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고추, 용산 상추

꼬뮨 현장에서 2009/06/11 16:12
6월항쟁, ‘용산’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웃고 즐기고 떠들며, 1억5천만원 땅에 고추도 심고…
 
2009년 06월 10일 (수) 22:55:37 나난 uridle1981@naver.com
 

6월항쟁 22주년이 되는 2009년 6월10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범국민문화제를 열기 위해, 서울광장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 시간, 서울의 또 다른 곳에서도 6월항쟁을 맞이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그곳은 바로 용산. 오늘은 용산참사 140일이 되는 날로, 문화제를 준비한 이들은 이곳이 바로 2009년판 6월항쟁의 ‘현장’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용산은 모처럼 들뜬 분위기였다.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용산참사 현장을 찾은 탓이다. 140명이 넘는 예술인들이 용산4가 철거지역을 찾았고, 참사현장은 순식간에 노래가 울려 퍼졌고, 시, 그림, 사진들이 현장 곳곳에 붙었다. 그렇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 140인 예술행동”이 한판 벌어졌다. 

   
  ▲ 오늘 용산에서 진행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140인 예술행동'의 진행 모습ⓒ나난  
 
현장 이곳저곳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려 둘러보고 있는데 한쪽 벽면에 태권V가 나타났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정의의 태권V. 이런 설이 있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남산이 뚜껑처럼 열리고 그 안에서 태권V가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설. 그 정의의 태권로봇이 태권V라는 것. 당시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곧이곧대로 믿어 친구들이 꽤 오랫동안 놀렸던 기억이 났다. 그런 태권로봇이 2009년 진짜 용산에 떴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한다. “명박아 어무이가 부른다”라고.

   
  ▲ 김홍모씨가 그린 태권브이 만화 ⓒ나난  
 
이 태권V는 만화가 김홍모씨가 용산 참사 현장의 한 벽면에 그린 만화다. 김씨는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대중이기 때문에 예술 그 자체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며 그렇기에 용산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예술과 용산이 만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이에 그는 “‘투쟁’으로 알려지는 것도 있겠으나, 예술이라는 더 풍부한 정서로 알려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며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런 김씨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용산을 만화로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용산이 잊히지 않도록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을 만화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살려고 올라간 이들의 사연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판화를 흰색 티셔츠에 찍어 판매를 하고 있었다. 판화를 찍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이 판화를 제작한 이윤엽 작가다. 용산이 그에게 의미 있듯 그 역시 용산에 큰 의미를 준다. 그가 그린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판화는 판매가 되어 기금으로도 사용됐고 현장기록을 담은 책의 표지로도 사용됐다. 용산과 이윤엽 작가의 판화는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윤엽 작가는 “판화가 복제미술이라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속에 작가라는 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뿌듯함이 녹아있는 듯하다. 그는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글귀가 나온 사연을 들려줬다.

   
  ▲ '여기 사람이 있다' 판화 제작한 이윤엽 작가ⓒ나난  
 
“용산참사를 인터넷에서 접했는데, 그 속에서 ‘저기 사람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기 사람이 있다’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다’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이 여기에 있듯 사람도 여기에 그냥 있는 겁니다. 이렇게 여기에 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지 않으면서 용산참사가 발생한 것이죠.”

그런 이 작가에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잘 모르겠다”면서도 “사람들과의 연대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라가는 과정”이라고 답한다. “물론 검찰이 숨기고 있는 3000쪽을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고, 대통령이 사과도 해야겠고, 나중에는 재개발 문제에 대한 보상까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이라며.

하얀 종이에 순식간에 송경동 시인이 그려진다. 상의에 그려진 무늬의 나뭇잎까지 세심하게 표현해 내는 손길은 우리만화연대 회원인 김경래씨다. 그는 용산참사 140일 예술행동에 참가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었다. 김씨는 “현장에 실제 와보는 것이 제일 좋다”며 “사람들은 ‘용산’을 뉴스를 통해 접하지만 뉴스마다 차이가 있어서 가려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산현장은 처음이라던 김경래씨는 오늘 와서 어떤 것을 보았을까? 그는 “사람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을 보았다”며 행사가 시작하기 전 용역과의 실랑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늘 용산4가 철거지역에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작업들이 진행됐다. 흙을 둘러싸고 있던 콘크리트가 깨지고 텃밭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 고추와 토마토, 호박, 오이, 상추 모종을 심은 것이다. 평당 1억5천하는 도심에서 그 1억5천만원의 땅에 ‘고추’를 심었다. 그 자체로 재밌는 ‘사건’이다.

   
  ▲ 용산4가 철거지역에 만들어진 텃밭ⓒ나난  
 
이 행동을 기획한 조약골은 “용산을 죽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경찰과 용역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심텃밭운동’을 기획했다”며 “텃밭에서 나온 열매들을 용산철거민들과 함께 나눠먹고 싶다”는 의지를 엿보이기도 했다. 나주에 ‘배’가 있고, 김포에 ‘쌀’이 있듯 ‘용산고추’, ‘용산상추’가 생긴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용산의 상황은 사실 오늘의 용산 분위기만큼 좋은 편은 아니다.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3000쪽 없이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며 용산 철거민 변호인 측이 낸 재판기피신청은 기각됐다. 이를 항의하던 유가족들은 오히려 연행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산4가는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출입금지! 경고!’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던 용역들과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행사에 노래로 참가한 ‘한낱’은 “140여일이 되도록 유가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어 울적하지만 사람은 울적함만으로 살 수는 없다”면서 “즐겁게 싸우려면 즐기면서 싸워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 확실히 오늘 용산에는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다. 노래가 끊이질 않았고 현장 벽 곳곳에는 그림들과 시들로 채워졌다. 아프리카 북 젬베 장단에 행사 참가자들은 하나가 되어갔다. 그렇게 오늘 용산에는 한방에 해결해줄 진짜 태권V는 없었지만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비는, 그야말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웃고 즐기고 떠들며….

   
  ▲ 현장의 모습들 ⓒ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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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16:12 2009/06/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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