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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땐 깊이 가라앉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과도하게 떠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나 정말 미친 것같다.

2주일전, 인디다큐페스티발 마지막 날, 극장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인터넷 포털 기사엔 "박근혜정부가 꼼수를 부린다"고. 별 일 아닌 걸로 언론플레이한다는 덧글이 달려있었다. 그런가 했다. 정말 그런가했다. 극장에 가서 <액트 오브 킬링>을 보고 1세계 다큐멘터리감독이 3세계 상황을 다루는 게 얼마나 끔찍한가, 그 비윤리성에 학을 떼며 중간에 나왔다. 나와서 식당에 갔는데 tv뉴스에 사망자 2명, 실종자 179명이라는 자막이 떴다. 도대체 뭔 일이냐....하며 밥을 먹고 두번째 영화 <서울역>을 보았다. 장소에 대한 성찰은 개뿔. 무성의한 촬영에 더 무성의한 편집. 그 따위 영화가 포럼 섹션에 들어가있다는 걸 한심해하며 나와서 개별면담. 이 때까지도 학생 개별의 작업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 배 이야기는 우리의 화제가 되지 못했다. 폐막식에 가서 <전봇대, 당신>을 보고, 보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뒷풀이 장에 갔는데.... tv에서 계속 속보가 떴다. 실종자는 300명 가까이 되는 듯했다. 이럴 수가. 이야기에 집중을 못한 채 진입도 안되는 어설픈 대화들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부터였다. 일상에 전념하지도, 그렇다고 새로운 행동을 계획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어 아이를 끌어안고 설핏 잠이 든다.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져 뉴스를 보다 추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 속 장기 어딘가가 오그라드는 것같은 통증에 울다 자다 하는 날들.

'슬픔을 전시한다'는 말은 참 싫다. 슬프다는 말을 할 수 없게 하는 언설들. 하지만 나는 내 말들 중 일부가 '슬픔을 전시한다'고 여겨질까봐 말을 잃은 채 열심히 스크랩만 한다. 그리고 나 또한 음식 이야기며 용모 이야기를 하는, 배 사건이 없었으면 그냥 스쳐지나갔을 말들에 발끈해서 친구를 끊고... 그러고 지내고 있다. 면담시간에 내가 미친 것같다는 말을 하자 J는 시를 읽어줬고 K는 자기도 그렇다며 집단적인 우울증인 것같다는 진단을 했다. 어느 날은 지하철에서 뉴스를 보다 눈물이 똑 떨어지는데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팔을 톡톡 치며 저기 가서 앉으라고  빈 자리를 알려주었다. 그 사람의 눈가도 빨갰다. 나만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하는 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맥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당 박은지씨의 죽음에 대해서 들은 후에 노동당에 가입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아니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현실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끊었다. 선거 때 독립영화인들이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며 각자의 이름을 적을 땐 늘 부러웠다. 레닌의 의회전술을 읽고 이해하는 데서 끝나버린 나의 정치의식은 늘 현실정치와 접점을 만나지 못한 채 무관심에 멈춰왔었다. 박은지씨의 죽음을 만나고 마음이 아팠고 어쩌면 나의 무관심, 수많은 나, 들의 무관심, 그런 것이 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레닌이 아니라 박은지를 생각했고 현실 정치 중 정당이라는 형태의 집단 중에서 지지할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노동당에 가입신청서를 냈다.

배 사건이 난 후에 인터넷을 보면 슬픔과 분노의 반응들이 끓고있는데 슬퍼하는 일 말고, 기도하는 일 말고 뭘 할 수 있을지 정말 알 수가 없어서, 아니, 그런 거 말고 뭔가를 하고 싶어서 노동당 홈페이지를 가봤는데 박은지 부대변인 추모 행사에 대한 안내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물론 며칠 후에 성명서가 올라오긴 했지만....당신들이나 나나 다르지 않구나.... 내가 뭘 바랬나 싶었다. 나는 나랑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중정당에 가입했을 뿐인 거다. 이름에 '노동'자가 붙어있을 뿐인 건데 그들에게 전위의 역할을 기대했던 거다. 여전히 좌익소아병.

잊지 않기 위해 쓴다. 순간의 상념들. 지나간 글들을 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은 일에도 나는 분개하거나 슬퍼하거나 감동했던 것같다. 별나지 않은 일상들에 일희일비했던 나. 그런 나를, 나의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기억해왔다.지금 나는 상식이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엄청난 상황 앞에서 말을 잃고 있다. 어떠한 말이라도 쓰면서 이 시간을 견딘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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