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각 의제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위한 시론: 제4장 (1)

한동백 | 집행위원


4. 각 부문 운동의 발전 추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 저항적 성격을 띠는 모든 사회운동이 특수한 실천 및 이를 둘러싼 현실을 반영한 일정한 이념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각 부문 운동은 보편적 모순의 개별화 작용, 즉 그것의 구체적 전개를 통해 자리 잡은 개별적 모순을 반영함을 파악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부문 운동의 추이, 내용은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발전 국면과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시대에서 부문 운동 역시 제국주의 시대라는 자본주의의 특수 규정 속에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기 존립 기반을 가진다.

 

물론 각 부문 운동이 발생하게 되는 연유에는 우연적 계기도 그에 못지않게 혼재되어 있기는 하나, 이 부문 운동이 진행되면서 점차 일정한 규모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 성격 규정에서는, 확립되어있는 역사적 국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만큼, 노동운동과의 관계에서 그것은 점차 단순한 무연고한 차이로서 노동운동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을 이루는 대립물로서 대면하는 것으로 된다.

 

부문 운동의 이러한 배경 속에서 노동운동이 이 실천 형태와 긍정적인 통일을 이루려면 가장 처음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은 층차화되어 있는 부문 운동의 내적 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내적 계기를 파악함으로써 부문 운동의 발전 경로에서 관철되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여 부문 운동의 추후 전개 양상 또한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어떠한 사물 규정의 내적 계기를 관통한다는 것은, 그 사물 규정의 생성 계기부터 시작하여, 그것의 변화·발전의 실제적 현실, 즉 그것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문 운동과의 긍정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부문 운동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때 파악되는 역사란, 특정한 개인의 집합, 또는 분절된 개별의 집합에 관한 단순 시간적 발전 순서를 파악한다는 의미와는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부분으로서의 대상의 역사 궤적을 따라간다는 것은 전체의 맥락에서 배열된 어떠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체계의 역사를 관찰하는 것이다. 전체 속에서  어떠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체계, 즉 부분적 체계, 특수한 체계란 그것을 포섭하는, 즉 그것에 지대한 인과적 힘을 더하는 일반적인 체계와 함께 고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유물론적 관점에서 우리가 특정한 것의 역사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특정한 것의 분절된 사건그 외부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과 완전히 차폐된 것으로 고려된 ‘사건’으로서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체로서의 사회적 조건, 사회적 규정력과 엮인 사건을 고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부문 운동의 역사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부문 운동을 둘러싸 그 부문 운동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역사적 사회형태의 내용과 그것을 밀접관 관계 하에서 역사적으로 파악함을 뜻한다. 여기서 사회형태란 토대, 즉 생산양식과 그 기반 위의 관념적 체계들인 상부구조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 체계, 다시 말해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이른 사회체제를 뜻한다. 모든 부문 운동의 발전 추이, 그리고 이로부터 정립되는 그것의 구체적 성격은 이 사회체제의 발전 양상 속에서 규정된다.

 

본래 사물의 본질을 파헤침은 그 사물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파헤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전사(前史) 파악은 이 과업에서 되려 핵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외관, 인식된 직접적인 규정들은 모두 그러한 것을 형성하게 한 계기들과 발전 계기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기란 항상 역사적 및 논리적으로 순차를 이룬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 드러나 있는 지구의 환경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즉, 현재적 수준의 제 규정을 단순히 ‘많이’ 인식하는 것을 넘어, 지구의 형성 과정과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발전 양상을 파악해야 한다. 지구 자기장이든, 지구 내에서 특정하게 형성된 지리적 환경이든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지구의 형성 및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것과 절대 분리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발전 순서란, 형성기를 지나 성숙한 자기 보존 체계를 이루었을 때,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일반적 매개 구조로서의 순서를 뜻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파악한 부문 운동의 보편적 내용을 계급적 운동의 토대 위에 세우는 실천적 작업을 개시하는 것이다.

 

어느 운동 사회에서나 의식의 불균등성이 존재하는 만큼 자연발생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자연발생적인 인식은 혁명적 계급의 과학적 사상의 주입, 즉 의식성의 주입이 없이는 착취 계급의 이념에 직접 포섭된 것이거나, 무원칙하게 혼란된 내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외부로부터 사회주의 의식의 주입 주체는 대자적인 노동자계급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 개인적 수준에서 집단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매우 부단한, 그리고 치밀한 계산을 요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부문 운동은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지닌 각각의 (이념적) 체계에 의해 추동되며, 이미 각각의 부문 운동은 저마다 내적으로는 일자적 관계를 이루고 있고, 그럼으로써 외적으로는 그것과 이질적인 대자적 관계에 속하는 일자를 배제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각 부문 운동은 자기의 역사적, 현실적, 이념적 체계에 대한 고유의 보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사회주의 의식에 대한 부문 운동의 저항도 강화되었다.

 

오늘날 수다한 부문 운동이 각자 20세기 사회주의의 ‘결함’을 지적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을 넘어,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계급운동과 대립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지닌 과학적 세계관에 대해 노동운동이, 그것이 부문 운동의 이념 간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주조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과 부문 운동 간의 관계는 적대적 모순이라는 늪에 빠질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과 부문 운동의 이념 간의 연결 지점을 찾는 것은, 부문 운동이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사회모순을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 통일적으로 포섭해냄을 뜻한다.

 

그러나 연결 지점을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설득하고, 부문 운동 내의 인식 변화를 실질적으로 추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주 세부적인 단위의 문제도 연구되고 해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에 대한 전술적 내용은 앞으로의 실천에서 지속적으로 탐구되고 찾아져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부문 운동의 실제적·역사적 발전 추이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부문 운동의 현재적 내용을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 지양해내고 부문 운동을 설득하는 것, 두 가지 요소가 노동운동과 부문 운동의 통일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두 번째 요소는 첫 번째 요소를 확립하는 데에 달려있다.

 

이 원칙에 따라 여성, 생태, 장애인 운동의 역사적 발전 추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024년 10월 31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