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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동포동 희망꾸러미.

포동포동 희망 꾸러미.

 

“점심에 무얼 먹을까...?”

“저녁 반찬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도시에 사는 직장인은 점심 걱정, 주부는 가족의 저녁 준비 걱정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장에 가면 먹을거리들이 넘쳐나지만 매일 사먹다 보면 그게 그것이어서 새로운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쉬는 날에는 가족들이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외식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는 일이 중요한데 그게 만만하지 않다. 특히 요즘 같이 물가가 비싸고, 외국 농산물이 판을 치며, 먹을거리의 안정성을 걱정해야 할 때에 더욱 그러하다.

 

농사지으면서 사시던 예전 어른들은 철에 따라 밭과 들에서 나오는 먹을거리를 먹고 살았기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으리라. 봄에는 겨울을 지내고 나오는 냉이와 쑥을 비롯한 봄나물, 여름에는 감자 옥수수와 함께 여러 초록채소, 가을에는 여름 햇볕에 여문 곡식과 잘 익은 과일들이 있다. 겨울에는 김치와 절임 반찬, 갈무리 해 놓은 먹을거리로 한해를 지낸다. 산업화되고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시에서는 이런 먹을거리와는 멀어져있다. 도시에 살면서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고향을 기억하며 텃밭 농사를 해 보아도 옛 농촌 삶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도시 사람들에게 철에 따른 먹을거리 걱정을 덜어주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공급해주는 ‘제철꾸러미’사업을 곳곳에서 해오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 공동운명체이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보기에 널리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인드라망에서는 강원도 횡성의 포동리 농민들이 공급해주는 ‘산골나루 제철꾸러미’를 나누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제철꾸러미를 공급하고 있는 포동리 마을공동체 현장을 돌아보고 왔다.

 

새벽부터 두부 공장에 나왔다며 오전 10시 쯤 아침인지 점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식사를 하고 있는 윤종상 대표를 만나, 꾸러미에 들어갈 재료를 모으고 포장하는 작업에 함께 했다. 두부공장에서 갓 만든 두부를 차에 싣고, 농가에서 재배한 시금치를 받아 꾸러미 작업장으로 간다. 꾸러미 작업장에는 사무실과 절임 발효 콩나물재배 저온 저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세드신 어른들이 미리 준비된 재료들은 1차 포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꾸러미 작업은 상자에 준비된 여러 농산물과 식품을 넣어 포장하여 배송전표를 붙여 쌓는 과정이다.

 

일주일에 한번 받아보는 이번 주 꾸러미에는 두부, 유정란, 콩나물, 고사리, 깻잎장아찌, 냉이, 시금치, 현미가래떡이 들어간다. 두부는 횡성 농민들이 농사지은 콩으로, 농민들이 운영하는 두부공장에서 만든 ‘텃밭두부’다. 계란은 포동리에서 풀어놓고 키운 닭들이 낳은 유정란이다. 콩나물도 자체적으로 기르는데 쉬울 줄 알았던 콩나물 재배가 어렵다고 한다. 말려 두었던 고사리는 삶아 데치고, 절여 담아두었던 깻잎장아찌, 농가에서 기른 겨울 시금치, 현미로 가래떡을 만들었다. 냉이는 어제 들에 가서 캐왔다고 한다. 뿌리를 씹어보니 냉이의 향이 그윽하다. 혹여 못 생겼다고 구박하지 말고 들에서 캔 냉이의 독특한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산골에서 채취해 온 먹을거리가 있음이 이곳 꾸러미의 다른 맛일 게다.

 

꾸러미 일은 8명이 하고 있다. 윤 대표는 하루 종일 전화를 받으며 전체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고, 신용한 총무는 꾸러미에 들어갈 편지랑 배송전표를 인쇄하고 내용물을 점검하면서 왔다갔다 바쁘다. 꾸러미 중에 계란은 몇 개, 내용물 중에서 빼고 더하는 특이 꾸러미가 있어 신경이 더 쓰이는 모양이다. 어른들 중에 50대의 젊은 형님은 작업반장을 맡고, 6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콩나물을 기르고, 장아찌를 만들며, 나물을 다듬는 등 담당이 정해져있다. 옆에서 작업을 조금 거들면서 보니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하나하나 빠짐없이 점검하며 물 흐르듯이 작업을 해 나간다.

 

어른들은 말씀이 없으시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계신다. 대표와 총무도 말이 없으니 포동리 식구들은 ‘말없음표’이다. 작업을 하면서 간혹 배송 중에 내용물의 물이 새거나 변형으로 인해 소비자의 마음이 상할까봐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도 내용물에 이상이 생겼다고 하여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말씀이 없다가도 마음에 차지 않는 재료가 발견되면 “이런 건 넣으면 안돼” 하면서 빼낸다. 작업장이 조립 패널로 지은 건물이라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꽤 덥겠다고 하는 물음에 할아버지께서 “한창 더운 여름 어떤 날은 냉동 창고 문을 열어놓고 일을 할 때도 있어.”

 

포동리는 예전부터 혼자 사는 할머니나 형편이 어려운 집일부터 품앗이해 주는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이 닭장을 만들어 유정란을 생산하는 노력을 인정받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해 주었다. 마을기업으로 지원받아 닭장을 지어 ‘어기어차 유정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이를 바탕으로 꾸러미 사업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집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가져와 꾸러미 재료로 활용하고, 모여서 일을 하며 많지는 않으나 소득까지 얻는 포동리의 어른들이 행복해 보였다. 예전 포동마을의 아름다운 품앗이 전통이 오늘 ‘어기어차’와 ‘산골나루 제철꾸러미’라는 이름으로 마을공동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란다. “처음에는 원하는 어른들 모두가 함께했어요. 그러다 몸이 불편한 어른들은 다른 분께 폐를 끼친다고 빠지게 돼요.” 윤 대표 어머니도 몸을 다쳐서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한다. “고령으로 노동력이 줄어들고, 사회적 기업의 지원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어요. 마을에서도 풀어야 할 과제이기에 어른들과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잘 되지 않겠어요.” 꾸러미를 이웃에게 알려 회원이 늘어나면 포동마을의 걱정은 한결 가벼워지게 될 것이다. 꾸러미를 통해 산골마을 어른들의 정성과 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다. 마치 고향 부모님의 그리움 같이. 꾸러미 나눔으로 농촌과 소통하고, 도시인들의 건강을 지키고, 포동마을 어른들의 행복이 계속될 것이다.

 

윤 대표가 청년 시절부터 포동마을을 가꾸어 왔듯이, 20여 년 가까이 지역 활동을 해 온 젊은 일꾼들이 있어 오늘의 횡성지역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이 지역에 꾸러미 사업을 하는 곳이 두 곳 더 있고, 학생들에게 공부방을 열고 장학금도 마련해 주며, 농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마을사업을 기초로 지역에서 물류나 생산품을 연계하여 공동사업을 벌여나가고 있어, 작은 마을공동체를 지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더 큰 마을공동체를 향해 나가고 있다. 모범지역으로 다른 지역에서 견학을 많이 오고 있다.

 

두부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홍경자 선생은 농민들과 함께 공동 사업을 시작할 때 어려운 시절을 회상해 준다. “활동 경비가 없어 고생할 때 인드라망 행사에 가서 국수를 말아서 팔기도 했다. 생산한 물품 판매와, 판매대금이 제때에 입금되지 않아 애 태우던 때도 있었다.”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고생을 짐작할 듯하다. 지금은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는 지역 활동을 보고 있지만, 어려운 날들을 보내온 일꾼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일 것이다.

 

강원도 지역에서 바른 언론을 추구하면서 강원희망신문이 만들어 지면서, 횡성희망신문도 창간되었다고 한다. 마침 이번 신문에 포동마을의 꾸러미 사업을 소개하면서 함께 일하는 어른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꾸러미 상자에 한 부씩 넣어준다. 이 글을 쓰는 날, 한미FTA가 발효되는 날이다. 오지 말아야 할 재앙이 우리 앞에 닥쳤다. 이런 때일수록 무한경쟁에서 벗어나고,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겠다. 수입농산물을 멀리하고 직거래를 늘려가면서, 꾸러미 같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마음을 나누는 ‘얼굴 있는 소비’를 펼쳐 나아가야 하리라 본다.

 

저녁 시간 가까이 배송차량이 와서 꾸러미 상자를 싣는다. 내일이면 도시에서 꾸러미를 받아보는 150여 가정에서는 포동마을 어른들께서 준비한 먹을거리로 상큼한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돌아와야 할 시간이 되어 가야겠다고 하니,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고 한다. 버스시간이 촉박하여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마을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섭섭하다고 하면서 먹을거리들을 주섬주섬 싸준다. 고향집을 다녀올 때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 정태

FTA를 맞아 시름에 잠긴 농촌과 농민의 가슴에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고, 이 봄에 녹색세상의 꽃봉오리를 보고 싶다.

 

우리텃밭 꾸러미 주소

 cafe.daum.net/godjs

 

포동리 어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횡성 희망신문.

http://hs.chamhope.com/news/bbs/board.php?bo_table=hs_news&wr_id=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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