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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성장은 살인이다. 우리는 성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먹어 치우고,

그것으로 내 안의 타자를 일깨운 다음,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그들을(실제적으로건 심리적으로건) 떠났다.

우리는 인생의 몇몇 고비들을 특정한 어떤 사람을 상징적으로 살해하면서 통과한다.(중략)

지금의 나의 내면에도 누군가의 벨트, 누군가의 블라우스, 누군가의 구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잊었다.

잊지 않으면 그 미성숙의 시공간을 떠나올 수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해왔다.

아쉬운 건 단절과 비약의 국면들을 운명처럼 딛고 왔다는 것.

은별이 때 봤던 육아서에서(제목이 기억나지 않네)

아이의 성장 곡선또한 평화로운 포물선만이 아니라

비약의 지점을 그리는 시기가 있다는 내용을 발견하곤

나의 성장기가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니라는 것.

다만 결벽증 때문에 비약을 단절로까지 내몰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논문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학교라는 곳을 무서워했던 것은

먼저 대학원에 갔던 동료들이

괴담으로만 듣던 권위적인 시스템의 면면을 체험으로 알려줬기 때문이다.

성공회대학교를 간 건 그런 게 없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 나름이더라.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아니다 말을 바꿔야지.

나하고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다. ㅎㅎㅎ

 

내가 선 자리, 나의 영화가 선 자리.

공부하면서 나름 객관화할 수 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이 문장을 말할 때 나는 자랑스러움보다는 가슴 뭉클함, 애틋함 그런 감정을 느낀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내가 딛고 있는 계층적 기반이라든지 나의 조건이라든지 그런 것들로

변명하지말아야하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저항을 만든다는 건 끊임없는 자기 모순을 대면하는 과정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자기배신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하는 것을 의미하겠지.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겪고 있다.

 

성장하고 싶다.

나 까지도 죽여가며 

나는 성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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