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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꽃이 피다. - 진안마을축제

 

마을꽃이 피다.

 

내가 자라던 농촌마을은 낮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개울이 흐르며 그 주위에 논과 밭이 있다. 벼와 보리 밀농사를 지으면서 소와 돼지 몇 마리씩 키우고, 목화를 심어 베를 짜고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 살았다. 마을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침을 놓는 이도 있었고, 목수 일을 하는 이도 있으며, 머리를 깎아 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이들도 있었다. 권위 있는 어른이 있어 마을 일도 순리에 따라 처리해 나간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장이 서는 날이면 마을에서 구할 수 없는 생활도구, 농기구, 옹기그릇, 솥, 생선 같은 것들을 사온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구판장도 있어 간단한 생필품을 구할 수 있고 외상으로 사고 가을에 갚기도 한다. 품앗이와 두레로 농사일을 하고 경조사 같은 큰일을 당해도 계를 모아서 짐을 들어 주면서 살았다.

 

우리 마을뿐 만 아니라 모든 곳의 마을들이 같은 모습으로 필요한 부분을 나누어가면서 정답게 살아 왔으리라. 70년대 산업화가 이루어나가면서 농촌에 농약과 화학비료가 보급되고, 자본의 침투로 많은 변화가 뒤 따랐다. 산업화를 지속하기 위해서 저곡가 정책을 폈고,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해 도시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저임금 육체노동자로 전략하게 된다. 이때부터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게 되는 현상이 심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각종 개발 사업으로 곳곳이 파헤쳐지면서 정답게 살아가던 농촌마을도 동시에 파괴된다.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고 품앗이로 짓던 농사일이 품팔이로 전환되면서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어 이웃 간의 인심도 예전과 다르게 변해왔다.

 

고도화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어, 환경 식량 경제 사회 많은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되어 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이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는 자각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날 마을에서 마음을 나누고 일손을 함께 하면서 자급생활을 하며 살아왔던 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들이리라. 협동하면서 사회적 경제를 형성해 나가고 마을을 되살려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인드라망에서 해온 마을공동체 운동을 전국에서 펼치고, 확산해 나가려 하는 것이겠다. 농촌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을만들기 사업을 위한 걸음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마을을 어떻게 만들고 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다.

 

농촌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농촌 군의 인구가 3만에 못 미치기도 하는데, 서울에는 행정동 하나의 인구가 그보다 많은 경우가 많다. 수도권에만 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이 모여 살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농촌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귀농인 유치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모범적으로 하고 있는 지역이 진안군이다. 진안군은 귀농유치와 함께 마을사업도 모범적으로 해 오고 있다. 빈집을 고쳐서 귀농자들에게 제공해 주고, 잊혀가는 마을의 풍습과 문화를 조사 보존하는 등 마을공동체를 회복하여 살맛나는 마을로 만들려는 노력으로 귀농인 들이 모여들고 있다. 진안군에서는 지금까지의 귀농과 마을가꾸기 사업을 알려내는 축제를 열고 있는데 ‘진안군마을축제’다. 올해 다섯 번째인데 8월 2일부터 7일 까지 열렸고, 주제는 ‘마을꽃이 피다’라고 했다.

 

진안 마을축제는 읍에서 중심 행사가 열리고, 군내 여러 마을에서 마을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고 전승하는 마당이 있다. 전야제로 ‘진안고원길 달빛걷기’를 시작으로 읍내에서는 상설 전시회와 포럼, 장터와 민물고기잡기 행사가 열린다. 우체국에서는 고향을 사랑하는 편지를 전시하고, 에너지를 절감하는 적정기술 알리는 등 여러 마당이 준비되어 있다. 군내 마을에서는 옥수수 고추 따기, 다슬기 잡기, 풍물 굿과 여러 음악회, 마을사진 전시, 뗏목체험, 솟대 만들기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들이 있다. 밤에는 60~70년대 인기를 누렸던 가설극장에서 영화도 상영하고, 진안 마을방송국 마이라디오에서는 마을축제 방송을 한다.

 

홍삼센터 마당에 그간의 마을사업 내용과 사업 중에 사용되고 만들어졌던 회의록 자료집 문집 등이 소상히 전시되어 있는데 마을사업을 할 때 참고가 될 만한 소중한 자료들이다. 체험 마당에서 남사당 놀이패들이 하는 버나(접시)돌리기를 해 보았는데 잘 되지는 않았으나 가죽으로 만들어져 쉽게 떨어지지 않겠다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간 마이라디오에서는 군수가 나오는 대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하고 있다. 진안천에서는 민물고기인 빠가사리 낚시를 하고, 어두워지자 물속에 띄워진 예쁜 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한 여름 밤을 장식해 준다. 저녁에는 전국의 마을만들기 활동가들이 모여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소개하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마을만들기는 농촌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각 구별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에서 활력이 저조하다고 보이기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인드라망이 속한 양천구에서도 마을만들기를 시작한다고 하니, 인드라망의 역할이 필요하겠다.

 

진안군의 많은 마을사업들 중에서 소박하고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백운면의 간판을 돌아보았다. 백운白雲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의 흰 뭉게구름 아래로 펼쳐진 약방 정류소 농약방 근대화상회 신발가게 떡방아간 농기구수리점 자전거터미널 철물점 등의 간판이 자연과 가까이 어우러져 있다. 가까운 곳에 사진작가인 김지연 선생은 옛 정미소를 그대로 활용하여 전시장으로 꾸며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 사람들의 살아온 흔적들을 모아 놓고 전시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한국 전쟁 때 참전한 지역 어른들의 사진을 찍어 전시를 하고 있었다.

 

진안군에서는 이전하는 농업기술센터 자리에 마을사업 지원센터를 만들어 여러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군에서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센터에 여러 마을 관련 단체들과 사회적기업 들이 입주하여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마을사업을 해 나가려 한다. 농업기술센터는 농민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 친숙함이 있어 지역과 더욱 밀착하여 그간 미처 하지 못하던 사업까지 찾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연구소를 만들고 마을사업 교육을 하면서 진안을 넘어 전국 마을만들기 사업의 중심이 되어, 각 지역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진안에서 오랫동안 마을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구자인 박사의 말이다.

 

불교귀농학교 16기인 박후임 이재철 부부는 2005년에 동향면 학선리로 귀농해서 마을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살아오면서 사용하던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을 모았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 사진과 돌 결혼 회갑 잔치 때 찍은 경조사사진, 마을 행사 때 찍은 사진 앨범도 전시해 놓고 있다. 살림살이 장부를 아주 상세히 기록해 놓은 장부가 있어 자세히 보니 마을 구판장의 거래 내역과 외상장부이다. 지금은 사라져 찾아보기 힘든 마을 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을 모아 전시를 해 놓으니 마을의 지나온 옛 시간을 되돌려 볼 수 있는 어엿한 마을박물관이 되었다. 노인학교도 열어 어른들을 모시고 한글 도예 서각 그림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마을과 함께하는 바람직한 귀농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향면에서는 매년 수박축제를 하는데 올해 네 번째라고 한다. 시골학교 운동회 정도로 소박한 축제일줄 알았는데 더운 날씨에도 천명은 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수박에 그림 조각을 하고, 시원한 수박화채를 나누어주고, 지역 특산물을 전시 판매하고, 운동경기를 하고, 노래자랑과 춤을 추면서 흥겹게 한여름을 보낼 수 있는 잔치다. 마을에서 푸짐하게 장만해 온 음식을 풀어놓고 먹고 마시면서 마을과 지역민들이 어울리는 잔치에 우리도 한상 가득히 시골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 이 지역으로 귀농한 인드라망 출신인 조선원 박순천 님은 잔치 음식을 나누느라 바쁘고, 이병성 님은 봄에 산에서 꺽은 고사리를 내놓고, 박후임 이재철 부부는 마을박물관과 노인학교 작품을 전시 소개하느라 분주하다. 지역에서 맡은 역할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뒤 따르는 이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을이 무엇이라고 보느냐?” 라는 질문에 박후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을은 사람이고 공동체인 것 같아요. 마을은 개념적으로는 공간이지만 ‘사람’이 있어야 해요. 서울에도 마을은 있지만 그것은 마을이 아니라 개인이 모여 형성된 공간일 뿐이고 ‘일, 관계, 공간’이 연결되어있을 때 진정한 마을이라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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