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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밤

 

처음에 일기체로 쓰다가 아무래도 동료 여러분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 올립니다. 의견 좀 주세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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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엄마...>를 만들고 몇몇 매체와 인터뷰를 했었다. 결국 나는 나의 주인공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 경험은 두고두고 뼈아픈 후회를 남긴다. 여성동아의 기자는 함부로 글을 썼고 그 글을 본 엄마는 무척 속상해하셨다. 아마 밤잠을 자지 못하신 것같다. 얼마 있다가 엄마는 심장병으로 수술을 하셨다. 그때 소송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편집자의 간절한 부탁에 그냥 잊자 하고 말았다. 그건 그냥 잊자 하고 말 일이 절대 아닌데. 내 일이 아니라 나의 인물의 일이라면 나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몇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편집자에게 그 글이 얼마나 우리가족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기사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20대 때 허름한 옥탑방에서 같이 잡지를 만들던 선배였고 몇 번의 경고 때문에 겁을 먹고있었고....그리고 내게 엄마를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나는... 바보처럼 나는 그의 사정을 봐주느라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

...
지금 나는 무척이나 피곤하고...그리고 처참한 상태다. 이런 처참함은 최근 몇년간 느껴보지 못했다. 사연은 간단하다. 치매에 대한 작업을 어떤 작업자에게 소개를 했는데 그 작업자의 카메라에서 노년에 대한 존중을 찾기 힘들어서 등장인물들(모녀가 주인공이다. 어머니는 치매노인, 딸은 보호자)이 작업을 거절했다. 마침 모 영화제의 사전제작지원 본선에 오른 그 작업자는 피칭때까지만 제출한 자료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등장인물과 소개자인 나는 본심에 자료를 제출하기 전에 사전 점검을 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다.

인도에 다녀왔고 영화제가 벌써 시작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게된 내가 어제 오후에 작업자에게 연락을 하니 "1시간 전에!" 영화제와 등장인물에게 동시에 자료를 보냈다 한다. 등장인물은 가명표시 등 몇개의 부탁을 그전에 했었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메일을 보내려 하고 있다 하고 그 작업자는 작업을 하는지도 모르는 또다른 치매노인을 트레일러에 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과정과 절차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자 "피칭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그 작업자는 피칭을 아주 잘했다고 한다. 울면서. 등장인물들이 촬영을 허락해주지 않아서 자기 이야기로 가야할 것같다며.... 문제는 허락하지 않은 등장인물의 사진이 피칭에 쓰였다는 거다. 어제의 약속을 믿고 "안타깝다. 마음 잘 다스려라"는 문자를 보냈던 나도, 피칭 포기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시한 등장인물의 문자에도 묵묵부답이길래 우리는 그가 절망하고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는 피칭을 아주 잘했고 거기에 대해 문의하는 내게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그거 제가 잘못 넘긴 겁니다. 잘못해서 3페이지로 넘어간 거예요"라는 답변만 왔다. 전체 내용은 자기집 이야기로만 바꾸었고 우리 등장인물의 사진이 피칭에 쓰인 건 실수라는 이야기이다. 법적인 책임은 지겠다고 한다.

영화제 측은 감동하는 눈치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등장인물의 변심, 정도로만 이해하는 눈치이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피칭에 사람 얼마 없었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리고 작업자와 똑같은 말을 한다. 실수로 사진이 나왔다는.... 어느 순간 영화제와 작업자의 공모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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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피칭을 잘 끝낸 후 등장인물에게 전화를 해서 글을 읽듯이 사과를 했다는군요. 그는 모든 걸 다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담당피디는 하는 말이 자기 이야기로만 갔으니 이제 문제 없다는 겁니다. 결국 본인 이야기로만 가는 거지만 이 모든 상황들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작용하는 것같은데요 그냥 기분나쁘고 분해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요?

영화제와의 공모 가능성도 있는데 제가 낮에 전화를 해서 어제 분명히 영화제에 연락해서 피칭을 안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했더니 본부장님이 어쩌고 하면서 그러더군요.

담당피디는 오히려 저를 설득합니다. 그 작업자가 많이 힘들어했고 어쩌고 저쩌고....그러니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같아요. 자...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소개한 사람은 저의 대학원 선생님이세요.... 미안함도 미안함이지만....그냥 씁쓸해하는 것 말고 방법은 없을까요? 영화제 측과 작업자 모두 실수였다고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황상 이게 실수로 여겨지나요? 다큐멘터리 작업자로서의 윤리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답답한 마음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의견들 부탁해요. 제가 당황스러운 건 피칭에 온 사람 얼마 없으니 걱정 말라는 태도입니다.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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