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_1998 - 2004/07/16 12:39

상무사 박물관을 떠난지 2분도 안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논밭과 단층집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곳에 6층 정도의 모텔스타일 숙박업소가 6,7 채 정도 몰려있었다. 정말 안어울리는 광경이지만 방 하나는 진짜 좋았다. 원래 80명이상 신청해야 이윤이 남는 기행에 12명만이 신청하여 왔으니, 게다가 비성수기때라 주인도 큼지막한 방을 아무 생각없이(?) 주었다. 나를 포함한 여자 4명은 콘도형(적어도 25평은 넘었을거다) 방이 주어졌다. 그냥 자고만 나오기엔 매우 아까운 방이었지만 그야말로 그냥 자기만 했다.

아침이 되어 같은 방 사람들과 함께 옆 건물로 온천욕을 갔다. 내려오는 계단에서 밖을 보니 지평선까지 논뿐이다.(간간히 집 빼고) 어렴풋이 안개 낀 모습이 아직도 머리속에 맴돈다. 거한 아침식사후 들른 곳은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집아의 작은 성이다. 70년대만해도 성안에 민가가 존재했다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되었다.



 

성문을 들어서니 중앙에 닦인 길 빼고는 온통 풀밭. 마치 공원에 소풍온 기분.

성벽이 동그랗게 둘러져있고, 안쪽은 완만한 언덕으로 처리되어있다. 걷기 시작하니까 아침의 어렴풋한 안개까지 곁들여져 머리속에선 온갖 상상의 이야기들이 스쳐갔다. 풀밭사이로 간간히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더위를 잠시 시킬 정도, 내지는 그리 심심하지 않을 정도다. 관리사무소 ( 옛 병사)가 있는 바로 앞에는 큰 느티나무가 서있는데, 어제 본 나무보다는 사이즈가 작지만 못지않게 멋진 나무다.

그 밑에 누워 뜻맞는 친구와 과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나누고픈 강렬한 욕망(?)이 마구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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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12:39 2004/07/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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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5 18:30

공세리 창터에 도착했다.

공세리 라는 곳에 세금으로 거둔 쌀을 쌓아 놓던 자리다. 원래 배로 들어왔던 쌀을 길거리에 그냥 던져놓았었는데, 창고의 필요성을 느낀 이후 곡창을 만들었단다. 지금은 약간의 돌담과 비들만 남아있다. 비에는 곡창 관리를 담당한 관리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그 당시 종3품정도로 창고 관리직치고는 꽤 높은 벼슬이었다지?

 

 

 

 

 

 

 

 

 

 

 










돌담을 쫓아 시골길을 걷다보니 성당이 하나 보였다. 옆에서 김대건 신부가 어떻고, 충남의 천주교가 어떻고 하며 얘기들 하는데, 별 관심없어 기억이 안난다. 어떻든 꽤 유명한 곳인 것 같다.(정말 기억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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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30 2004/07/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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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5 18:30


그 성당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의 느티나무다. 이 엄청난 크기를 보라! 느티나무는 벌레가 먹지 않아 깨끗하여, 어느 마을에서나 그 아래 평상이 놓이고 시원한 그늘에 모여앉아 이야기꽃 피우는 고향의 모습을 마련해준단다. 어릴 때 본 허리 굵은 은행나무보다 몇배는 큰 것 같다.

 

추사 고택에 도착하자, 여행 주최측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가 연출됐다.

고택 관람시간이 지난 것이다. 문앞 안내도만 열심히 보다가 - 집은 진짜 넓더라 - 백송있는 곳으로 이동

 

 

백송은 어린 김정희가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다가 그 씨(아니면 모종)을 얻어 심은 것이다. 100년이 넘은 나무치고는 작지만 원래 우리나라에선 자랄 수 없는 종이고 보면,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셈. 하얀 소나무는 처음 본다. 누군가 하얀색 칠해놓은 것 같아 껍질을 뜯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지. 해 질 때쯤 해를 등지고 서있는 백송의 모습이 마치 사막을 연상시킨다.(뒷쪽은 무덤이 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역광이라 포기.

 

숙소에 도착하기전 이번 여행의 보너스 코스에 잠시 들렀다. 예산, 덕산 지역 보부상의 유품을 모아둔 예덕 상무사 박물관. 규모나 유품 자체는 적어 박물관의 방문으로는 보부상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알 수 없다.

운 좋게도 우리 팀은 관장님의 직강을 들을 수 있었다. 보부상의 모든 것과 시대적 상황을 접목시켜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경륜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구하기 힘든 책자까지 얻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 역사상에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보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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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30 2004/07/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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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5 18:29

한겨레 옛길 문화지리기행

 

 - 본 여행의 간단한 소개 -

 

여행 제목 : 한겨레 옛길 문화지리기행 - 조선시대엔 우리나라에 운하가 있었다?!

일시 : 1998년 7월 4일(토) ~ 5일(일)

출발 : 7월 4일 오후 3시 30분 안산 상록수역 강사 : 김종혁(고려대 지리교육과 강사) 여정 : 서울(오후 3시 30분 출발) -> 서해안 고속도로 -> 인주면 공세리 창터 -> 추사 고택 -> 덕산 온천(1박) -> 해미읍성 -> 가적운하 -> 신두리 해수욕장 -> 안흥성 -> 서울(오후 9시 도착)

참가비 : 68,000원

문의 : 한겨레 신문사 문화센터(기행담당) 02-3272-8237



서울을 뜰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한겨레 신문에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왠지 학술적이면서 고전미 풍기는 제목에 빠져 본문을 열심히 읽어봤다. 잠시 뒤 엄청나게 멍청한 눈과 텅빈 머리가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 느껴지기 바로 직전까지 난 부동자세로 사물을 응시하므로, 타인들은 때로 집중력 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내 속도 모르면서...).

이 놈의 지명들,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 여정중에서 그나마 이해한 말은 추사고택 - 추사 김정희가 살던 집인가 보지 - 이었다.
물론 개인적 무지의 소치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저 난해하고 두서없는 문장을 보라!(난 원래 "한" 합리화합니다.)

사실 올해 초에 본 점(占)에서 '98년도에는 서울을 지키라고 하길래 밖에 안나가려고 했는데, 순전히 이놈의 지명들 알아보려고 가는 거다.

 

오후 2시 10분, 퇴근했다. 먼 길 떠나는 사람마냥 교사들에게 인사 다하고(당시 보육교사였음), 애들에게 작별인사 다 하고 나왔다. 1시간 반이면 충분하겠지. 왠 걸. 10분 지각했다. 상록수역에 내려 사람들을 뚫고 3시 40분에 횡단보도 건너 주차장에 도착. 희사모 모임(대학때의 소모임)이었으면 10분 지각이 1등 도착자였겠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김지희씨죠?"라고 누가 묻길래, "네" 했더니 날 태우자마자 인원 체크하더니 다 왔다면서 출발했다.(뭐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지)

 

서해안 고속도로는 처음 타 본다. 다 뚫리진 않았지만 대체로 오른쪽엔 물이 보였다. 2시간 넘게 달려 버스는 멈췄다.

공세리 창터인가 하고 내렸더니, 삽교천 방조제였다. 잘 뚫린 길 양옆에 높이가 꽤 되는 시멘트 언덕이 일정한 높이로 서있다.

언덕을 올라서면 끝이 안보이는 갯벌들. 건물도 사람도 없는 이 땅의 끝은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눈꺼풀이 벗겨지고 전면이 환해진다. 안타깝게도 전경이 한눈에 안 들어온다. 물고기의 눈을 부러워하며 한동안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이 맛에 여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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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29 2004/07/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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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7/15 01:05

 

그를 아시나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라고.
모르신다고요? 꽤 유명한 사람인데..

미술시간에 왠만큼 졸지 않으면 모르기도 쉽지 않은 '달리', 1904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꼭 100년째다.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가 '달리' 전시회 붐일거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9월까지 전시가 있을 예정이라는데, 지금은 예술의전당에서 전시중이다.

 



[ 내가 알던 달리 ]

 

 책에서 본 달리는 언제나 -스트레스가 아닌 - 삶의 활력이 될만한 정도의 긴장감을 주는 존재였다.
나무위에 흘러내리는 시계, 공중에 떠있는 호랑이, 나체의 여성, 아슬아슬한 창끝, 기이한 공간에 존재하는 초상화 등...
그림을 따라가다보면 언제나 그림 속의 이야기를 고민하게 만들고, 솜씨좋은 뎃생에 감탄하면서도 구도가 위태로워 절벽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한편 색감은 밝고 온후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초현실주의가 아니던가?
덕분에 절벽은 절벽인데 떨어져도 별 탈은 없을 것 같다는게 달리의 작품을 접한 후의 한결같은 결론이다.


[ 이번에 본 달리 ]


미리 밝히자면 내가 책으로 봐왔던 달리의 유화작품은 이번 전시에 한 점도 없다. 그 대신 대부분이 브론즈 소재인 조각상과 책의 삽화들을 볼 수 있었다.

삽화는 대체로 소품과 같은 사이즈의 연필화나 수채화들이고 대부분 목판이나 동판으로 제작되어졌다고 한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성경(bible)과 단테의 신곡 등에 삽입된 삽화들이었는데 성경의 삽화는 작품수가 꽤 방대했다.
안타까운 건 성경이든 신곡이든 내용을 안다치더라도, 유럽의 문화와 언어를 모르는 대한민국의 범인이 그 삽화에 감동받기란 불가능에 가까운게 아닐까 싶은 점이다.
결국 삽화들은 처음 몇점만 유심히 쳐다보는 척하다가 결국 대부분 그냥 흘려버리게 되었다.

 

반면 브론즈상들은 꽤 감동이다. 사실 달리는 유명해도 거장이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는데 브론즈상을 보니 무게감이 남다르다. 동물상도 바로 뛰쳐나갈 것 같지만, 특히 사람모양에 가까운 브론즈상들은 당연히 현실에 없는 환상이면서도 왠지 곧 살아나 눈을 마주칠 것 같았다.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불타오르는 여인'상. 불타서 죽는 건지 불길에 괴로워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불길이 올라오는 여인의 뒷모습은 마치 작은 날개가 돋아 지금이라도 당장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달리의 그 유명한 늘어지는 시계는 조각품으로도 여러점 남아있는데, 아마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림이 아니었을까 착각했을 거다.

한편 달리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의상과 가구도 전시되어있는데, 음... 보기 싫다.
의상은 정말 별로... 바느질도 엉망, 디스플레이도 엉망, 왜 이런 기획이 들어갔는지 당황스럽다.
더불어 전시관 자체는 꽤 규모가 있지만, 디스플레이는 너무 어둡게 해서 작품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맛을 없애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브론즈상들이 없었다면 상당히~! 우울했을 전시였다.
관람료도 비싸고 디스플레이도 않좋고...
게다가 아무리 컨셉이라도 미술책에서 봤음직한 유화 한점 볼 수 없었던 건 정말 안타까운 점이다.
이런 거장의 전시라면 유럽의 미술관에 갈 수 없는 자들의 대리만족에 나름대로 복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촌스러운건가?

그래도... 홈피는 예쁘네. http://www.ilovedali.com/

 

그림 출처 : 전시 팜플렛 + 네이버('불타오르는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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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01:05 2004/07/1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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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4/19 20:44

* 예전 꼬마게시판(http://go.jinbo.net/jineeya)에서 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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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인 [Pierre & Gilles 의 "Beautiful Dragon"].



사진작가였던 피에르와 화가였던 쥘.
1976년에 처음 만나 30여년간 공동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력 그대로 사진에 회화적 기법을 도입한 이들은 실제 80,90년대 프랑스의 시각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 지대한 인물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작품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동시에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이 허무함은 보고 있는 환상이 오래지 않아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야말로 불안정한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너무나 완벽해보이는 배경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남과 여라는 성정체성 - 이제는 시각적으로 남과 여를 정체성이라 규정하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지만 - 을 시각적으로 파괴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정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불어 그들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게이문화 역시 이러한 불안정성을 가속화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정스러움"은 "불완전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느새 그러저러하다고 믿어버린 우리들의 편협함속에
우리의 아름다움은 차마 눈뜨고 바로 쳐다보기 힘든 그 무엇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아름다워 너무나 불안정해보이고, 그래서 쳐다보기 어려운 것들...
왜.... 이렇게 되버린거지?
서글픈 세상...

* 사진출처 : 시립미술관 (
http://seoulmoa.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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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 Gilles_현실과 환타지의 경계에서

박 파 랑(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

오늘날 ‘피에르&쥘’이라는 고유명사로 알려진 두 사람의 만남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디자이너 겐조(Kenzo)의 파티에서 만난 이래 두 사람은 예술적으로, 동시에 인생에 있어서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유의 화려한 인물사진으로 패션?광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사진작가였던 피에르와 회화를 전공했던 쥘의 전력답게 이들의 상호보완적인 공동작업은 장 폴 고티에, 마돈나, 카트린느 드뉘브, 이기팝과 같은 유명인들에서부터 무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찍은 피에르의 초상사진에 쥘이 특유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장식적인 붓터치의 페인팅 작업으로 구현함으로써 완결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선원, 영화배우, 가수, 서커스와 장터, 꽃, 별이 흐드러진 하늘, 요정, 아이들, 이국적인 풍물, 우주, 성자와 순교자, 혹은 성자로 비유되는 유명인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오마주, 에로티시즘과 게이문화, 사랑과 죽음, 신화나 종교에 대한 이교도(異敎徒)적인 암시와 해석, 고딕과 바로크, 그리고 키치와 팝의 혼합....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인 가운데 그들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들만의 이상적인 인공낙원에 대한 예술적 판타지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빠트릴수 없는 부분이 바로 게이문화에 대해서일 것이다. 작품 면면에서 발견되는 황홀하리만큼 순수한 환타지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창조해낸 낙원을 관통하는 동성애적 감수성은 그들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변별점이되, 동시에 배격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에서 목격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애매모호한 혼합, 혹은 그 경계의 불확실성은, 작가 개인의 성정체성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로인해 그들이 공들여 만들어내는 작품 속 세계는 더할 나위없이 이상적이고 아름답지만 그들의 실제 세계는 세상의 편견와 적의로부터 투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아름답고 또한 슬프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특유의 동성애적 감수성을 고전적이고 동시에 환상적인 장식의 바로크적인 스타일로 구현해냄으로 해서 게이문화와 미학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형식적인 특징으로, 대부분의 작업이 인물의 초상에 국한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할것이다. 한 해 이들이 제작하는 열댓점 안팎의 작품에 있어 모델과의 관계는 작품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때로 주제와 컨셉이 떠올랐으나 이를 체현할 모델을 찾기위해 지연되기도, 또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주제와 컨셉, 모델, 그리고 작중 배경을 위해 조명, 소도구, 의상, 메이크업, 악세서리 심지어 사진의 프레임등 이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계산하고 의도하여 마침내 하나의 작업으로 탄생된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혹은 아주 가끔씩 이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다. 이렇게 하여 작가와 모델은 서로의 삶에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와 모델 사이에 싹틀 수밖에 없는 신뢰와 상호관계를 중시하기에 결국 피에르&쥘은 작품과 아주 감정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작가들에게 그렇듯이 특히나 두 사람에게 이들의 작품은 피에르와 쥘이라는 두 개체의 삶의 연속성에서 함께해왔던 결과물이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자신들의 삶과 친구들에 대한 사진앨범’ 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2000년 뉴욕 뉴뮤지엄에서 가진 대규모 전시에 대해 뉴욕 타임즈의 로버타 스미스는 “포스트모던(특히 연출) 사진, 패션사진, 상업 일러스트레이션, 미술 속의 남성누드, 게이 감수성의 부상(浮上)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하 보아야 할 전시”라고 평했다. 뉴욕 뉴 뮤지엄의 큐레이터 댄 카메론은 피에르와 쥘을 제프 쿤스나 신디 셔먼과 같은 반열의 작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태초에 사진이 있었고, 각기의 사진에 오리지널리티를 부과하는 회화작업을 통해 조금은 회화이고, 조금은 사진인, 회화와 사진의 모호한 경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의 작업은 현실과 환타지, 사진과 회화, 여성과 남성을 별개의 것으로 규정짓고 한정하는 대신 양자를 넘나드는 보다 폭넓은 사고와 환상에 대한 예술적 유연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보다 좀더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중에 있는 우리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들의 성취가 어디까지 이어질것인지, 또 이들의 작업에 대해 앞으로의 세대로부터 어떠한 접근과 해석이 시도될지 사뭇 궁금하다.

이번 전시는 피에르&쥘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1970년대 후반부터 2003년에 최신 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회고전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 68점이 출품되는 이번 전시는 프랑스 정부기관의 도움으로 다양한 국적의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작품을 대여받아 그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수 있는 기회이어서 더욱 뜻 깊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을 위해 작가는 아시아의 전설상의 동물을 주제로 선택하고 있는데, 바로 이번 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피에르&쥘_Beautiful Dragon]은 ‘아름다운 용’의 구현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동양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붉은색(Deep Asian Red)과 짚색(dull yellow)을 전시공간의 주조색으로 정하여, 전시테마는 물론 전시공간, 전시작품 모든 것이 하나의 통합적인 기획 아래에 구성되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일종의 이상적인 사찰이 전시장을 통해 재현되고, ‘아름다운 용’으로 비유되는 작가의 작품이 거대한 빨강과 노랑색 벽 위로 위치함으로 해서 관객은 현실과 환타지의 기묘한 경계에서 작가가 제공하는 이국적인 낙원에 들어서게 된다.

이렇듯 패션, 광고, 사진과 출판등 장르별 크로스오버를 통해 80년대와 90년대 프랑스 시각문화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화적 아이콘으로 일컫어지는 피에르&쥘의 작업을 통해 사진예술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내리는 실험성 강한 작업들을 목격할수 있을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심리적으로 자신과 다른 삶과 문화 양식을 영위하는 타개체에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경향을 보여왔던 우리사회가 쉽사리 접하지 못했던 다른 삶의 형식에서 기원하는 작업들과 이국적인 문화영역을 목격할수 있는 전시이기에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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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9 20:44 2004/04/1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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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3/12/21 17:05

* 꼬마게시판(http://go.jinbo.net/jineeya) 에서 퍼온 옛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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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 우리가 만든 거대한 像
캔버스 안에 녹아있는 현실세계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2003 대표작가 초대전 [ 신학철 - 우리가 만든 거대한 像 ]이 열리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안에 마로니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보다 더 놀랐던 건 전에 광주에서 봤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소갤러리 + 1층 전시실 + 2층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었는데, 내 동선에 따라 기억을 더듬어볼까 한다.

*** 소갤러리
작품명 [모내기]


*** 1층 전시실
1층 전시실에서는 신학철 선생님이 민중화가로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7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역사적 사건과 사람들이 연결되며 이어져있는 꼴라주 작품들은 묘한 감동이 있는데, 마치 작가가 일생을 걸쳐 한국의 근현대사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정리해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일례로, [ 한국 근대사 - 금강] 이라는 작품은 일제시대부터 한때 민중의 상징이기도 했던 명동성당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그림 하단부터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천천히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작품이 역사 교과서를 대체하는 느낌이다.

[ 작품명 : 한국근대사 - 금강 ]





[한국현대사 - 초혼곡] 시리즈는 돌아가신 열사들의 쓰러진 모습들을 세로로 세워, 다시 일어서는 열사 정신을 표현했다고 한다.(사실 전시장 돌고 있을 때 신학철 선생님이 직접 와 계셨었는데, 옆분에게 설명해주시는 걸 들었다. 오호호... 이런 행운이...)

[작품명 : 한국현대사 - 초혼곡]



*** 2층 전시실
2층 전시실에는 소갤러리와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작품만이 전시되어 있다. 116.7x80.3cm 나 되는 이 거대한 작품을 처음 본건 광주에서였다. 아마도 2000년이었던 것 같다. 광주 비엔날레 때 광주항쟁 특별전시회가 있었던 것 같다. 방 하나에 ㄷ 자 모양으로 전시된 이 그림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현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사실 그때는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제2 전시실을 가득 메운 이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기분이다. 1자로 길게 전시된 이 그림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지만, 벽 맞은 편에 제작에 사용된 신문, 잡지, 사진 등등과 작가의 메모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정리해온 작가의 일생중에서도 이 작품은 많은 대중의 인상에 강렬히 남을 만한 작품인 것 같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나의 역사를 나의 방식대로 정리할 수 있을까?


[ 작품명 : 갑순이와 갑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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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대표작가 초대전
기간 : 2003. 11.21 - 12.21
제목 : 신학철 - 우리가 만든 거대한 像
장소 : 마로니에미술관 제1,2 전시실, 소갤러리
그림출처 : 팜플렛/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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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1 17:05 2003/12/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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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3/12/08 19:47

* 꼬마게시판(http://go.jinbo.net/jineeya)에서 퍼온 옛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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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진경 - 그 새로운 이름]
-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같은 전시회

듣기만해도 금강산 속을 걷는 듯한 감성을 전해주는 단어, "眞景".
진정한 절경을 그리고자 했던 겸재 정선의 의지로부터 꽃을 피우게 된 진경산수화는 이후 조선각지의 명승지가 그려지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경의 본뜻은 '실제의 경치'를 의미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고유명사로 인식할 정도이다. 이번 전시 [진경 - 그 새로운 이름]은 조선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경에 대해 200년도 훌쩍 넘긴 현대 작가들이 배포있게 자신만의 진경을 선보이고 있다.


원형으로서의 자연

역시 시작은 자연의 모습을 흠뻑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자연을 작품으로 접하다보니 마치 술에 취한듯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예를들어 비디오 모니터 10대를 통해 실제 하늘의 모습을 담아낸 정소연님의 작품 [하늘]의 경우에는, 15인치도 안될 작은 모니터들이었는데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뇌세포가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한지에 붓으로 규칙적인 먹점을 찍어놓은 김호득님의 수묵 작품 [흔들림]은 그야말로 점과 약간의 여백뿐인데도 꽤나 산같고 바다같은 자연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대기로서의 풍경

한지에 채색한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고운 파란색과 검정색을 가진 김보희님의 작품 [무제]는 산이라고 하기엔 낮은 언덕과 그 언덕 사이를 살며시 구비도는 호수를 그려내고 있다. 마치 신선들이 노니는 아득한 자연을 표현한 듯하면서도 어딘선가 본 듯한 느낌도 풍긴다. 반면 배병우님의 사진 작품 [오름]은 실제 우리가 보아온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 떠나 세상 처음보는 도원에 닿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양식으로서의 산수

유근택님의 작품은 A3 정도 되는 작은 화선지에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앞동산의 풍경등을 담아냈다. 전시장에는 약 30장 정도 전시되었던 것 같은데, 밤과 낮, 비올때나 개었을 때, 해 날때와 달이 보일 때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앞동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가까운 대상을 주제로 표현해낸다고 느껴지는 작품이 있었던 반면, 송필용님의 작품 [만물상]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푸른 면과 하얀 선의 울긋불긋 솟은 힘찬 봉우리들과 화면 중심 하단부에 흑과 백으로 구성된 거대한 봉우리는 차가운 느낌의 색 배열과는 반대로 뜨거운 기운을 솟게 한다.


환경으로서의 도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최호철님의 작품에서는 역시 만화적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도시를 그릴라치면 차갑고 지친 느낌을 배제하고 표현하기란 힘들거다. 최호철님의 작품 역시 건조하고 기운없는 도시와 현대인을 고스라니 옮겨놓았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미소짓게 만드는 부분은 작가의 도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기 때문인 듯 싶다. 전성휘님의 작품 [도시의 섬]은 처음 볼 때는 유채로 색깔 고민없이 슬슬 그린 것 같아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촌스러운 색감을 떠올려보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지금도 광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 도시에는 원색적인 색의 아파트와 건물들이 있고, 그 한가운데 아직도 개발 논리의 뒷그늘에 자리잡고 기와집에서 옛시골의 풍경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여년 전 조선시대 작가들이 본 풍경과 현대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은 분명 차이가 있다.
옛날 양반들은 산수가 절경인 곳에 일부러 화가를 보내 풍경화로 담아오도록 했다는데, 역시 그 자연이 사람에게 맞고 자연스럽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 토박이인 내가 작품을 보면 자연의 풍경이 오히려 낯설고 지방의 어느어느 지역이라는데도 무릉도원 같아보인다. 오히려 도시의 환경에 안정감을 느끼고, 화가에게 시켜 풍경화를 그려오게 시킨 느낌이다.
그래도 과거나 현재나 작가들의 변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있다면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동반자적 개체로 자연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 전시회는 眞景을 담겠다는 거대한 목표가 아닌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과 사람과 자연을 담아낸 화가들의 집합 같지만, 화가들이 담은 모습은 서로 달라도 변치 않는 마음가짐을 통해 하나의 웅장한 풍경화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회였다.
아름답게 짜여졌으나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전시회...



김보희님의 [무제]


정선휘님의 [도시의 섬]


원인종님의 [치악산]


임택님의 [옮겨진 산수]



* 전시장 : 국립현대미술관(http://moca.go.kr)
* 사진 출처 : [진경 - 그 새로운 이름]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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