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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20 09:35

 

 

운하지터를 따라 가다보니 조그마한 언덕들 사이 골짜기가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울창한 나무 대신 물이 차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 곳은 그런대로 멋진 그림이 나온다. 골짜기 아래로는 예상치도 못하게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이 차고 깨끗했다. 이렇게 시원한 물과 골짜기를 감상하는 동안, 덩달아 따라온 운전기사아저씨(라고 말하기엔 너무 어려보이는)는 "심봤다!"를 외치며 삼을 2뿌리나 캤다. 자연산삼이라기보다 누군가 인삼씨를 뿌렸거나 어디선가 날아온 씨가 자란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게 어디야? 우리의 행선지마다 늘 쫓아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경청하더니 완전히 땡 잡았다.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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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0 09:35 2004/07/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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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7 17:18

조금 걷다보니 거의 정중앙에 소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중죄인을 목매는 용도로 쓰인 나무였다는 군. 19세기에는 천주교인의 순교가 많았다지. 난 몰랐었는데 충청도에 천주교인이 많단다. 순교한 사람도 많았고...

 



다음으로 이동한 곳이 굴포 운하지터. 지금은 주변이 모두 논밭으로 변하고 달랑 푯말만 서있다. 그러나 강사가 손으로 집는 곳을 따라 눈을 움직여 보니 다른 지대보다 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정도의 깊이로 무슨 배가 다녔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전엔 꽤 팠었겠지. 실제 이 통로를 이용해 배가 지나다닌 적이 있었다는데,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워낙 크고 물이 나가면서 갯벌이 하도 많이 깔려 깊이 파도 금방 매꿔졌다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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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7 17:18 2004/07/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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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6 12:39

상무사 박물관을 떠난지 2분도 안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논밭과 단층집밖에 보이지 않는 이 곳에 6층 정도의 모텔스타일 숙박업소가 6,7 채 정도 몰려있었다. 정말 안어울리는 광경이지만 방 하나는 진짜 좋았다. 원래 80명이상 신청해야 이윤이 남는 기행에 12명만이 신청하여 왔으니, 게다가 비성수기때라 주인도 큼지막한 방을 아무 생각없이(?) 주었다. 나를 포함한 여자 4명은 콘도형(적어도 25평은 넘었을거다) 방이 주어졌다. 그냥 자고만 나오기엔 매우 아까운 방이었지만 그야말로 그냥 자기만 했다.

아침이 되어 같은 방 사람들과 함께 옆 건물로 온천욕을 갔다. 내려오는 계단에서 밖을 보니 지평선까지 논뿐이다.(간간히 집 빼고) 어렴풋이 안개 낀 모습이 아직도 머리속에 맴돈다. 거한 아침식사후 들른 곳은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집아의 작은 성이다. 70년대만해도 성안에 민가가 존재했다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되었다.



 

성문을 들어서니 중앙에 닦인 길 빼고는 온통 풀밭. 마치 공원에 소풍온 기분.

성벽이 동그랗게 둘러져있고, 안쪽은 완만한 언덕으로 처리되어있다. 걷기 시작하니까 아침의 어렴풋한 안개까지 곁들여져 머리속에선 온갖 상상의 이야기들이 스쳐갔다. 풀밭사이로 간간히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더위를 잠시 시킬 정도, 내지는 그리 심심하지 않을 정도다. 관리사무소 ( 옛 병사)가 있는 바로 앞에는 큰 느티나무가 서있는데, 어제 본 나무보다는 사이즈가 작지만 못지않게 멋진 나무다.

그 밑에 누워 뜻맞는 친구와 과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나누고픈 강렬한 욕망(?)이 마구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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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12:39 2004/07/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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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5 18:30

공세리 창터에 도착했다.

공세리 라는 곳에 세금으로 거둔 쌀을 쌓아 놓던 자리다. 원래 배로 들어왔던 쌀을 길거리에 그냥 던져놓았었는데, 창고의 필요성을 느낀 이후 곡창을 만들었단다. 지금은 약간의 돌담과 비들만 남아있다. 비에는 곡창 관리를 담당한 관리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그 당시 종3품정도로 창고 관리직치고는 꽤 높은 벼슬이었다지?

 

 

 

 

 

 

 

 

 

 

 










돌담을 쫓아 시골길을 걷다보니 성당이 하나 보였다. 옆에서 김대건 신부가 어떻고, 충남의 천주교가 어떻고 하며 얘기들 하는데, 별 관심없어 기억이 안난다. 어떻든 꽤 유명한 곳인 것 같다.(정말 기억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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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30 2004/07/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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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5 18:30


그 성당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의 느티나무다. 이 엄청난 크기를 보라! 느티나무는 벌레가 먹지 않아 깨끗하여, 어느 마을에서나 그 아래 평상이 놓이고 시원한 그늘에 모여앉아 이야기꽃 피우는 고향의 모습을 마련해준단다. 어릴 때 본 허리 굵은 은행나무보다 몇배는 큰 것 같다.

 

추사 고택에 도착하자, 여행 주최측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가 연출됐다.

고택 관람시간이 지난 것이다. 문앞 안내도만 열심히 보다가 - 집은 진짜 넓더라 - 백송있는 곳으로 이동

 

 

백송은 어린 김정희가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다가 그 씨(아니면 모종)을 얻어 심은 것이다. 100년이 넘은 나무치고는 작지만 원래 우리나라에선 자랄 수 없는 종이고 보면,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셈. 하얀 소나무는 처음 본다. 누군가 하얀색 칠해놓은 것 같아 껍질을 뜯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지. 해 질 때쯤 해를 등지고 서있는 백송의 모습이 마치 사막을 연상시킨다.(뒷쪽은 무덤이 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역광이라 포기.

 

숙소에 도착하기전 이번 여행의 보너스 코스에 잠시 들렀다. 예산, 덕산 지역 보부상의 유품을 모아둔 예덕 상무사 박물관. 규모나 유품 자체는 적어 박물관의 방문으로는 보부상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알 수 없다.

운 좋게도 우리 팀은 관장님의 직강을 들을 수 있었다. 보부상의 모든 것과 시대적 상황을 접목시켜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경륜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구하기 힘든 책자까지 얻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 역사상에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보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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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30 2004/07/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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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_1998 - 2004/07/15 18:29

한겨레 옛길 문화지리기행

 

 - 본 여행의 간단한 소개 -

 

여행 제목 : 한겨레 옛길 문화지리기행 - 조선시대엔 우리나라에 운하가 있었다?!

일시 : 1998년 7월 4일(토) ~ 5일(일)

출발 : 7월 4일 오후 3시 30분 안산 상록수역 강사 : 김종혁(고려대 지리교육과 강사) 여정 : 서울(오후 3시 30분 출발) -> 서해안 고속도로 -> 인주면 공세리 창터 -> 추사 고택 -> 덕산 온천(1박) -> 해미읍성 -> 가적운하 -> 신두리 해수욕장 -> 안흥성 -> 서울(오후 9시 도착)

참가비 : 68,000원

문의 : 한겨레 신문사 문화센터(기행담당) 02-3272-8237



서울을 뜰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한겨레 신문에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왠지 학술적이면서 고전미 풍기는 제목에 빠져 본문을 열심히 읽어봤다. 잠시 뒤 엄청나게 멍청한 눈과 텅빈 머리가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 느껴지기 바로 직전까지 난 부동자세로 사물을 응시하므로, 타인들은 때로 집중력 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내 속도 모르면서...).

이 놈의 지명들,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 여정중에서 그나마 이해한 말은 추사고택 - 추사 김정희가 살던 집인가 보지 - 이었다.
물론 개인적 무지의 소치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저 난해하고 두서없는 문장을 보라!(난 원래 "한" 합리화합니다.)

사실 올해 초에 본 점(占)에서 '98년도에는 서울을 지키라고 하길래 밖에 안나가려고 했는데, 순전히 이놈의 지명들 알아보려고 가는 거다.

 

오후 2시 10분, 퇴근했다. 먼 길 떠나는 사람마냥 교사들에게 인사 다하고(당시 보육교사였음), 애들에게 작별인사 다 하고 나왔다. 1시간 반이면 충분하겠지. 왠 걸. 10분 지각했다. 상록수역에 내려 사람들을 뚫고 3시 40분에 횡단보도 건너 주차장에 도착. 희사모 모임(대학때의 소모임)이었으면 10분 지각이 1등 도착자였겠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김지희씨죠?"라고 누가 묻길래, "네" 했더니 날 태우자마자 인원 체크하더니 다 왔다면서 출발했다.(뭐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지)

 

서해안 고속도로는 처음 타 본다. 다 뚫리진 않았지만 대체로 오른쪽엔 물이 보였다. 2시간 넘게 달려 버스는 멈췄다.

공세리 창터인가 하고 내렸더니, 삽교천 방조제였다. 잘 뚫린 길 양옆에 높이가 꽤 되는 시멘트 언덕이 일정한 높이로 서있다.

언덕을 올라서면 끝이 안보이는 갯벌들. 건물도 사람도 없는 이 땅의 끝은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눈꺼풀이 벗겨지고 전면이 환해진다. 안타깝게도 전경이 한눈에 안 들어온다. 물고기의 눈을 부러워하며 한동안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이 맛에 여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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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8:29 2004/07/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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