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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노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문을 갖는다. <교과서에서 우리는 이러이러하다고 배우는데 사회에 나와 생활해 보니 이러이러한 점이 다르더라>라든지 <어떤 책에서는 이러이러하다고 하는데 실제 적용해보니 다르더라> 대충 이런 식이다. 헌대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 운영원리에 대해 한번이라도 곰곰히 생각해 본 사람은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교육하는 주체들의 실체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설파하는 논리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는 마치 자연 상태에서의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서식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같다. 허나 인간에 있어서 사회환경은 (동물의 서식환경보다) 보다 복잡해 보인다.

 

 교육에 있어서, 언론에 있어서, 부르주아 정치에 있어서 어떠한가?

 그들은 노동자(대중)들이 보기에 위선적이다. 그들(부르주아)이 아래와 같은 말을 하지만.. 즉 사회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거나, 보다 낮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거나 하는 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도덕, 윤리들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 <그런 원리로서 사회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확연해서 새삼 들추어내는 자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실상은 어떤가!

 현 사회에는 사회가 생산해낸 (잉여)생산물을 자신의 사적수중에 독점하는 계급의 존재가 있어 생산관계에서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것을 지렛대로 삼아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자신의 사적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의식에) 이데올로기적 왜곡을 가한다. 그 결과로 노동자 및 대중이 -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 스스로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바른 인식에 이르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지식은 역사적으로 누군가의 것이었고, 수많은 자들이 그렇게 함으로서 그로부터 축적되어 온 인류공동의 지적 유산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지성(이라는 것)은 이러한 지적 유산에 힘입을 수 밖에 없으며, 또 지적 유산은 당대의 사회-문화적 영향으로 부터 부단히 영향을 받아 새로운 지적 산물, 즉 지식이 된다. 지식으로부터 우리의 지성이 만들어진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1859년 - 칼 맑스

출처 : <칼 맑스 저작선집> /박종철출판사

 

(...)

 

 내게 밀려들던 의문의 해결을 위해 착수한 첫 번째 작업은 헤겔의 법철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였는데, 1844년에 빠리에서 발간된『독일 프랑스 연보』에 서설이 실린 그 작업이었다. 
 

 나의 고찰은 다음과 같은 결과에 이르렀다.
 법 관계들 및 국가 형태들은 그것들 자체로부터 또는 인간 정신의 이른바 일반적 발전으로부터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 생활 관계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즉 헤겔이 그 전체를 18세기의 영국과 프랑스의 선행자들을 따라 “시민 사회”라는 이름 아래 총괄했던 물질적 생활 관계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시민 사회의 해부학은 정치 경제학에서 찾아져야만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정치 경제학의 탐구를 나는 빠리에서 시작했다가 브뤼셀에서 이어갔는데, 나는 기조 씨의 추방 명령 때문에 그곳에 이주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분명해졌고 또 일단 얻어지자 나의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했던 일반적 결론은 다음과 같이 짧게 정식화될 수 있다.
 

 자신의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인간은 특정한, 필연적인, 자신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관계들에 들어서는데,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관계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생산 관계들의 전체가 사회의 경제 구조, 진정한 토대를 이루는데, 일종의 법률적이고 정치적인 상부 구조가 이 토대 위에 서고 특정한 사회적 의식 형식들은 이 토대에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의 조건이 된다.
 인간의 의식이 그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
 일정한 발전 단계에 오면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기존의 생산 관계, 또는 그 생산 관계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와 모순에 빠지는데, 그 생산력은 이제까지 그러한 관계들 내부에서 운동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생산력의 발전 형식에서 생산력의 족쇄로 돌변한다.
 그때 사회 혁명의 시대가 찾아온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 구조 전체가 서서히 또는 급속히 전복된다.
 이러한 전복을 고찰할 때는 언제나 구분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경제적 생산 조건들에서의 물질적인, 자연 과학적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전복과 인간이 이러한 갈등들을 의식하게 되고 싸워 해결하게 되는 법률적,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또는 철학적 형태들, 간단히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적 형태들에서의 전복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개인이 어떠한지를 그 개인이 자부하는 것에 따라 판단하지 않듯이, 그러한 전복의 시기는 그 시기의 의식에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 생활의 모순에서 나오는, 즉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의 현존하는 갈등에서 나오는 의식에서 판단될 수 있다.
 

 한 사회 구성체는 그 구성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생산력이 모두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새로운 더 높은 생산 관계들은 그 생산 관계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품에서 터져 나오기 전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는 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 제기하는 셈인데, 그 이유는 더 자세히 고찰해 보자면, 과제 자체는 그것의 해결의 물질적 조건들이 이미 현존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형성의 과정 중에 있다고 파악되었을 때라야 생길 뿐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윤곽만 보자면,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현대 부르주아적 등의 생산 방식들이 경제적 사회 구성체의 순차적인 시기들이라 할 수 있다.

 

 부르주아 생산 관계가 사회적 생산 과정의 마지막 적대적 형태이고, 적대적이라 함은 개인적 적대의 의미가 아니라 개인들의 사회적 생활 조건들에서 싹트는 적대라는 의미인데, 하지만 부르주아 사회의 품에서 발전하는 생산력들이 동시에 이러한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창조한다.
 따라서 이 사회 구성체와 함께 인간 사회의 전사(前史)는 종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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