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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7/07/18 15:32

1. 같은 빈소 다른 죽음

 

11년 전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린이집교사 시절, 2박3일로 직장에서 합숙하면서 교구전시회를 준비하고 몸은 떡이 되어 집에 들어가보니,

내 여동생이 검은 상복을 준비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한 와중에 머리 속을 관통하는 '찡'하는 느낌,

장례식장에 가자마자 울먹이던 우리 엄마의 작은 어깨를 감싸안았던 느낌,

교구 전시 준비로 모자란 잠과 온갖 본드에 취한 몸임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던 느낌...

 

그때는 다 그랬다.

내 또래 친동생과 사촌들까지 우리들이 겪을만한 첫번째 죽음이었고,

할아버지보다 10년은 거뜬히 더 사셨을만큼 마음도 몸도 건강한 할머니가 대형트럭에 치인 건 정말 갑작스런 사건이었다.

 

그래서 당황했다.

얼떨결에 맞은 충격의 망치는

몇개월이 지나고나니 더욱 더 효과를 발휘했다.

난 아마도 냉혈동물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빈자리는 충분히 인식 가능한 수준이었다.



정확히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계속 아팠다.

거동을 할 수 없어지고 정확한 언어 표현이 불가능해졌다.

증손자를 보고 손자라고 착각했다. 

나의 조부모는 살갑다는 느낌과는 애저녁에 거리가 멀었고 오랜 세월 말도 거의 하지 않는 아웅다웅에 가까웠는데도,

배우자를 잃은 상처는 실로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했다.

 

누군가의 도움받아야 거동이 가능하고, 식사가 가능하고, 배변 처리가 가능했던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11년을 더 사시고는 돌아가셨다.

 

정말 놀랍게도 할머니를 보내드린 그 장례식장, 같은 빈소에서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의 동일함과는 상반되게

- 할아버지 사랑이 끔직했던 큰 고모를 제외하곤 -

다들 이보다 평온하고 일상적일 수 없을 정도로 무덤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인과 관련되어 이곳에 모인 그 모든 이들에게

이 죽음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어쩌면 11년 내내 받아들이고 있었던 그 무엇이다.

 

 

2. 마지막 끈의 사라짐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얘기만이 이번 장례의 냉기를 나타내는 건 아니다.

이번 조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식대의 1촌들이 지난 11년간 알콩달콩 행복한 형제자매애를 간직했다면 오늘의 풍경은 사뭇 달랐을 거다.

 

고인의 자식대인 1촌들의 지시에 따라

손주대인 2촌들은

10만원 넘는 화환들의 물결에 돈지랄의 시궁창 냄새를 맡으면서도 두가지 출처(누가 보낸 것인지, 누구 인맥을 타고 보내게 된 것인지)를 열심히 적고,

수만, 수십만원 단위의 부의금과 이후 상주+@들의 감사 표시라는 악성 연쇄고리를 이어가는 어른들의 생리에 신물내면서도 역시 두가지 출처를 적는 데 여념이 없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고인에 대해 특별히 나눌 말이 없이

일종의 실무 집행자인 손자, 손녀, 손부들은 그야말로 '장례'라는 일상생활 자체에 집중할 따름이다.

그 와중에 '누구는 농땡이다', '저렇게 일할거면 아예 있지나 말지' 같은 초저급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가운데, 주로 무수리과인 우리 집 2촌들이 하나같이 공주과인 듯한 작은 아버지댁에 대한 뒷담화성 공격을 -우리들끼리만- 은근히 퍼붓고 있다.

아 촌스러 촌스러.

 

그런데 평소같으면 울컥했을 우리 엄마.

왠일로 이번엔 고요와 평정심 유지가 부처에 상응한다.

'이제 마지막이야. 저 지겨운 인간들 볼 일 이제 없어. 너희들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참아.'

그 '지겨운 인간들'이 바로 자신의 누나요 동생들인 우리 아빠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빠의 침묵은 절대적 긍정이다.

두사람에게서 안도의 표정까지 감돈다.

물론 나는 확신한다.

언제나 볼장 다 볼 듯 싸우는 것 같아도 또 모이면 근사한 일가족의 행세가 가능하다.

그래도 확실히 형제자매간 붙들어매놓은 마지막 물리적 끈이 끊기면서

뭔가 엉킨 실타래 중 하나는 과감히 버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의 동생들, 사촌들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사촌들, 참 친했다. 워낙 가까이 살아와서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함께 어울렸다.

우리도 점점 나이 들면 저렇게 되려나?

할머니 장례식 땐 '우린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번 장례식엔 그런 생각조차 없는 백지상태다.

 

이 모든 상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다.

 

할아버지, 미안.

너무 할아버지 생각을 안하고 보내고 있네.

곱디고운 흙으로 돌아가 계실거죠?

죽음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조금 무섭지만

확실히 보이는 건 언젠가 똑같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언젠가 저도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잘 지낼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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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8 15:32 2007/07/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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