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8/09/16 17:12

* jineeya님의 [헤어나올 수 없는 악몽 - 눈뜬 자들의 도시 ] 에 관련된 글.

 

뭐랄까...
내가 생각해본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라는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가 없었다면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재의 책인 동시에,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은 후 보면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왠지 뒷심이 딸리는 듯하여 약간 실망할 수도 있는 책이다.

 

 



(네타 약간 시작)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등기소의 보조서기원 50대의 주제 사라마구씨는 은밀하게 유명인의 자료를 모으는 것이 취미.
유리창 하나 못 깰 온순한 그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가슴 뛰게 하는 작업이다.
직원들 몰래 자료를 빼오고 복사하고 정리하고...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빼온 자료에 섞여온 30대의 한 여성의 자료를 가지고
그녀의 행방을, 실체를 쫓아 자료 수집에 나선다.

그러나 50 평생 처음으로 공문서를 위조하고, 공기관을 몰래 침입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얻은 정보는 초라하기 이를 때 없다.
목숨을 걸고 진행한 모험 때마다 '대모의 존재', '이혼', '부모', '자살' 등 단편적인 현상 이외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자살했는 지 조차 알지 못하고 생전의 얼굴 한번 못 본 주제씨는 공동묘지에서 그녀의 묘지를 찾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한다.

유명인보다 더 어려운 일반인의 삶에 대한 추적과 죽음이라는 결론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주제씨는 그의 거듭된 거짓말로 인해 직장 내에서의 입지조차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제씨의 예상치 못한 공범 - 주제씨의 전리품(?)을 몰래 함께 탐닉해오던 소장-의 도움을 얻어
주제씨는 계속 등기소의 직원으로 살아갈 것이며, 범죄 은닉 차원에서 30대의 그녀는 등기소 서류를 통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네타 약간 끝)


소설 속에서 주제씨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추적은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30년 넘게 살아온 그녀의 모든 것은 등기소의 종이 조각과 공동묘지의 팻말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서로를 구분하고,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온 시스템이란 건 이렇게 서로를 왜곡시키는 데도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느껴지는 혼란은 사회가 뒤집어 놓는 개인의 정체성과 개인들이 느끼는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주민등록번호와 핸드폰, 면허증, 학력, 출생지 등 규정된 각종 번호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결정지워진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무의식에 가깝게 규정된 번호들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번호들은 '이름'이라는 거대 기호에 포함관계를 이룬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고, 노동의 강도는 너무 강해졌으며, 지식의 습득은 너무 과도해졌다.
이로 인해 타인에 대해 투여할 감정선과 노력의 시간은 감소하기만 할 뿐이다.
결국 일생을 거쳐 인간관계는 깊이에 대한 고찰을 상실한 채,
-개개인의 유명세에 따라 - 관계량의 부족과 과잉이라는 변주 정도로만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사회는 인간이 창조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이 들 정도로 숨막히게 짜여져버린 거미줄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 책 표지 사진 출처 : 알라딘(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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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7:12 2008/09/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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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헤어나올 수 없는 악몽 - 눈뜬 자들의 도시

    Tracked from 2008/09/16 17:20  삭제

    * neoscrum님의 [< Seeing > 서평] 에 관련된 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서 단 한 사람을 뺀 모든 사람이 눈 멀면서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그 소설이 가장 가슴 치게 만드는 점은 어떤 도시라도 전 민중의 눈이 멀면 묘사되는 상황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매우 현실적인 인지, 사실주의적 감각이다. 눈먼 자가 사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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