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바느질한 생리대

경계를 넘어 2005/06/01 02:33
[경향신문 2005-05-30 16:03]    
지금 내 핸드백 속 작은 주머니 안에는 손바느질이 얌전한 순면 대안 생리대가 들어 있다.
 
얼마 전 만난 대안생리대운동을 하는 조약골씨에게 직접 만든 생리대를 선물 받은 것이다. 자신을 서른 중반의 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한 그는 여건만 허락된다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바느질거리를 꺼내는 남자다. 남자가 뭐 할일이 없어 여자들이 사용하는 생리대를 바느질하고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여성보다 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남자인 조약골씨는 첫 생리를 시작으로 폐경에 이르기까지 생리기간 동안에 여성이 겪는 고통 중 많은 부분이 몸에 적합지 않은 재질로 만들어진 일회용 생리대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 역시 편리하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일회용 생리대와 삽입식 생리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조약골씨는 대안생리대 워크숍을 하면서 아내와 딸을 위해 대안생리대를 만드는 아빠,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땀 한땀 대안생리대를 바느질하는 남학생들을 여럿 만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은밀하게 이야기해야만 했던 여성의 생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는 남성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니 여성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를 만난 뒤 생리를 맞는 나의 느낌도 달라졌다. 귀찮고 짜증나고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행사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당연하고 당당하며 존중받아 마땅한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 때문일까? 한달에 한번씩 생리와 함께 나를 괴롭히던 생리 전 증후군마저도 이번엔 조금 수월하게 넘어간 듯하다.

대안생리대 운동. 그것은 단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며 나아가서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담겨진 운동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걸음마를 하고 있는 대안생리대운동이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큰 뿌리로 자라길 기원한다.

<김혜원·인터넷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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