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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해농사

지난해 가을밤 문득 묵혀있는 땅을 기억해 내어 한해 농사를 지어볼 생각을 했다. 올해 2월 눈 덮힌 그 곳에 가니 풀과 나무로 우거져있고, 그 속에서 노루 한마리가 뛰어 도망을 간다. 산 속 고지대이고, 그늘이 많이 지며, 흐르는 물이 없어 농사하기에는 녹녹치 않은 땅이다. 이 땅을 일구어 밭을 만들어 농사를 해 보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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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0여 평 되는 땅에 가득한 나무를 베어내고 가시넝쿨은 잘라내어, 풀과 낙엽을 걷고 땅을 파서  밭을 만들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가시넝쿨에 찔려 함부러 할 수 없어 고생을 했다.  칡뿌리가 곳곳으로 번저나가  뿌리를 밖고 있어 이를 뽑아내는데 여간 힘드는것이 아니었다.  2월 부터 주말 아침부터 저녁때 까지 있은 힘을 다해 밭을 만들었다. 저녁 쯤에는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칡뿌리와 돌을 캐어내기 위해서는 보통 괭이로는 되지 않아, 대장간 괭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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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뿌릴 퇴비는  차에 많이 실을수 없어 갈때마다 농협에서 10포대씩 사다가 싣고 올라갔다. 한꺼번에 밭을 일구지 못하고 얼마만큼 밭을 만들어 거름을 뿌리고 작물을 심고, 또다시 밭을 만들어 심는 작업을 반복했다. 밭 만들기를 5월 까지도  다하지 못해 파란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까지 했다.  올해 이곳에 심은 작물들을 살펴보면  감자, 고구마, 당근, 토란, 호박, 오이, 도마도, 참외, 수박, 가지, 고추, 수세미, 쑥갓, 시금치, 생강, 해바라기, 수수, 무우, 배추, 야콘, 결명자, 밀... 빠진게 없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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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에 심을 작물은 3월말에 심을 감자다. 감자 심을 고랑을 파고 그 위에 거름을 넣고 기다렸다가 감자를 심어야 하지만, 그럴 틈이 없이 거름을 넣고 흙으로 조금 뭍고 그 위에 감자를 심었다. 씨감자 20kg는 홍천의 농부님이 가져다 주었다. 씨감자 양이 넉넉하여 자르지 않고 그냥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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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수확해서 보관해 두었던 야콘 뇌두로 집에서 모종을 키웠다. 환경이 열악하지만 어쩔수 없어 몇해째 그렇게 하고 있다. 성장력이 대단한 식물이라 쑥쑥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야콘 모종이 모자라 모란장에서는 한 포기에 1,000원을 달라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300원 정도에 사서 더 심었다. 산 속 밭이라 짐승 피해가 없는 작물이고, 게으런 농부에게 작합하여 많이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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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주고 모종을 심을때는 걱정스럽게 보여도, 얼마지 않아 땅에 뿌리를 박고 잘 자라준다. 키가 크고 무성한 작물이라 처음에만 풀을 메어주면 풀보다 빨리 자라 그냥 두어도 된다. 땅을 파고 나면 까치들이 와서 땅 속에서 나온 벌레들을 쪼아 먹는다. 까치와 꿩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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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3월 말에 심으면 얼마지 않아 무럭무럭 자라, 6월 하지가 지나 장마가 오기 전에 캔다. 감자도 잘 자라 풀을 한 두번 메어주면 더 이상 풀이 자라지 못한다. 감자농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밭에다 비닐을 까는데, 그러면 풀도 안 나고 땅의 온도도 높아 농사가 휠씬 잘 된다. 짧은 시간에 재배하기 쉽고, 감자는 모두가 먹기에 텃밭농사의 대표 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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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좀 늦게 7월 하순에 캤다.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감자수확은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 도시 사람들이  작물을 심고 가꾸는 일은 어려워해도 수확을 할때에는 즐거워 할듯 해서 함께 하자고 했다. 이런 기회로 생명과 농업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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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감자를 캐고 점심을 나누어 먹는데 조금씩 싸와 모자랄 듯한 점심상이 푸짐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듯 하다.  농사일을 하니 농주는 필수적이다. 노동후에 먹는 밥 맛이 어느때 보다 맛있다. 도시 사람들이 이런 즐거움을 알고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 났으면 한다. 지금 도시농업에 대한 인식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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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밭 옆에 심어 놓은 당근을 뽑아 보는데, 뿌리가 너무 가늘다. 그러나 처음 뽑아 보는 당근이라 신기해 하고, 즐거워 한다. 그 옆으로 보이는 고구마나 옥수수, 생강 등이 이제 여름이 되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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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감자가 많지는 않지만 서로 나누어 가져가고, 공부방 어린이들 캠프 간식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주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 키울때는 힘이들고 들더라도 함께 나눌수 있어 즐거움으로 남는다. 사실 이렇게 농사를 하여도 우리가 집에서 먹을수 있는 양은 얼마되지 않는다. '경작본능'이라고 할 정도로 농사를 짓는데 의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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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감자를 심어 수확하고 그 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한다. 넓은 밭에 배추를 심으면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아, 가을에는 감자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자를 심었다. 가을 감자는 씨앗부터 구하기가 힘들었고, 싹이 잘 트지 않으니 모종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 말도 있어 모종도 만들어 보았다. 모종을 심기도 하고 직파를 하기도 하였는데, 처음에는 싹이 나서 자라는듯 하더니 여름 장마에 다 녹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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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배추를 심지 않으려다가 감자가 다 죽는 바람에 느즈막히 모종을 구해다가 배추를 심었다. 처음에는 시흥 연두농장에 가서 토종배추 모종을 심고,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모종을 사서 심었다. 배추 농사는 처음부터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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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가 워낙 유난스러워 배추 모종을 심을수 없어 비가 오지 않는 시간에 숨바꼭질하듯 하면서, 캄캄할 때까지 모종을 심었다. 배추 모종도 올해 품귀 현상이 일어나서 추석전에는 포기에 300원에 팔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없다. 나중에 들으니 모종이 없어 배추를 못 심어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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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심은 해바라기가 자라서 초 여름 햇살을 머금고 예쁜 꽃을 피웠다. 그후 하늘로만 쭉 뻑어서 3m 정도 높이로 자라던 해바라기도 여름 장마와 바람으로 인해 다 넘어갔다. 몇 송이 꽃 구경만 하고, 하나도 수확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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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도 자라서 열매를 맺어 가을에는 보기 좋게 밭을 장식하고 수확도 할 줄 알았는데, 여름 태풍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폭싹 주저 앉았다.  자연의 힘 앞에는 당해낼 장사가 없는가 보다. 유난히도 비가 많고 농사하기 힘든 여름이었다. 이 때는 실망이 커 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적어지면서, 농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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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에 심은 배추가 가을을 지나면서 어느정도 자라고 있다. 신기한 것은 무우와 배추에 벌레가 많아 애를 태우는 법인데, 산 속이고 첫해라서 그런지 벌레가 없다. 뜨거운 여름 했볕을 받으면서 자란 작물들의 줄기와 잎은 무성하다. 그러나 풍년 짐작은 금물, 뿌리나 열매는 수확을 해 보아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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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세번째 일요일에 밭에 고구마 캐러 어린이들이 수십명 왔다. 추석 즈음 고구마 상태를 확인해 보니 작황이 좋지않아 걱정을 하면서 날짜를 늦추었는데, 고구마 캐러 왔으니 캐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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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호미를 하나씩 들고 미리 넝쿨을 걷어낸 고구마 밭을 휘젓고 다니면서, 보물을 찾듯이 고구마를 캐면서 즐거워 한다. 그동안 조용한 가운데서 일을 하다가 많은 아이들이 밭에 와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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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캐고, 옆에 있던 땅콩과 생강도 캐어 보면서 신기해 하면서 즐겁게 뛰어논다. 다른 곳으로 체험을 가면 행동의 제약이 있는데, 이곳은 자신들의 공간이기에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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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맛잇는 점심을 먹고, 모듬을 지어서 감나무를 심고, 캔 고구마를 한 봉다리씩 담아 집으로 간다. 아이들이 지나간 고구마 밭이 걱정스러워 혼자 고구마를 캐보니, 이삭 줍기가 제법 쏠쏠하다. 도시의 막힌 공간에서 자유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넓은 들에 나와서 맘껏 뛰놀고 흙과 더불어 즐거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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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그 곳에서 모임이 있어 그간 자란 토종 배추를 뽑아 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모두들 배추맛이 달콤하다고 한다. 나는 생배추를 고추장에 잘 찍어 먹는데, 상추맛보다는 훨씬 낫다. 전어철이라 싼 전어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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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쓸고 가면서 망쳐놓은 수수밭에 수수를 뽑고, 그 곳에 밀을 심었다. 이 나라의 밀 농사가 망한지 오래되어 밀을 심으려면 씨앗을 구하는것 부터 힘들고, 타작이며 제분을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것을 알면서도 멀리 남해에서 씨앗을 구해서 심었다. 내년 봄에 파를파릇 올라오는 밀 싹이 보기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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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고구마 야콘 땅콩 생강 등을 수확하자고 가을에도 사람들에게 알렸지만, 한 가정 밖에 오지 않아 더 풍성히 나눌수 있었다. 춥기 전에 덜 여물어 파란 배추와 무우로 김치를 담는다. 올해 노란 김치는 먹을수 없더라도 쫄깃쫄깃하고 달콤한 김치는 내년까지 풍성히 먹을수 있을 것 같다.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손바닥 만하게 푸른 배추들은 시레기나 할 요량으로 말리고 있다.

 

올해 농사 작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배추는 말 할것 없이 포기 형성도 해 보지 못하였고, 많이 심은 야콘도 잎만 무성했지 뿌리는 별로 없었다. 결명자도 잘 자라고 무성해서 희망을 가졌는데, 알멩이는 별로 맺지 못했다. 고구마도 여름 장마 속에 넝쿨 아래로 뿌리가 생겼고, 그래도 그 중에서 감자가 가장 나았다.

 

처음에는 우리만 그런지 알고 게을러 제대로 농사하지 못한데 대한 부끄러움이었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들 올해 같은 농사는 처음이란다. 가을에 생협에서는 배추 수급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하고, 잡곡도 흉년이어서 떡집에서는 콩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내년에도 농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도시에서 여러해 동안 농사를 했으니, 농촌에서 농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농사를 하면서, 지역에서 함께 일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좋은 인연 있으면 좋겠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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