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성문밖교회를 다녀오다.

 

성문밖교회를 다녀오다.


2008년 올해 들어서면서 한 우물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다른 곳도 다녀보고 그들의 공동체도 느껴보는 시간들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을 해 왔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생각들은 가다듬지 못하고 있었다,


매해 해 오던 대로 새해 첫 주에는 고향친구들을 만나러 지방을 다녀오는 계획이 있어서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다녀오려고 했는데, 만난 친구들이 토요일 한밤중에 갑자기 집으로 가자는 분위기로 되어 버렸다. 따라서 우리도 자정이 된 시간에 대구를 출발하여 서울로 오게 되었다.


졸리면서 운전을 하여 오는 내내 생각하기를 내일은 우리 교회를 쉬기로 마음 먹었는데, 내일 예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 다른 교회를 가 볼까? 생각을 해 보는데 머릿속에 있는 교회들을 점찍어 보다가 성문밖으로 사고가 머무르게 되면서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지난 24일 성탄전야에 이랜드 투쟁동지들을 만나러 갔다가 사랑의교회 앞에서 만난 성문밖 식구들이 생각나면서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었는가 보다.


성문밖이라는 말과 같이 그 들은 예수께서 오신 크리스마스를 맞아하면서 매년 성탄절 전날 저녁에 오늘 고난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만나보러 가는데, 지난해는 서울 메트로 여성노동자들을 찾아갔고 오늘은 이곳 이랜드 노동자과 함께 하기로 하고 찾아  왔다고 했었다.


새벽녂에 집에 도착을 하여  잠을 청하는데 쉬이 잠이 오지를 않아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영등포 당산동 성분밖을 찾아 갔다. 오래전 30여년 전인가 갔을때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도 많이 낡았고, 여러 기관들이 들어 있는지 이런저런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고, 3층 예배당은 비어있고 2층에 신발들이 있으며 사람들 소리가 나지만, 예배처소가 어디인지 잘 몰라서 엉거주춤 하는중 물어서 2층 예배처소에 들어 가게 되었다.


‘都産’이면 倒産한다.‘

70년대에 많이 듣던 말이다. 즉, 도시산업선교회가 들어오면 그 회사는 망한다. 라는 말일 것이다. 산업화로 인하여 양산된 노동현장은 열악하기 그지없이 힘들고, 노동자의 인권과 생존권이 짓밟히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는 해방신학 민중신학에 근거하여 노동자선교를 하게 되었고, 이들의 활동으로 척박한 노동현장에서 조금씩 노동 인권운동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공안기관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를 깨트리기 위해서 ‘도산이면 도산한다’.라는 말을 내세우면서 탄압하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본다.


그 당시 지금의 산업선교회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고, 골조공사만 되었을 때 지금의 성문밖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시절 교회도 당산동 아파트 지하에서 처소에서 예배와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도 기억을 하는 것은 내가 갔을 때 목사님께서는 외국선교사와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새로 나타난 나를 의식해서인지 갑자기 영어로 대화를 하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해도 해 보았다. 너무나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예배에 참석을 하였지만 아무래도 우리와 예배당이나 예배형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교인들도 초면이라 약간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가끔 연대집회나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하는 예배에서 만난 이들이 있어 눈인사를 하고 예배에 참석을 하게 된다. 예배형식에 따라 주보도 만들어졌으며, 함께 고백하는 기원들이 있으며, 오늘 세상에서 살아가는 목소리도 담고고 있었으며 우리의 주보보다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손 목사님께서 연대하러 예배에 참석했다고 나를 소개한다. 갑작스레 간 나로서는 약간은 미안함이다.


따뜻한 바닥 온돌에 엉덩이를 붙이고 둘러앉아서 드리는 예배 분위기가 공동체예배에 더 가까운 환경이라고 본다. 의자에 앉은 분위기 보다는 이런 형태가 더욱 가까워지는 분위기라고 이전부터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식구가 적으니 성찬식도 앞으로 나와서 서로 떡을 먹여주면서 공동체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익명성이 없고 모두다 눈에 들어 올 수 있는 식구들이고, 지금 예배에 참석을 하지 못한 교우들도 어떻게 지내는지도 다 알수 있다.(손님으로 간 나 같은 사람들이 숨을 수 없음이 약간은 부담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다.)


점심식사를 하는데 4학년 후반이나 5학년정도 된 아주머님 교인들께서 말을 붙이는데, 지난 70~80년 이야기를 잠깐만 꺼내도 동질감을 느끼고 말들을 붙여 주면서 식사후 차까지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때 고생하던 동지들이 이곳을 통하여 만난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이제 자식들도 어느정도 키워 놓았을테고 지난날을 되 새기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좋을듯 싶고 그러면서 공동체의 기둥도 되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지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신년 첫 주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회의도 있고 할 일도 많은듯 하여 긴 시간은 함께 보내지 못했고, 갑작스런 발걸음이었지만 성문밖을 통하여 이런저런 느낌과 무언의 감동들이 있었다. 교회가 지난해 30년을 지나면서 발간된 30년사 책을 한권 얻어 와서 읽으면서 성문밖교회가 그간 노동자들과 함께 한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를 통하여 그 시절 그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온 하느님의 사명을 물리치지 않고, 충실히 수행한 공동체를 보면서 나를 뒤 돌아 보게 된다. 우리 교회와 비교하면서 앞으로 많이 배우고 보완해야 나가야 할 부분도 있어 보인다.


최근 한국 사회가 변화하면서 이전에는 교회가 사회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그들의 근거지가 되었지만, 이제는 교회라는 공간의 필요성이 감소 되었을뿐 아니라 교회 자체가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지도 못하고 있으며, 사회운동과 함께 하는 교회수도 적으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것 같아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그렇지만, 성문밖 또한 지난날과는 달리 지금의 교회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는것 같다. 가난한자 고통받는자와 함께 한다는 교회가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성문밖을 다녀 오면서 멀지 않은곳에 위치하고 있는 여의도의 순복음교회를 가 보았다. 오후 예배인데도 예배당은 남는 자리가 없고 꽉 찼으며, 꽉 차여진 예배 순서에 따라 드리는 예배가 하나의 세련된 공연 같은 느낌이다. 예배당 또한 크다란 공연장과 같은 돔 형테였고, 성가대 뿐만 아니라, 관현악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목사님의 설교나 성만찬 성가, 전면과 측면 벽에 크다랗게 배치된 스크린 등등이 하나도 모자람 없이 현대인들을 충족시켜줄 잘된 공연 그것 같았다. 광고를 하면서 새로운 신자들이 한주에 천명이 넘게 오는데, 이들이 잘 정착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참 삶의 공동체가 되어 주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함이어서는 아닐까? 한다. 이는 비단 순복음의 문제만 아니고,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속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제대로된 예수의삶을 따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도 함께 받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이웃교회를 더 방문해 보았으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조금 해 보아야 겠다. 이런저런 경로로 얼굴이 알려져 있는 경우가 있어, 가 보고 싶은 교회마다 익명성을 보장할 수 없을듯 하다. 이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슬쩍 탐색을 하고 싶었지만, 모두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하면서 처음 생각과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느 교회를 언제 가 볼수 있을려나~

작년부터 ‘아름다운 마을’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 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