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한동백 | 집행위원
3. “감각소여이론을 극복한” 감각소여이론의 변종
앞서 다룬 분석철학의 전기(前期) 흐름은 논리학의 여러 대상을 오로지 운동하지 않는, 완전히 정지해 있는 추상적 보편자로 다루었다는 것에 그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이는 형식논리학의 한계와 맞닿는 것이다.
오래전 헤겔은 논리학에서 형식논리학을 절대시하는 학자들이 각자 형식주의를 고수하는 선에서 그것 체계의 내재적 모순을 직시하는 순간, 그것을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른바, 칸트의 이율배반과 같은─으로 간주해 버린 후, 그 모순에 겁먹고 학적 체계성 범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철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하였다. 오성적 인식은 논리적 사유의 추상적 제 대상의 내적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갖추고는 있지만, 그러한 모순을 극복할 힘은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는 변증논리학의 발전사와 관련이 있다. 변증논리학이 그 자신의 확고한 토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형식논리학의 내재적 한계성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변증논리학은 오로지 이러한 토대 위에서─형식논리학의 내재적 모순이 학문적 인식으로서의 통일의 계기가 되는 한에서 확고한 논리학으로서 세계에 자리 잡을 수 있다.
헤겔은 형식논리학적 지(知)의 한계를 오성적 사유 또는 오성적 인식의 한계라고 하였다. 그런데 헤겔은 이 학자가, 즉 형식논리학자 자신이 ‘각자 형식주의를 고수하는’ 필연적 계기를 현실의 역사가 아니라 사유의 역사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의 저서 『정신현상학』은 이에 관한 난해한 해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헤겔이 말한 그 사유의 역사란 현실의 역사를 반영한다. 오늘날 숱하게 많은 부르주아 철학가의 이른바 ‘학문’적 공황(恐惶) 증세는 자본주의 사멸기, 전반적 위기의 심화 속에서 부르주아─망해가는 사회를 애써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는 계급─가 여전히 자본주의 생산력을 관리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한 현실적 측면, 그리고 이 현실적 측면에서 비롯된 부르주아의 위축된 심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반영으로서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위축된 심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지는 않는다. 현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그것을 매우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성격 또한 지닌다. 우리가,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는 수많은 사례를 숱하게 볼 수 있듯이, 현실적 모순을 머릿속 가상을 통해 언제든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데, 이러한 ‘없는 것’임을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의 노력도 언제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은폐의 과정은 지난한 ‘학문적 노력’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즉 사기도 일정 정도 그 ‘내적인 체계성’이 서야지만 비로소 사기로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반동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현대에 들어서 철학만이 아니라 갖가지 사회과학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번잡한 이념으로 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철옹성과도 같은 강단 패거리의 형성은 더 효율적인 환경에서 이러한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으로 다룰 〈“감각소여이론을 극복한” 감각소여이론의 변종〉이라는 것도 바로 언급한 류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 분석철학과 후기 분석철학1은 모두 극단적으로 형해화(形骸化)된 ‘철학적 서술’, 주관적 관념론에 기초해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부르주아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지니고 있지만, 후기 분석철학은 전기보다 이론적으로, 존재─그들이 ‘형이상학적 주제’의 대상이라 간주하는─와 인식, 그리고 논리학에 대한 더욱 암담한 전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는 1940년대 중반-1950년대 이후 독점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부르주아 국가적 관리와 개입의 대대적인 강화를 반영한다.2 즉 1870-80년대까지의 부르주아 철학이 사회의 생산력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진취성’을 일정 반영하였음에 반해, 분석철학의 후기적 흐름은 자본주의 생산력 관리에서 부르주아의 무능에 대한 정당화가 노골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전기 분석철학의 흐름은 이 사이에 머무른다.
오늘날까지 후기 분석철학에 영향을 준 거론되는 이데올로그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이다. 두 이데올로그의 견해가 부르주아 철학 체계, 그중에서도 현대 주관적 관념론의 ‘발전’에서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수많은 부르주아 철학사가가 정리한 바 있다.
먼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부르주아 철학자인 뮤니츠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운동[논리실증주의; 인용자]은 영향력이 있었고 응집력을 가졌던 자신 초기의 위상을 이제는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나타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논리실증주의 철학의 가장 핵심에 내재해 있는 약점들이 많이 노출되었고, 치명적인 비판적 검토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비판들 가운데서도 특히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비중을 두고 의거하였던 유의미성의 기준(검증 가능성의 원리)의 해석과 자질에 관한 문제가 많았다. 다른 한편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출현과 그 영향, 이러한 유형과는 다르지만 옥스퍼드 학파의 ‘일상언어’ 철학의 번성, 그 밖의 논리학과 언어학의 발달 등은 ‘분석철학’의 주요 표본으로서 논리실증주의가 차지하고 있었던 그 중심적인 위상을 빼앗아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분석철학자들이 골몰하게 된 관심들은, 전쟁 기간 중에 있었던 관심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모든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에서 볼 때 논리실증주의는 효과적인 철학적 운동으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3
또다른 부르주아 철학자인 슈워츠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일상언어철학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옥스퍼트 철학자들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원자주의자들과 논리실증주의자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더 인도적이며, 덜 조직화된 방식으로 철학에 접근했다. 그들의 방법은 전통적인 방법과 문제를 일소하고, 그런 방법과 문제들을 신화라 부르며, 전통 철학의 헛소리로 가득한 전문적인 단선적 논변을 지적함으로써 더 느슨하면서 훨씬 더 현대주의적인 형태로 철학을 대변했다. 이것은 양차 세계대전 후 불황에 빠졌다가 그 뒤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무시무시한 핵 교착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1960년의 젊은 지식인들은 후기 비트겐슈타인과 오스틴의 주문이 자신들을 황홀케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미국에서는 많은 철학자가 옥스퍼드 철학자들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았다. 존 설(John Searle)은 오스틴의 언어철학을 확장하고 해설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바쳤다. … 스탠리 캐밸(Stanley Cavell)의 논문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의미해야 하는가?(Must We Mean What We Say?, Cavell 1964/1958)”는 일상언어철학의 방법에 대해 대단히 칭찬하면서 옹호하고 있는 논문이다.”4
이러한 ‘호평’을 받음에 있어 콰인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다수 부르주아 철학가는 1950년대 이후의 분석철학, 즉 후기 분석철학이 모든 대응적 소여론을 극복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대상에 관한 어떠한 사유 규정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소여된 대상으로서의 (정신적인) 감각소여를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그러한 대상을 기초로 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편화된 실천 양식이 뒤따른다는 것을 승인하는 순간, 그것은 (인식론적 의미에서의) 대응을 긍정한 것이 된다. 실은 이러한 감각소여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그것이 〈변증법과 논리학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가〉라는 방향에서 고찰될 때라야 비로소 중요한 주제로서 다루어질 수 있다. 이를 거꾸로 말한다면, 어떠한 것이 ‘소여’되고, 그것에 ‘대응’된 ‘모종의 실천 양식’이 발생한다는 것만을 언술하는 것은 철학 체계에서 극히 제한된, 추상적인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소여에 대한 이러한 추상적 취급만으로는 인식의 제반 법칙을 설명하기 벅찬 것을 넘어 그 어떠한 유실(有實)한 평가,─앞서 언급한 이론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평가가 오고 가기도 힘들다. 이는 마치 사과 껍질의 화학적-생물학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그것의 색상이 어떠한 빛깔을 머금은 붉은색인가 따지는 것과도 같은 막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과 껍질의 색을 추상적 범주로써 분류하는 것이 그 껍질의 구체적 성질을 연구하기에 앞서 행해지는 과학적 실천의 일종임은 자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과 껍질의 구체적 성질과 빛의 일부 물리적 성질이 체계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사과 껍질의 색은 그저 추상적인 색상 범주로서의 그 ‘색’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현대 주관적 관념론이 유물론을 자칭하면서 말하는 감각소여이론이란, 바로 이러한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논변의 집합에 불과하다. 중요하게 다룰 만한 것─내가 제2장에서 언급한 ‘감각소여’를 상기하는 일환으로서 중히 다루어져야 하는 것─은 현대 주관적 관념론 진영에서 감각소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 역시 실제로는 감각소여를 전제한 논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는 것이며, 두 집단 모두 객관대상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객관적 실재를 주관적 범주와 동격으로 놓고 종국적으로는 주관적 범주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르주아 철학사가들은 그들 견해의 이러한 측면을 일절 다루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현대 주관적 관념론자 사이에서 오고 가는 이 ‘감각소여이론’이란, 실제로 ‘감각소여’를 다루는 이론이라기보단, 인식주관이 그 자신의 주관적 사유 규정, 주관적 범주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반복하는 것이거나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객관)대상 그 자체임을 애둘러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분석철학의 후기적 흐름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이라는 학자 각각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이전의 흐름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면서, 그저 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노골화된 주관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2024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