진 산수]



* 전시장 : 국립현대미술관(http://moca.go.kr)
* 사진 출처 : [진경 - 그 새로운 이름]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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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8 19:47 2003/12/08 19:47
Posted by jine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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