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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소수자 활동과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는데....

그 문제가 당장 내 앞에 다가올때에는 그렇게 자유롭지를 못하다는것을 알고는 답답함과, 나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고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나고 있었다.

 

오늘 겨울현장활동을 시작하는 자리에 가게 되었다. 이렇게 무한 경쟁시대에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시간에도 수십명의 학생(청년 소수의 아저씨)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빈곤과 철거의 위험 속에서 시름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모여 9일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듣고 보고 배우면서 구조적으로 빈곤할 수 밖에없는 이들의 생활을 함께해 보고자 모인것을 보고 그래도 이 세상에는 희망이 아직 남아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 되면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참여한 사람 중에서 노숙활동을 한다는 한 분은 좋은 대학에 가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이런데 까지 오는것을 보니 대단하다고 감동을 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지금 언급하고 나눌려고 하는것은 현장활동을 자체를 이야기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9일동안의 현장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체적으로 생활방식을 이야기 하면서 당연히 생활내규를 논의하고 정하는것은 어느곳이나 당연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추가하여 성평등과 성폭력등을 예방하고 사전에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도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주고 이야기들을 나누고 그 방안을 제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참여자에 대해서 그의 활동을 우리가 어떻게 나누어 가질까에 대한 고민과 그 일을 우리가 어떻게 나누어서 해야 할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고 한시간동안이나 의견을 나누고 결정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장애학생 당사자가 활동이 불편하니 당당히 활동보조가 필요하다고 주장을 하고(지난날 행사때도 그렇게 했었고), 특히나 외부로 현장활동을 나갈때에는 더욱도 그러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을 하면서 자신이 여성이니 활동보조는 여성이면 더욱 좋겠지만, 힘이 필요할 경우에는 남성동지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한다. 모인이들도 소수자운동에 충분한 이해가 있는듯 하고, 장애인 활동보조에 대해서도 경험과 함께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고 본다.

 

24시간씩 돌아가면서 활동보조를 하자. 여성만 하는것은 무리다. 그러기에 남여활동보조가 함께 필요하다. 평소에는 동성이 활동보조를 하다가 외부활동시 필요하면 주위의(같은조의) 남성동지와 함께 한다.  24시간을 너무 길다. 그러니 12시간씩만 하도록 하자. 조별로 나누어서 하자(5조로 나누어져 있다). 두명씩이면 한조에 빠지면 조원이 너무 많다. 조별로 한다는것은 너무 사무적으로 처리하는것이다. 희망자를 받아서 하자.... 등등의 의견들이 나열되었다. 12시간 정도로 조별로 맡는것이 낫겠다. 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는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가 마무리 될때에 멀리 부산에서 왔다는 한 친구는 자기가 눈이 좋지 않아서 친구들을 잘 알아보지 않고 미처 인사를 하지 못할수도 있다. 가끔은 혼자 대열과 떨어져서 헤메일수도 있고, 작은 글자도 읽지를 못해서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부분을 미리 알고 이해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장애가 부끄러운 점이 아니라, 미리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일수 있겠다. 진행자는 이에 덧붙여 이 친구들이 앞서서 행진을 하도록 할 것이며,  전체 진행에 지연될수도 있으니 다른 참가자들이 이해를 해 주어야 할 사항이라고도 한다.

 

나의 이제껏의 사고방식과 짦은 생각으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함께 생활을 하면서 생활내규를 정하는 정도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성평등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장애인을 위해서 서로 고민하고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또한 자신의 장애를 당당히 드러내고 이를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는 약간은 놀라움과 함께 나의 문제로 돌아 온다.

 

위의 상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리 속에서 매주 함께 하고 있는 장애인 친구가 거추장 스러운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해야 할수 밖에 없는 친구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하는 친구 **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위의 예를 보면서 우리의 친구 **를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즉, 한주간씩 **를 돌아가면서 함께 주일을 지키는것입니다. 그것은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되어도 좋을것이고, 관련부서라고 할 수 있는 **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전체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년 해 보아야 52번 밖에 안되니 한 주일 해 봐야 주일4시간 내외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생면 부지의 친구를 위해서 12시간 24시간 밀착보조를 하겠다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는 신앙의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친구인데 짧은 시간동안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것도 하기 힘들면 신앙이라는 단어를 접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런 부분은 있을수 있을것이다. **가 우리들의 배려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도 장애인인권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에 그 부분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사람들 중에서 호감 비호감이 있을수 있다고 보는데.... 그럴때에는 그것은 그가 극복해야 할 사항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필요한 부분이라면 그에게 이해를 시켜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고,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서비스라고 위의 현장활동자들은 지적을 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장애자 스스로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동참할려고 하는 노력을 보이는것 처럼, 미리 우리의 주보를 그에게 전해주고 그가 노트북을 켜고 예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전원코드를 준비해 줘야 할 수도 있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정석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할동보조인 쟁취를 위한 서명을 한것도 사실인데... 이러고 보니 그 서명도 그냥 생각없이 한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하게 된다. 지금 내 앞에 활동보조가 필요한 장애인이 있으며, 잠시전에 활동보조를 위해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브끄럽기도 하면서 참고가 될것 같아서 적어 본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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