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가기로 했다

나의 화분 2005/11/05 22:26
수원 길바닥평화행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목요일, 수원은 금요일이다.
처음엔 노래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가게 되었는데, 가다보니 수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좋아져서 계속 가기로 했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지난 금요일 수원 길바닥평화행동을 마치고 뒷풀이를 하면서 빠쳄웃다가 자란 동네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곳에 비하면 내가 자란 서울 변두리 중랑천 부근은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잘못 알려진 폭력적 근대화의 더러운 이면을 매일 같이 피부로 호흡하면서 나는 모든 강물이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을 정도로 똥통이라고 생각했고(가끔 등이 휘어진 물고기들은 볼 수 있었다), 가까이만 가더라도 머리가 띵해지는 악취는 도시의 자연스러운 일부라고 여겼다.
더불어 모든 야산에서는 으례 거무스름한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무에 개를 매달고 몽둥이로 두들겨 팬다음 불에 구워먹는 줄 알았다.
야생동물이라고는 한 마리 본 적도 없는 죽은 산이 내가 본 산이었다면 빠쳄웃다가 뛰놀던 산은 뱀과 물고기와 그밖에 다른 생물들이 활기차게 놀던 낙원이었던 셈이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난 이미 그곳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렸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셈이다.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이고, 어느 길로 가면 가장 쾌적하고 빨리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들로 내 머리속은 5만분의 일 지도보다도 자세해져버렸다.
이것은 서울에서 계속 살아가기엔 편리할 지 모른다.
하지만 자각하기 힘든 폐해를 30년 이상의 서울생활은 내게 가져다주었다.
뿌리깊은 서울중심주의가 그것이다.
 
나는 서울에 산다는 것 자체가 서울 이외의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차별이라도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그 억울함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는 법이다.
서울 사람들은 누가 멀리서 서울까지 올라와도 의례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심지어 같이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서울로 오는 것을 나는 별로 대수로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
마치 서울로 집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것이 얼마나 먼 길이었나 느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한 번 수원에 가니까, 내가 한 번 평택에 가니까, 내가 한 번 부안에 가니까 다들 내가 서울에서 먼 길을 왔다는 것을 알아주었다.
그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 수고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것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해방된 세상을 염원하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그 해방세상의 모습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더욱 자주 수원에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내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중앙집중주의 같은 것을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다시금 그것은 길고도 긴 해독의 과정이다.
해독의 길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끝은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간단한 깨달음 하나를 움켜쥐게 되었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모든 것의 서울 집중이라는 한국의 폐해를 절대로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비유이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도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과 그밖의 다른 주변 도시들을 나누는 지리적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나부터 스스로 밖으로 돌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수원은 여전히 내게는 멀고, 낯선 도시이지만 이제 그곳에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서 드문드문 만났던 사람들.
수원에서 만나면 더욱 반갑다.
특히 내가 가진 미약한 '예술적 역량'이 이곳에서는 필요하단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있다.
난 내 활동영역을 내가 사는 곳 주변 50km 정도로 잡은 적이 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커다란 폐해인 지나치게 늘어난 이동거리를 스스로 줄여보기 위해서다.
이 정도면 하루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갔다 하기에 별로 부담이 없는 거리다.
내가 사는 서울 녹번동에서 50km를 재보면 북쪽으로는 대충 임진각 정도 그리고 남쪽으로는 수원 정도가 그려진다.
수원에 간다는 것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지점까지 간다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
서울 활동가가 수원 또는 다른 지역에 갈 때 받는 대접이 수원 또는 다른 지역의 활동가가 서울 갈 때 받는 대접과 같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자 임무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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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5 22:26 2005/11/0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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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05/11/06 13:23 Modify/Delete Reply

    맞아요. 내가 매일 고생하는걸 사람들이 알아줬음;; 켁 =ㅅ=

  2. 2005/11/07 10:45 Modify/Delete Reply

    나는 알아줄께요.

  3. pacemda 2005/11/08 18:36 Modify/Delete Reply

    맨날 고생하는 레이야~ 사서 고생하지 말구,,,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곳에서 맨날맨날 잼나게 놀면서 활동면서,,,늙어가자.

  4. pacemda 2005/11/08 18:39 Modify/Delete Reply

    말 그대로 경계를 넘어서서 다들 오래오래 만나고,,,늙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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