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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

......

나는 고고학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헤어지고,

우유부단한 자신을 단련하러 군대에 들어가 전쟁도 겪어봤단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었어.

보험조사원이 되어 여러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닌 것같았단다.

하지만 드디어 알았단다.

그 모든 것을 걸어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아빠는 지금 여기에 있단다.

이곳을 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곳에...

 

유리코

네 엄마에게 이렇게 전해주렴.

제코바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도나우 강이 흐르는 푸르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당신에게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고.

이곳에 와달라고.

나는 이곳에 있으니까.

 

편집에 들어가면 항상 다른 뭔가에 더 몰두하게 된다.

머리를 맑게 하자고, 일에만 집중하자고 몇번이고 결심하지만

틈나는대로 다른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번엔 <마스터 키튼>.

<20세기 소년>도 걸작이었지만 <마스터 키튼>은 재미와 메시지의 환상적 어울림이 멋지다.

 

어제 밤 하늘이 갑자기 말했다.

"엄마 아빠, 우리는 3가족이다"

왜? 아이들이 세 명이라서?

 

아니야. 앵두랑 하돌이 세살 차이지, 하돌이랑 나랑 세 살 차이지,

내 나이에 3을 곱하면 엄마 나이지, 엄마랑 아빠랑 세 살 차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3가족이야.

 

우리는 깜짝 놀라며 하늘의 위대한 발견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잠을 자려다 문득 하늘 나이 10살에 3을 곱하면 30이라는 서글픈 진실을 발견했다.

나는 올해 마흔살인데.

갑자기 서른살이 되고 싶었다.

나이 스물에 남편을 만나고 스물 하나에 하늘을 낳고 그렇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한참 하다.....

<마스터 키튼>의 엔딩을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스물부터 서른살까지의 그 시간.

그 시간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그걸 믿어야 하는 거라고.

안그러면 나의 20대가 너무 가엾잖아...

 

2. 윤리

 

<대추리전쟁>을 편집할 때 정감독의 어깨 너머로 마음아픈 화면들을 많이 보았다.

그 화면들을 정감독은 절대 쓰지 않았다.

그리고 편집 중간에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모두들 대추리로 떠난 후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나는

포탈의 덧글들에 우울했고 돌아온 정감독에게 처절했던 싸움의 현장을 더 넣어야하는 거 아닌가

그들이 어떻게 주민들을 짓밟았는지를, 나이드신 어른들이 어떻게 끌려갔는지를 넣어야하는 거 아니냐고

포탈의 덧글들에게 알려야한다고.

그분들은 폭도도 아니었고 정직한 농민이었을 뿐이라고

그런 그 분들을 새까맣게 몰려온 경찰들이 어떤 식으로 핍박했는지를 넣어야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정감독은 이번에도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선 효순 미선 사건 때의 사진전이나 윤금이 사건 때 뿌려졌던 인쇄물들 얘기를 했다.

나의 이야기를 위해 지켜야할 어떤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IRA 여전사가 거리에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모든 신문들이 가장 처참한 사진을 실었을 때 이 사람은 기자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범인을 잡고 사건이 종결된 후, 여전사의 어머니는 그 편집장에게만 단독 인터뷰를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그렇게 보답을 받는다.

 

사회주의나 IRA 등에 대해 작가는 주저하며 조심스레 입장을 내는 것같다.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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