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뼈대만 남았다

꼬뮨 현장에서 2007/04/02 07:41
마을이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살이며 내장이며 다 파먹는 구더기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고물상들은 주민이 이사를 나가자마자 나타나 돈이 될만한 것들이면 무엇이든 뜯어내버린다. 지난 목요일부터 하루종일 마을엔 그 고물상들이 집을 때려부수는 소리와 쫓겨나는 주민들의 통곡과 한숨소리만이 떠돌고 있다. 마을에서 만나는 지킴이들의 눈동자엔 촛점이 없다. 희망을 잃었다는 것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마주쳐도 그저 눈인사만 하고 지나칠 뿐이다. 다시 몸이 아프려고 한다. 치르가 마을에 큰 일이 생겼을 때마다 자기도 앓아누웠다고 했었다. 난 '평화가 무엇이냐' 음반 작업을 하다가 7년 만에 크게 앓아누웠었는데, 이번에 다시 마을에서 쫓겨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킴이들 노래모음집을 만드는데 집중하다보니 다시 몸이 이 모양이다. 차라리 한 일주일 앓아누웠으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앙상한 마을의 모습 보지 않으면 속이라도 상하지 않지. 그러다가 마지막 대추리 노인정 이삿짐 옮기는 거 도와드리면서 생각했다. 그런 모습 보기 싫어서 지킴이들이 떠났었더라면, 늙으신 분들만 남아서 노인정 에어컨도 떼어내야 하고, 벽에 붙은 상장들이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 따뜻한 밥 멕여준 부엌의 냉장고며 세간살이들 힘 없는 팔과 아픈 허리로 옮기셨어야 했겠지. 끝을 본다는 것이 과히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부락에서 동고동락해온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내가 살면서 그런 도리 지키지 못한 적이 워낙 많았기에 이번엔 고통스럽더라도 잔가지들만 앙상하게 남은 마을 정성스럽게 염이라도 해주고 떠나야지 싶다. 지킴이네 집 목련꽃도 이미 화사하게 피어났고, 소나무와 밤나무들도 만져보면 따뜻하게 물이 올라오고 있는데, 어쩌면 나는 아직도 기적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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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07:41 2007/04/0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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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기 2007/04/02 08:31 Modify/Delete Reply

    3.31이름없는공연팀 황새울공연 [나무는겨울을 품에안고갑니다]공연영상집입니다
    http://yegie.redclef.net/oncoreanamunun01.html

  2. CK 2007/04/03 18:09 Modify/Delete Reply

    우연히 들러서 마음 아픈 글 잘 봤습니다만 "구더기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고물상"이라는 표현이 (고물상과 관계없는 사람이지만) 참 거슬리네요.

  3. 2007/04/03 18:35 Modify/Delete Reply

    아,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네요. 글을 쓸 때 좀더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4. 또또 2007/04/03 22:30 Modify/Delete Reply

    돕. 내가 마음속으로 응원할게 ㅎㅎ;; 아프지만 마삼.

  5. 넝쿨 2007/04/04 00:13 Modify/Delete Reply

    나도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

  6. 보리 2007/04/04 14:08 Modify/Delete Reply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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