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지지 말아야지

꼬뮨 현장에서 2009/09/15 19:17
넝쿨님의 [폭력] 에 관련된 글.
 
안녕.
용산참사 현장에 오늘은 경찰과 용역과 구청직원들이 들이닥쳐서 현수막이랑 예술품들이랑 길거리에 세워놓은 꽃받침대랑 그런 것들을 죄다 강탈해갔어.
아마 소식을 들었을 거야.
 
용산에 왔는데, 분위기가 싸하더라고.
그랬더니 내가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
내가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워낙 경찰이 많았었으니까.
하지만 침탈이 있던 시각에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
 
이틀간 몸이 좀 안좋아서 누워 있었어.
내가 겉으론 건강해보이나봐?
실제로는 안 그래.
하루 정도 무리를 했다 싶으면 다음날, 다다음날은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도 좀 잠 안자고 일을 했더니 결국 지쳐 쓰러져 버렸어.
 
이틀간 몇 가지 할 일이 있엇는데, 몸이 꼼짝할 수 없더라.
그래서 겨우 밥만 먹고 계속 누워 있다가, 오늘은 그래도 좀 나아졌어.
몸이 나아졌더니 그동안 미뤄온 일들을 하다 보니까 오후가 되더라.
집에 고장난 보일러를 사람을 불러서 수리를 했어.
그동안 1년 이상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서 겨울엔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서 생활을 했고, 목욕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물을 끓여서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하는 정도였거든.
그런데 몸이 안좋아서 누워있다보니까 아무래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 달콤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
 
지난 겨울에는 수도관까지 얼어붙는 바람에 열흘을 매일 물을 길어와서 쓰기도 했는데, 세계 1억명 이상이 물부족으로 고생을 하는데, 난 뜨거운 물에 무슨 호강이람 하는 생각에 보일러를 고치지 않고 그냥 살았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있어야겠더라.
그래서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서 고쳤어.
17년이 된 보일러인데, 임시로 고치긴 했는데, 수리하는 사람이 이제는 부품도 나오지 않고, 아무래도 이번 겨울을 쓰고 나면 더이상 사용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
새로 보일러를 사면 50만원은 한데.
당장 그럴 돈이 없어서 그냥 대충 고쳐달라고 햇어.
일단 뜨거운 물은 나오고, 아마 난방도 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완전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들어.
 
게다가 5년을 낀 안경 다리가 완전히 부식이 되었어.
전부터 안경을 바꿔야지 했는데, 그게 언제부터인가 안경다리가 슬슬 끊어지기 시작하더니, 귀에 걸치는 부분이 조금씩 닳아서 녹색 접착제가 자꾸 겉으로 드러나는 거야.
난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몰랐는데, 안경점에 가서 물어보니까 얼굴에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은 땀 때문에 플라스틱 안경다리가 부식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구나...
하여튼 안경다리를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안경사가 안경알을 보면서, 이것도 꽤 낡았다고 은근히 새 안경으로 하나 아예 맞추라고 하더라.
흐흐, 안경알은 아직 잘 보인다고, 그래서 안경다리만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알에 맞는 테가 별로 없다면서 열심히 찾는 척을 하더라.
그러더니 결국 잘 맞는 안경테가 없다면서, 몇 가지를 추천했는데, 결국 난 안경알에 직접 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무테안경이란 것을 골라서 그걸 했어.
 
오랜만에 미뤄둔 일들을 하고 나니까 오후 3시 무렵이 되어서 용산현장에 도착했더니 또 침탈이 있었다고 하는 거야.
흠.
그래도 지지 말아야지.
다시 걸개그림도 걸고, 플래카드도 걸고, 벽에 그림도 그리고, 화단도 새로 세우고 해야지, 다짐을 해보는 중이야.
끝까지 지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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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19:17 2009/09/1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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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9/09/16 13:33 DELETE

    Subject: 용산참사 150일, 지금까지 꺼지지 않은 불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릴 때, 장자연씨가 홀로 목을 맬 때,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차마 눈을 뜰 수 없습니다. 한국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살고 싶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낳을 수 없는 곳, 경제대국이라는 21세기 한국의 속살입니다. 그 속살에 불이 붙었습니다. 용산참사라는 너무 뜨거워 가슴 아린 불이. <?xml:namespace> 오늘로 용산참사 150일이 되
  1. 디디 2009/09/15 20:56 Modify/Delete Reply

    아푸지 마라. 힘내.

  2. 한동성 2009/09/15 23:33 Modify/Delete Reply

    힘내십시오.

    제가 일 거들고 있는 인터넷 신문에 여기서 자주 보던 이야기가 실린 기사가 접수되어서 좀 놀랐습니다. http://weekly.sp.or.kr/article/13/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걱정하고, 응원한다고 생각하시면 한결 더 힘이 나시지 않을까 합니다.

  3. 2009/09/15 23:45 Modify/Delete Reply

    디디/ 요즘엔 아프면 그러려니 하고 쉬면서 지낸다.
    한동성/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저도 잘 알아요. 매일매일 그런 힘을 받으면서 지냅니다. 용역과 경찰의 폭력을 이겨낼 수 있는 우리의 힘도 거기서 나오는 것 같아요.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가 없었다면 용산참사 투쟁은 이미 끝났겠죠. 앞으로도 굵직한 일정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더많은 지지와 참여가 필요할 것 같아요.

  4. 무나 2009/09/16 09:38 Modify/Delete Reply

    월요일에 갔었는데 안 보이더라. 보일러랑 안경 너무 잘했네. 찬 바람 부니까 몸조리 잘해. 몸이 실해야 다른 일들도 신나서 하지. 레아에서 또 보자. 근데, 요즘 일이 너무 바쁘다... ㅜㅜ

  5. 적린 2009/09/16 20:10 Modify/Delete Reply

    기운내라. 내가 냉장고에 두고 온 건 봤어?

  6. 연부네 집 2009/09/17 10:30 Modify/Delete Reply

    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세요. 끝까지 지지 않고 승리하실거라 믿습니다^^

  7. 2009/09/18 01:17 Modify/Delete Reply

    무나/ 월요일엔 나도 꼭 갔어야 했는데, 누워 있느라 못갔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레아에 와서 요가 강좌 같은 거 부탁한다. 공간은 마련하면 되니까. 바닥에 은박매트 깔고 하면 되지 않을까...
    적린/ 고마워. 잘 받았어. 맛있게 먹을께...정말 감동이야.
    연부네 집/ 고마워요.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이에요.

  8. 한용산 2009/10/26 10:40 Modify/Delete Reply

    열심히 일해서 돈벌어야지요. 가난은 게으름에서 온답니다.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대화하세요.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져주세요.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시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겁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 거지같은 삶이 부끄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세요. 땀을 흘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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