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흐주의·아베나리우스주의의 변종들에 대하여
한동백 | 집행위원
✮ 머리말
✮ 1. 마흐주의·아베나리우스주의란 무엇인가?
✮ 2. 감각소여이론과 주관주의적 논리학
✮ 3. “감각소여이론을 극복한” 감각소여이론의 변종
✮ 결론: 철학의 근본문제의 의의
머리말
17-18세기 봉건제가 해체될 무렵, 진보적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봉건적 질서에 당위를 부여하던 당대 아리스토텔레스 신학을 부수는 데 열중하였다. 이러한 진보적 경향은 생산력과 과학의 진보를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 봉건 이데올로그들은 학문에 있어 이러한 진보적 흐름에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 하였다. 그들은 기존에 고수해 오던 낡은 논리를 반복하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그들이 대응 수준이 미비했다고 하여 봉건적 이데올로기가 곧바로 사멸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봉건적 이데올로기는 이미 기계제 대공업의 시대로 진입한 19세기 말까지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20세기에도 그 영향은 잔재해 있었는데, 1925년, 미국의 테네시주에서 벌어진 ‘스콥스 재판’은 그 단적인 예이다.
변혁적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먼저 변혁적인 물질적 토대, 즉 변혁적인 경제적 양식이 사회 전반에 있어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야 한다.
오늘날 낡은 질서로 되어있는 자본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역시 자본주의의 사멸 도정에서 과거 봉건적 이데올로기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봉건 이데올로그가 과거 진부하고 낡아빠진 공식으로 진보적 흐름을 막아 나섰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자본 이데올로그도 오늘날에 와서 본질적으로 같은 주장에 형태만 바꾸어 진보적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데 혈안이다. 봉건 이데올로기가 교회당과 일부의 교육기관에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확보하였었다면, 오늘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교육기관, 각종 사회적 매체, 강연 등을 통해 대중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경향은 이미 오래전에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정리한 바 있는 마흐주의·아베나리우스주의 경향이다.
마흐주의·아베나리우스주의의 현대적 전개로서 우리는 그것을 ‘현대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주관적 관념론은 논리학·심리철학·인식론 등의 영역에서 각자의 아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자 가지각색의 견해를 지니고 있고, 심지어 서로 ‘대립’한다. 그런데 우리가 부르주아 정파 간 대립이 서로 하나의 강력한 동일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듯이, 주관적 관념론자들 사이의 ‘대립’에도 서로 하나의 강력한 동일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단 하나, 감각을 포함하여 갖가지 의식 형태가 곧 존재를 결정하며, 논리학은 실재를 반영할 수 없으며, 또 논리학이 그것을 목표로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견해이다.
오늘날 인식론과 논리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견해는 논리학과 객관적 실재의 내재적 존재 양식 간의 절대적 분리를 전제하고 있기에 항상 프롤레타리아 실천투쟁의 당위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당위는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 법칙에 대한 진리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도 엄밀히 말해 경제학적 논리, 즉 주·객관적 논리학의 개별적 양태로서, 그것은 경제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한 논리(학) 또는 과학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이 진정 경제 현상에 대해서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학적 논리가 실재의 반영, 즉 실재의 내재적 운동 양식의 구체적 반영이라는 것에 있다. 만약에 우리가 이것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경제 현상을 다루는 것에 대해, 우리의 자의로 구상된 정지해 있는, 형식에 그쳐 있는 논리적 범주를 당장 발견된 (경제적) 경험적 표상에 억지로 맞추는 식─역설적으로, 주관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라서 언제든 그 기반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는 방법론으로서─으로 ‘조정’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정’이 외부 객관의 운동 양식을 온전히 서술해낼 수 있다는 것은 순전히 사기일 뿐이다. 그리고 사기에 근거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기로는 그 어떠한 사회활동의 정당한 당위도 얻어낼 수는 없다.
‘분석철학’이라 일컬어지는 현대 주관적 관념론은 지배 이데올로기로, 특히 미제국주의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든 지역에서 막강한 교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교조는 철학을 이른바, 논리학에 대한 주관주의적 견해를 옹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극도로 형식주의적인 심신 수반의 잡다한 형태에 얽매이는 경향까지 다양하나, 본질적으로는 소여된 감각을 절대화한다는 점─그들이 소여된 것에 대해서 어떠한 명칭을 붙이든 관계없이─에서 주관적 관념론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경향은 유물론, 실재론 등의 용어를 몰역사적·자의적으로 사용하여 수많은 군중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후베르트 호르스트만(Hubert Horstmann)은 이 경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주관적 관념론의 특수한 변종인 신실증주의는 과학적 지식의 원천과 대상을 객관적 실재가 아닌 ‘지각적으로 소여된 것’, 주관적인 ‘경험의 흐름(Erlebnisströmen)’에서 찾는데, 프랭크 박사는 이것이 “지각의 외부에 존재하는 현실은 없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한 경험적 흐름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며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특정 구조적 특성은 일치하며 “과학은 그러한 구조적 특성에 대한 진술로 제한되어야 한다 … ”고 언급한다. 과학의 임무는 경험의 흐름 내부에서 또는 그 사이의 질서, 구조 및 연결을 찾고, 그것을 개념적으로 고정하고, 이러한 개념을 활용하여 ‘경험적 실재’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인데, 여기서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의식의 외부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동시에 여러 경험의 흐름에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1
현대 주관적 관념론에 대한 체계적 비판은 변혁적 계급운동에 대한 체계적 발전과 맞닿아 있다. 현대 주관적 관념론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혼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 주관적 관념론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여 그것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 주관적 관념론이 과연 과거의 주관적 관념론에서 드러났던 본질적 속성을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반복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의 반동성과 비과학성을 밝혀내야 한다.
나는 이 길의 첫 번째 도정이 19세기 말 마흐주의와 아베나리우스주의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 주관적 관념론은 이보다 훨씬 과거, 즉 버클리, 흄 그리고 칸트로까지 소급되는 주관주의를 이어받고 있으며, 그들이 주로 인용하는 것의 방점도 세 사상가에 찍혀 있다. 하지만, 세 이데올로그는 기껏해야 주관적 관념론과 불가지론의 근대적 발현,─바로 이 발현의 시작점에 머무는 것에 불과했다. 더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것이 다양한 내적 논의─주관적 관념론적 세계관 내에서의─를 통해 체계화되기 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마흐주의와 아베나리우스주의는 그러한 내적 논의의 결과물로서, 주관적 관념론이 다양한 논쟁 과정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견해에 귀착할 수밖에 없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주관적 관념론을 다루는 데 첫 번째 지점에 배치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마흐주의·아베나리우스주의를 다루면서 주관적 관념론이 그 내적인 논의, 심지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맞서’ 어떻게 ‘대응’하여 왔는지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현대 주관적 관념론의 진부한 대응 방식의 원천을 파악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러셀과 그 후예들의 감각소여이론을 다룬 후 현대 분석철학이 이 지점에서 어떠한 ‘문제점’을 파악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였는지 추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지각색의 주관적 관념론이 본질적으로 존재와 인식에 관해 동일한 결론에 귀착할 수밖에 없음을 밝히고, 이것이 철학의 근본문제가 지니는 의의와 어떻게 상관을 이루는지 총괄할 것이다.
2024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