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와 아나키즘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7/06/17 00:20
린 패로우(Lynne Farrow)라는 사람이 쓴 '아나키즘으로서의 여성주의(Feminism as Anarchism)'라는 글을 읽고 있다.
영어로 되어 있고, 미국 사례 중심이라서 중간에 흥미가 매우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읽어볼만 하다.
특히 이 글의 시작이 맘에 든다.
 
아나키즘이 설교하는 것들을 여성주의는 실천에 옮긴다.
진보진영에서 진정한 실천을 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이 있다면 필시 여성주의자들일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왜냐하면 여성주의자들은 낙태시술 병원이라든가 놀이방 등등 매우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실천을 벌인다.
또한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기존 정치가들이 좌와 우로 나뉘어 벌이는 정파싸움에는 관심이 없기에 이런 식의 정당정치에 휩쓸리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미국역사에서 1848년 여성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후(뉴욕주 세네카 폴스에서의 여성권리대회) 미국의 기존 정치권에서는 끊임 없이 여성주의 운동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체제내화(co-opted)시키기 위해 수를 쓴다.
예를 들면 노예제 폐지 운동이 시급하니 여성운동은 잠깐 보류를 하라고 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참정권 운동을 활발히 벌이던 여성운동가들에게 반전운동이 대세이므로 여성주의 깃발은 잠시 내려두고 반전이라는 대세에 따라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식이다.
 
이 글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사실 처음 내가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는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모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아나키즘은 일종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성주의가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것들은 이미 아나키즘에 다 들어있는데, 또 왜 여성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나, 생태주의의 문제설정은 아나키즘으로도 풀기에 충분하므로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나키즘은 본질적으로 평화주의와 동일하니까 따로 평화주의를 주장할 필요는 없겠군, 이런 식이었던 거다.
 
지금 생각은 이와는 약간 다르다.
위 생각들은 일반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할 때 하나의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여성주의든 생태주의든 평화주의든 하나의 사상과 운동의 흐름에서 어떤 핵심적인 주장을 압축적으로 뽑아내서 '이것의 본질은 이렇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아나키즘이 1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조선에 아나키즘이 전래된 것을 1910년대로 보면 그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나는 한국 아나키즘이 100년 되었다는 것이 매우 작위적인 해석으로서 억지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한국은 1948년 이후 반도 남쪽에 건설된 국가를 지칭하는 말일텐데, 한국의 역사는 100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 아나키즘 100년이라고 할 때의 한국은 남한을 비롯해 한반도 전역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란 말은 부적절하다.
한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북측과 남측 그리고 이 두 나라로 갈라지기 이전의 상태 심지어 미래 한반도에 들어설 어떤 공동체에 대해서까지 무차별적으로 이 한국이라는 말을 적용하는 경우를 나는 자주 본다.
이것은 지독하게도 국가주의에 찌든 사고방식으로 아나키스트라면 결코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100년간 이어져 왔다는 그 운동에는 실은 엄청난 왜곡과 변절이 숨어 있다.
이런 것들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않고 '100년의 운동역사'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시도는 하나의 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양성을 은폐하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물론 그런 입장 차이를 떠나서 지난 100년간 이 땅에서 어떤 형태로든 벌어진 아나키 운동을 볼 때는 그 운동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적인 예로 한국 아나키즘 운동에는 여성주의가 아예 빠져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맞선 독립운동 시절 이 땅에서 벌어진 아나키즘 운동의 주도자들은 대부분 당대 최고 사대부 집안 출신의 남성들이었다.
신채호나 이회영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치열한 아나키 운동을 펼쳤고, 심지어는 당대 민족주의의 한계까지도 뛰어넘는 과감한 용기와 실천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당시 여성들이 받았던 차별과 억압은 제국주의 타도와 민족해방만큼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을까?
100년 동안 이어져왔다는 그 한반도 지역 아나키즘 역사에서 여성주의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에 영국인 아나키스트인 존 크럼은 '한국 아나키즘 운동은 너무나 민족주의적이다'고 비판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아나키즘 운동(이란 것이 만약 있기나 하다면)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지겨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반 유생들에게서 시작된 그 아나키즘의 엘리트적 전통이 그렇게 자랑스러워서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가부장제가 지금도 커다란 문제라는 것을 한국의 아나키즘은 인식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현재 한국의 아나키즘은 철저하게 대학교수들과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나 역시 그런 아나키즘에 침윤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민족과 남성 지배 그리고 엘리트적 지식인 주도의 한국 아나키즘을 나는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켜 가기 위해서는 아나키즘이 설교하는 것들을 여성주의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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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7 00:20 2007/06/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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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8/01/30 19:03 DELETE

    Subject: it's time to re-read

    돕헤드님의 [여성주의와 아나키즘] 에 관련된 글.
  1. 무나 2007/06/18 09:30 Modify/Delete Reply

    그 책 읽고 나도 빌려주려무나

  2. 2007/06/18 14:30 Modify/Delete Reply

    책이 아니라 짧은 찌라시야. 피자매 사무실에 있으니 가져가거라. 아니면 내가 문서파일을 보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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