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

나의 화분 2006/08/13 01:42

마을이 조용하다.

마을 바깥에서는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곳은 폭풍전야 같기도 하고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을 안에 들어와 있으면 자유로운 것 같지만 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택연금 상태라는 것이 이런 심정일까?

전투경찰이 이중, 삼중으로 포위하고 있어서 누구든 쉽사리 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는 곳.

솔부엉이 도서관으로 평택지킴이네로 인권지킴이네로 다시 불판집으로 두 다리는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나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꽁꽁 묶여있는 것 같다.

 

오전 8시부터 아이들이 불판집에 몰려왔다.

어제 들소리 방송 영상에 불판집이 나왔는데, 직접 보러 온 것이다.

자다가 혼비백산해서 벌떡 일어나 봉두난발을 한 채 두 눈을 비비며 부시시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빈집을 구해서 청소를 하고 이렇게 요상시럽게 꾸며놓았는가 잠깐 설명을 했다.

아이들은 내 설명엔 별로 관심도 없고 파란방에 있는, 썩은비가 찢어붙인 80년대 에로 비디오 제목들 꼴라주(서양 바나나보다 한국 오이가 좋아 등등)를 가리키며 '이런 것이 여기에 왜 있어요?' 라고 물었다.

난 판에 박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빈집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단다'

 

전경들이 마을로 출입하는 모든 길을 틀어막고 버스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평택시내로 침을 맞으러 가야 하는 할머니 한 분도 버스가 오지 않아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면서 불판집에 잠시 들렀다.

내가 국가폭력이 너무 심하다면서 맞장구를 쳤더니 할머니의 걸죽하고, 재밌는, 하지만 반쯤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이 이어진다.

저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주워 담고 싶어진다.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도 버스가 다니지 않으니 꼭 나가려면 할 수없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한다.

함께 외쳐보고 싶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라'

 

맛난 점심을 만들어 함께 먹는 것으로 왔다가 가는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곳에 온지 별로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적응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부자유 때문일까, 아니면 바깥 사람들이 못들어오고 있어서일까,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을에 붙박이로 남아있는 자신의 존재에 불현듯 외로움을 느낀다.

'그립다'고 했더니 '불안감' 때문이라고 친구가 그랬다.

 

난 두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별나게 외롭다. 

그리고 밤공기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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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3 01:42 2006/08/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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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디 2006/08/13 01:50 Modify/Delete Reply

    양파와 버섯과 야생 깻잎이 들어간 김치볶음밥,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요. 커피랑 향짙은 허브차두요. 대추리에 들어가는 일이 너무 부자유스러워서, 나가는 길 또한 쓸쓸하고 나오자마자 대추리가 그립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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