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이 부럽지 않더라

꼬뮨 현장에서 2009/09/30 02:34

안녕.
오늘은 어땠니?
 
용산현장에서 보낸 나의 오늘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많아서 복작거리고 그러느라고 시간이 후딱지나가버린 것 같아.
뭘 특별히 한 것은 없는데, 사람들 만나고 그러는 것이 참 바쁘게 하는 것 같아.

레아에 있는데, 텔레비전 같은 곳에서 얼굴을 봤던 국회의원들이 오더라.
유가족 분들과 레아 앞에서 악수를 하는 것 같더니, 사라지더라고.
민주당 대표와 지도부 등 국회의원들이 쭈아악 몰려와서 삼호복집에서 간담회를 가진거야.
 
난 촬영을 하러갈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넝쿨이 카메라를 들고 가더라고.
그래서 도대체 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려고 나도 삼호복집으로 올라갔어.
저번에도 민주당 지도부가 용산 현장에 납신 적이 몇 번 있었잖아.
이번에도 역시 국회의원들이 오니까 무슨 조폭들이 몰려온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나더라^^
삐까번쩍한 검은색 세단이 즐비하고 양복을 빼입은 경호원들에... 현장을 기웃거리는 용역깡패들이 절로 '형님' 하겠던데ㅋㅋ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느껴.
정치인들이 잰 걸음으로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보니깐 말야.
 
레아 미술관에 새로운 작품이 들어오느라고 미술작가들이 또 많이 왔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미술가 구본주가 만들고 다른 미술가들이 힘을 합친 전시물이 레아 미술관 천장을 뒤덮고 있는데, 이 작품은 야광으로 되어 있어서 불을 끄면 반짝반짝 빛나고 참 멋져.


구본주의 다른 조각작품들을 본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추리에 살 때, 그리고 여기 레아를 처음 갤러리로 만들었던 무렵에 구본주의 조각들을 보았었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는 그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같은 훌륭한 작품을 아마 너도 본적이 있을거야.
농민과 노동자의 힘이 느껴지는 바로 그런 조각들이 다시 레아 1층을 채우고 있었어.

작가들이 공을 들여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레아에 설치를 해놓았는데, 이런 작품들 매일매일 보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면서 지내는 나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가의 예술작품이란 것이 사실은 별 거 아닌 거잖아.

우리의 삶와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서, 땅값 비싼 어느 화려한 미술관 조명 아래 쳐박혀 있거나, 재벌 회장집 금고에 숨겨져 있는 소위 명작이라는 것들을 보면, 참 용산참사 현장의 무너져가는 건물들 벽에 적힌 개발새발 낙서만큼도 못한 것들이잖아.


난 시대의 아픔과 함께, 인권와 정의의 편에 선 미술들과 매일 같이 레아에서 지내니 참으로 행운이기도 하고, 덕분에 진정으로 위대한 미술이 뭔지 나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해. 

지금 레아에 남아 있는 구본주의 작품은 하나인데, 바로 천장에 붙어 있는 사람이 달려가는 모습을 한 전시물이야.

다닥다닥 붙어있으니까 잘 보일 거야.
내가 새벽에 집에 갈 때 보통 레아 1층 불을 끄고 나가니까, 야광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 아름다움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난 참 얼마나 행복한 인간이니.

별빛을 받으며 대가의 예술작품이 누워있다는 루브르 박물관까지 일부러 찾아갈 필요도 없어.

입장료를 낼 필요도 없고.

시간에 쫓겨 빨리빨리 감상할 필요도 없거든.

천천히 음미하고, 천천히 대화하고, 그냥 원하는만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어. 

게다가 이곳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운동의 산실이야.

진보의 에너지가 꿈틀대는 곳.

누구나 와서 볼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체제의 억압을 정면으로 깨부수려는 의지가 없으면 피상적으로밖에 머무를 수 없는 곳.

예술을 공유한다는 것이 가진 무한한 의미, 그 온전한 가능성을 나는 레아에서 새롭게 체득하고 있어.

 

그래서 난 대저 미술작품을, 아니 모든 예술작품을 개인소유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어져.

아니 모든 재화에도 해당되는 것이겠지.

숨겨두고 나 혼자 감상하면 참 심심하지 않을까.
부르조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아, 난 미술가들을 볼 때마다 참 부러워.
왜냐하면 난 미적 감각이 없거든.
아름다움에 대한 나만의 기준과 안목은 있지만,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감각은 완전히 꽝이야.
그래서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식물을 키워내보자고 마음 먹고 전부터 여러 번 텃밭이나 이런 것들에 도전을 해봤는데도, 역시 잘 안되더라.
내 능력 밖의 일일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 해보고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렇게 노력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

 

하여튼 그 작가들이 모여서 레아를 다시 아름답게 꾸미고, 밤 늦게까지 잔치도 했어.
티셔츠에 판화를 그려넣고, 또 그 티셔츠를 산 사람들을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어서 그렇게 모인 사진들까지 모두 하나의 커다란 미술작품이 되었거든.
사람들이 많이 와서 티셔츠를 사는 사람, 레아를 기웃거리는 사람, 미사가 끝나고 따로 집회를 하러 온 대학생들 등등 그런 사람들이 구본주의 조각작품과 더불어 하나의 커다란 현장 설치 작품이 되는 것이지.
멋지지 않니?
 
천주교인권위원회 변연식 대표님이 평소에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맘에 들었는지, 그 티셔츠를 하나 날 위해 사주시더라.
그래서 나도 그 티셔츠를 입고 구본주와 함께 별이 되는 작품에 들어가게 됐어.
선물을 받으니까 기분이 참 좋아지더라.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오늘은 넝쿨이랑 송이도 레아에 돌아왔어!
선물도 가져왔거든.
특히 넝쿨이 돌아오면서 일본 면세점에서 파는 고급 초컬릿을 사서 선물로 들고 왔는데, 홋카이도에서 만든 좋은 초컬릿인 모양이더라.
그래서 얼른 내가 커피를 끓였지.
아무래도 바리스타 도영이 없어서 내가 대신 커피를 끓였는데, 너 그거 아니?
초컬릿은 커피와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어.
그래서 또 사람들하고 둘러 앉아서 커피 몇 잔을 순식간에 비우면서 초컬릿도 먹고 일본에서 지낸 이야기 듣느라고 시간이 또 흘러갔어.

 

티셔츠와 초컬릿으로 한껏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레아에 있는데, 일본의 유명 통신사인 '교도통신' 기자가 용산 현장에 찾아왔어.
다케우찌 씨가 데려온 것인지, 아무튼 용산 투쟁이 일본에도 제법 알려져서인지 그 교도통신 기자가 용산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또 하필 나를 인터뷰하더라고.

아마 유가족분들이나 철거민들에 대해서는 이미 인터뷰를 했거나 아니면 나름 기사로 썼거나 했겠지.
하여간 레아를 지키는 젊은 사람들로부터 용산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봐.

그래서 전반적인 용산 이야기부터 레아 사람들 이야기까지 이것저것 말을 하느라 오후가 다 가더라.
젊은 사람들이 왜 계속 용산현장을 찾고 있느냐 하는 이유부터, 주류 언론과 조중동 이야기며, 정운찬 국무총리며, 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며, 그래서 또 한 시간 가량 그 기자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단다.
 
이래저래 바빴는데, 그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압권은 뭐였는지 알아?
중국에 사는 친한 친구들이 있어.
디디와 홍진이라는 결혼한 커플이야.
결혼식을 작년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한 친구들이거든.
그들의 결혼 이야기랑 내가 찍은 촛불결혼사진이 조그맣게 화제가 되어서 주간지 한겨레21이 마침 무슨 대안결혼이니 하는 특집주제를 마련했을 때 한 꼭지 주인공이 된 친구들이야.
그들은 대련에 살고 있는데, 내가 작년에 대련에 잠시 놀러 갔을 때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었어.
 
그런 디디와 홍진이 며칠 전 한국에 잠시 귀국했어.
디디와 홍진은 토요일에 열렸던 9.26 범국민추모대회에서도 만났는데, 오늘 홍진이 레아에 다시 온 것이야.

그런데 글쎄 내가 작년에 대련에서 맛있게 먹었던 '마카데미아 너트'를 선물로 가져온 것이야.
그래, 바로 그 마카데미아 넛!!
난 채식주의자라서 견과류를 필수적으로 먹어줘야 하는데, 특히 마카데미아는 견과류의 왕이라고 불리는 거야.
크기도 크고, 영양분도 많고, 맛도 정말 고소하고 최고중 최고인데,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어.
게다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마카데미아는 이미 다 껍질을 까서 소금 같은 것 넣고 볶은 것이거든.
오마이갓!!!

그런데 대련에서 먹었던 그 마카데미아는 껍질채 그대로 있는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껍질을 까서 먹어야 하는데, 그만큼 신선하고 어떤 인공적인 처리과정이 되지 않은 것이라서 그대로 원초적인 맛이 있거든.
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정말 감동의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하는데, 하여간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바로 그 마카데미아를 홍진과 디디가 내게 선물한 거야!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마카데미아의 향긋하고 고소한 향이 입에 가득 퍼지고 있는데 이건 그 맛을 직접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거든.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야.
마카데미아 너트를 먹으면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났구나 안도하면서, 또 내일은 오전부터 용산에 나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어.
이렇게 쓰고 나니까 마치 활동가들이 '하루 용산 소식'을 만들어서 게시판에도 올리고, 이메일로도 뿌리는 것 같다.ㅎㅎ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좀 정신이 없었지만, 선물도 많이 받아서 오늘 난 참 행복했어.

맘에 쏙 드는 선물을 세 개씩이나 받다니, 오늘은 근래들어 전에 없이 행복한 날이야.
오늘의 나처럼, 네게도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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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02:34 2009/09/30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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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9/30 03:47 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들풀 2009/09/30 12:18 Modify/Delete Reply

    와! 멋진하루였군요.

  3. 조선폐간 2009/10/01 02:09 Modify/Delete Reply

    밤에 레아에 아무도 없을때 몰래가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싶은데..요즘은 맨날 저보다 늦게 가시는 돕님...

  4. 디디 2009/10/01 14:56 Modify/Delete Reply

    오-0-저런 훌륭한 하루의 압권을 우리의 선물에 돌려주다니 완전 기쁨 >_<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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