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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의 귀가

월요일이 하늘의 재량휴업일이라 목요일 오후에 서울을 떠나 무려 4박 5일 동안 강화에 머물렀다.

아이들이 송정에서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힘들어해서 이번엔 신촌으로 갔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강화 집에 도착했는데...별이가 없었다.

남편은 별이가 나이가 있으니까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목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이면 "아빠는 왜 자꾸 개들을 풀어줘서 잃어버리는 거야?" 원망도 하고

앵두는 초롱이 얘기만 자꾸 했다.

 

그런데 월요일 오후에 꿈처럼 별이가 찾아왔다.

처음 발견자인 하늘 말로는 창밖을 내다 봤더니 별이가 현관 앞에 앉아있더란다.

별이는 좀 마른 듯했고 원래 얼굴이 이랬나 싶게 좀 낯설었다.

밥을 주고 한참을 안아주었다.

환영의식이 끝나자 또 산으로 가려는 것을 안아서 텃밭의 자기 집에 묶어두었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같이 산책을 시키는 것 말고는 절대 풀어주지 말 것이며

매일 산책을 시키며 함께 운동하기를 부탁하였다.

남편도 별이가 뭔가 이상해진 것같다고 한다.

예전에는 반가움에 짖었는데 낑낑 소리만 내고 자기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누가 이발을 시켜준 것같은데...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애가 말을 잊어버린 듯하다. 

 

비가 와서 찾으러 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하늘은 저번처럼 수로에 빠진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혹시 초롱이를 데리러 갔는데 초롱이가 안온다고 해서 설득중일거라는 희망적인 상상도 했었다.

어쨌든 돌아왔다.

서울에 도착할 즈음 하늘이 말했다.

"초롱이가 없어져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초롱이만 예쁘고 별이는 무서웠는데 이젠 친해졌어."

 

초롱이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아니 그보다 별이처럼 집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우리를 반겨주었으면.

 

텃밭에 채소를 심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종을 심는 동안 나는 파와 부추가 심겨져있는 고랑의 풀들을 맸다.

매다 보니 좀 헷갈렸다.

전날 민들레 잎을 뜯어서 쌈을 싸먹었는데 민들레는 뽑아야하는 건지 말아야하는 건지 망설여졌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그럼 다른 풀들은 또 뽑아야하는 건지도 헷갈렸고....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휴 그랜트와 선을 보던 한 여성이

"이 당근은 살해당한 거예요"하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파는 꽃이 피어있던데 이 파를 끊어서 먹는 게 맞는 건지 좀더 기다려줘야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진도 안나가는 일을 하다가 하돌이 새끼 새들을 발견했다.

밭 모퉁이에 벽돌이 쌓여있었는데 그 안에 새끼새 8마리가 있었다.

우리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딘가에서 짹짹짹짹(이런 소리는 아니었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불안한 부모들일 게다.

다음 날 아침, 부추를 끊으러 밭에 갔다가 하늘과 함께 안보는 척 하면서 봤더니

부지런히 모이를 물어서 새끼들을 먹이는 것같았다.

난 못봤는데 하늘 말로는 큰 새와 작은 새가 있는데 작은 새는 언니 오빠인 것같다고 한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갓 태어난 새끼들인 것같아서 비를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지만

그 새의 이름을 몰라서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었다.

하늘과 함께 동물도감을 살펴보았지만 우리가 봤던 새는 책에는 없었다.

일요일 아침, 걱정이 되어서 우산을 씌워놓고 얼른 들어와서 다시 보니

우산은 멀리 날아가 있었다.

남편은 우리 보고 걱정도 팔자라고, 가만히 두는 게 돕는 거라고 하고....

월요일, 비가 그쳐서 가봤더니 새끼들은 잘 자고 있었다.  

역시나 모른 척, 진심으로 무관심한 게 돕는 것이리라.

 

엄마는 초롱이가 나갔다며 슬퍼하는 아이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봄 개는 집안의 액을 가지고 나간단다. 어디 가서 편하게 잘 살거니까 걱정 말아라"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하고서 마음을 다스리려 하는데 다시 물으셨다.

"그런데 누가 나갔어? 예쁜 개가 나갔어, 무서운 개가 나갔어?"

예쁜 개가 나갔어.

"그래? 무서운 개가 나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전 주인이 두고간 별이는 눈빛이 날카로워서 좀 무서웠다.

그리고 엄청나게 사납게 짖었다.

그런 별이가 우리랑 친해진 데에는 초롱이 덕이 크다.

초롱이를 별이 옆집에 매어두면서 혹시 저 사나운 개가 우리 초롱이를 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둘은 잘 지냈다.

집안에 두었을 때에는 마루에 초롱이를 두고 안방에 자러 들어가면 밖에서 서럽게 울었다.

짖는 게 아니라 정말 울었다.

낑낑하면서 우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팠다.  엄마랑 헤어진 지 며칠 안된 애였으니까.

초롱이를 밖에 내어놓으면서 초롱이가 또 울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별이와 초롱이는 남매처럼 잘 지냈다.

별이가 초롱이를 위로했고 초롱이가 우리들과 별이를 이어주었다.

인연은 그렇게 이어져왔다.

 

모든 생명들이 다 자기 자리가 있는 듯하다. 

새끼새들처럼, 초롱이처럼, 별이처럼.

 

앵두는 항상 늦어서

이제사 초롱이 초롱이 초롱이 하고 다닌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초롱이 나갔어" 한다.

하늘과 하돌이 더이상 울지 않게 된 지금이 되어서야.

 

그것이 앵두의 자리인가보다.

 

그나저나 통일부가 북 어린이용 간염백신 반출을 불허 한단다.

아이들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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