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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6 옮겨적기

1. 과거를 떠나보내는 용기

"삶은 과거를 떠나보내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고혜경, 꿈에게 길을 묻다, 214쪽

"우리는 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과거가 나보다 세니까.

'과거와 나'라는 저울이 있다면 압도적으로 과거로 기울어진다.

균형이 안 잡히니 현실 적응이 안 되고 아프고 스스로 세상을 버린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누구나 용기를 내지는 못한다. "

        정희진,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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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4살부터 과거가 나보다 셌다.

그 전까지는 현재에 충실했고 현재만으로도 버거웠다.

과거로 기울어졌던 '과거와 나'라는 저울은 아이들 덕분에 차차 균형이 맞아갔다.

하지만 나름 균형을 잡아가던 삶은 갑자기 무너졌다. 

2013년 가을, 남편이 실직한 후로는 현재만으로도 충분히 삶은 벅찼다.

가끔씩 과거의 찌꺼기로 일상에 균열이 일어났고 그런 날이면 몇 시간쯤  마음이 평정을 잃었다.

접촉사고처럼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고 내 인사를 외면하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스크래치를.

야비하게도 그들은, 남편에게는 과거와 같은 태도로 응대하면서

나는 대놓고 무시했다.

영광은 늘 남편 차지 그리고 모멸은 나의 차지.

과거에 그들은 

남편의 일터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나를 

문득 교회나 길에서 마주치면

어리둥절할만큼 지나친 호의로 대하고 불편할 만큼 깍듯하게  인사를 했었다. 

그리고 남편이 자리를 잃는 순간, 일상적인 인사 조차 받지 않았다. 

숨이 막혔다. 

 

어제는 남편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날이었다.

나름 성대하게 준비한 잔치에서

국회의원 여럿과 지역유지들이 남편의 공을 치하했고

흡족한 표정의 남편은 혼자 힘으로 이뤄낸 성취에 기뻐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극존칭으로 부르며 우대를 했고

나는 웃으며 그 태도에 합당하게 응대를 했다.

당신들의 그 친절과 우대를 나는 돌아서는 순간 잊으리라. 

다시는 같은 착각에 빠지지 않으리라.

우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믿었던 그 착각을

다시는 내 삶에서 반복하지 않으리라.

세상은 선의로 가득차있다는 믿음은

내가 움직이고 내가 일하는 나의 세계에서만 유효하다.

나의 세계 안으로 나는 꽁꽁 더 파고들 것이니.

 

2.

예상치않은 공감.

작은책 5월호가 왔고 내 기사가 났고 최종 검토한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나는 무척 괴롭다. 사진도 기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써주신 분들의 정성과 노력은 알지만  괴롭다. 

평소보다 많은 책을 보내주셨는데 이 책을 어떻게 할까....

숨겨두기에는 책한테 미안하고.....토요일 가족모임에 가서 가족들에게

이 솔직한 부끄러움을 말하고 한 권씩 드려야겠다.

 

건드리면 안될 것같은 마음으로 작은책 5월호를 뒤적이다가 문득 만난 문장들.

공감. 지금 내 상태 같다. 내가 그에게 깊이 매료되는 이유.

 

"사람을 만나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가치는 비슷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공유하는가의 문제였다. 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러나게 같은 부류로 보였던 사람들이 더 거슬리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자세의 문제였다. 드러나는 매력은 금세 사라진다.

한두 차례 데이트를 해보면 알게 된다. 

드러나는 가치관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호감을 느끼고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곧바로 삶의 자세의 문제로 넘어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차라리 세계를 바라보는 데 모호한 입장을 견지해도

자기 성찰 능력이 빼어난 사람이 더 편안했다.

그들은 대화와 설득이 가능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버릇이 몸에 밴 사람,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일상이 된 사람만큼 안정을 주는 이는 없었다.

가까워짐을 이유로 나를 압도하려 하지 않고

존중과 관심, 예의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은 삶의 오랜 습관이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감수성의 영역이다.

배려와 자기 성찰의 감수성이 몸에 밴 사람은 유연하다.

함께 대화하고 함께 변화하는 과정이 편안하다.

함부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 자세는

나 역시 마음 깊이 상대를 존중하게 한다.

무작정 가르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상대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

동시에 자신을 꾸밈없이, 그러나 부담없이 드러내는 일.

일상을 나누는 사람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서희, '나는 유효기간이 지났습니다, 작은책 2016년 5월호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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