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들뢰즈 개념어 사전 출간 기념 특강 (강사 신지영) - 4/28(토) 낮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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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20:11 2012/04/20 20:11

어떻게 자신의 사건을 살 것인가 - 이정우, <인지와 자본>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좋든 싫든 어떤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의 사건을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의 삶은 상당 부분 외부적 조건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러한 조건들로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 우리 안의 생명/기는 항상 “당신의 사건을 살아라”고 속삭인다. 이론적인 환원주의들과 사회적인 포획장치들에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나의 사건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 즉 기존의 개체성으로서의 나에 집착함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윤리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나”를 타자들에로 개방해 타자들과 함께 다양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의 사건을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창조적인 이-것, 특이존재에 귀속시켜 감으로써 “나”의 주체성과 다양체의 객체성을 화해시켜 나가는 것이다(이는 또한 “나는 내가 행하는 그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위대한 통찰을 탈-주체주의적으로 재사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창조적’이란 존재론적으로 새롭고 윤리적으로 좋음을 뜻한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좋음이란 생체권력, 기호체제,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생명, 주체, 노동을 귀환시키는 행위임을 뜻한다. 이런 주체-‘화’야말로 바로 자신의 사건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창조적’이란 존재론적으로 새롭고 윤리적으로 좋음을 뜻한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좋음이란 생체권력, 기호체제,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생명, 주체, 노동을 귀환시키는 행위임을 뜻한다. 이런 주체-‘화’야말로 바로 자신의 사건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 즉 기존의 개체성으로서의 나에 집착함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윤리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나”를 타자들에로 개방해 타자들과 함께 다양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의 사건을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창조적인 이-것, 특이존재에 귀속시켜 감으로써 “나”의 주체성과 다양체의 객체성을 화해시켜 나가는 것이다(이는 또한 “나는 내가 행하는 그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위대한 통찰을 탈-주체주의적으로 재사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창조적’이란 존재론적으로 새롭고 윤리적으로 좋음을 뜻한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좋음이란 생체권력, 기호체제,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생명, 주체, 노동을 귀환시키는 행위임을 뜻한다. 이런 주체-‘화’야말로 바로 자신의 사건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 즉 기존의 개체성으로서의 나에 집착함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윤리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나”를 타자들에로 개방해 타자들과 함께 다양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의 사건을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창조적인 이-것, 특이존재에 귀속시켜 감으로써 “나”의 주체성과 다양체의 객체성을 화해시켜 나가는 것이다(이는 또한 “나는 내가 행하는 그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위대한 통찰을 탈-주체주의적으로 재사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창조적’이란 존재론적으로 새롭고 윤리적으로 좋음을 뜻한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좋음이란 생체권력, 기호체제,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생명, 주체, 노동을 귀환시키는 행위임을 뜻한다. 이런 주체-‘화’야말로 바로 자신의 사건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정우, 「‘이-것’-되기로서의 주체-화」, 『인지와 자본』, 갈무리, 2011, 189~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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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20:08 2012/04/20 20:08

ay'tik (우리) - 존 홀러웨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크랙 캐피털리즘>(Crack Capitalism!,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자!>의 저자인

존 홀러웨이의 책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를 "이론적 원천"으로 하고 있다는 현대음악 곡.. <ay'tik>(우리)

(존 홀러웨이 John Holloway의 위키에 보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책이 이 곡의 "theoretical source which the strategic principles of this score came from."이라고 한다. 악보의 첫머리에도 같은 내용이 써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John_Holloway_(sociologist)

 

<ay'tik>을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는 링크 : 

http://www.reynaldoyoung.com/sounds/compositions/ay'tik.mp3

 

<ay'tik>의 악보를 볼 수 있는 사이트(<플럭서스>의 악보들처럼 누구나 공연가능하게 돼 있다!)

http://www.reynaldoyoung.com/scores/aytik/aytik.pdf

 

<ay'tik>의 부제 :

활동적 절규/비명을 위한 전략, 전술과 임의적인/제멋대로인 은유 (strategics, tactics, and an arbitrary metaphor for active screaming)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는 어떤 책인가 링크 : http://galmuri.elogin.co.kr/160067

 

작곡가의 이력- http://en.wikipedia.org/wiki/Reynaldo_Young

런던에서 활동하는 우루과이 출신의 작곡가/활동가 레날도 영(Reynaldo Young)은 "카드보드(판지, 마분지 등 두꺼운 종이.. 또는 판자촌이라는 의미도 있다) 시민들의 새로운 음악 앙상블"의 감독이자 설립자이다. 이 단체는 영국 유일의 노숙자, 난민, 망명신청자들로 구성된 아방가르드 전문(professional) 음악그룹이다. 

Founder and director of the ‘Cardboard Citizens New Music Ensemble’, the UK’s only professional avant-garde music group whose members are all homeless people, refugees and asylum see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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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11:48 2012/04/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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