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를 당하고 나서

떠남과 돌아옴 2010/02/18 22:46

사람을 못믿게 된다는 것은 참 힘든 경험이다.

낯선 곳에 내렸는데, 당신의 돈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

그들 눈에 나는 오로지 지갑 속의 지폐로 보일 뿐이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몇 푼 남지 않은 당신의 돈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모든 신경은 지갑과 가방으로 집중되고, 행여나 누구의 손이 잠깐이라도 스치는 날에는 그것을 격퇴시키고 다시 신경이 곤두서게 마련이다.

 

인도에 왔다.

오자마자 사기와 강도를 당해 현금 수십만원을 빼앗겼다.

초보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불안함을 이용한 치사한 사기와 범죄가 이곳에는 만연해 있다.

이미 인도는 악몽이 되었다.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레 이런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인도의 물정을 제대로 모르고서, 함부로 국경을 넘어간 죄?

현지 사정과 언어와 분위기를 잘 모르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인도는 네팔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네팔 사람들은 거칠지 않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대부분 정다웠으며, 순박해 보였다. 

최소한 나를 돈으로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소나울리를 통해 육로로 인도 국경을 넘자마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돈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늑대 같은 자들이 골목마다 넘쳐났다.

 

인도에 가기 전 미누가 나보고 조심하라면서 당부를 했다.

인도 사람들은 무뚝뚝하거나 오만하다고.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항상 인상을 찡그리고 다니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인상을 지어보이면서 "이렇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미누는 더 험하게 인상을 짓고 다녀야 인도 사람들이 건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누는 인도 제국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주변의 약한 나라들을 깔보고, 침략해서 복속시키려 하는 심리가 강대국이 되려는 인도에도 미국, 중국, 영국,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류'라는 문화 강대국주의로부터 시작해서 '월드컵'과 '김연아'로 나타나는 스포츠 강대국주의 그리고 'G20 정상회담'이라는 경제 강대국주의까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한국 역시 언제나 강한 국가가 되려는 욕망을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지배계급의 열망은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인도 제국주의에 대한 미누의 그 말이 어렴풋이 맞다는 것을 나는 인도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느끼고 있다.

9시간이 넘게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겨우 인도 국경을 넘자마자 안도감에 나는 잠시 부드러운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그때를 노리고 달려든 인도인 강도들에게 그만 표적이 되고 만 것이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어주겠다고 내게 말할 때 네팔에서는 그것이 진짜 호의였는데, 인도에서는 그것이 사기의 전조라는 것을 나는 새로운 분위기에 취해 잠시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솔직히 돌아가고 싶다.

어디로든 내가 돈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내 지갑이 아니라 내 인격과 삶에 대한 태도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는 가고 싶다.

그래서 안심하고 지내고 싶은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두려운 눈으로 보고 싶지 않다.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이곳에도 많이 있을텐데, 나는 이미 의심과 경계의 막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고생해서 국경을 넘어들어온 인도에서 나는 고락뿌르로 향하는 버스를 탄 채 이 악몽같은 여행을 그만두려고 몇 번이나 마음 먹었다.  

네팔에는 없던 모기도 극성을 부린다.

 

돌아갈까?

하지만 쓰레기 같은 자들에 의해 더러운 경험을 한 번 당했다고 해서 내 소중한 여행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는 없다.

강도를 한 번 당했다고 해서 내 남은 일정까지 모조리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이대로 나는 아파만 하고 있지는 않겠다.

마음을 굳게 먹자.

무엇이 찾아오든 원래 목적지인 바라나시에 가봐야겠다.

누군가 인도는 완전 빠져들든, 완전 증오하든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리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인도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제부터는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바닥을 쳤으니 말이다.

 

고락뿌르 기차역은 대기실도 잘 되어 있다.

모두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세 시간째 불안함에 떨고 있다.

나를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고 그냥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나시 행 밤기차는 연착이 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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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22:46 2010/02/1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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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머프... 2010/03/11 23:17 Modify/Delete Reply

    걱정이 되는군요! 무사히 '소중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2. 디디 2010/03/12 08:50 Modify/Delete Reply

    켁. -ㅁ- 강도는 그냥 길거리에 출몰한단 말이냐!

  3. 무나 2010/03/12 09:36 Modify/Delete Reply

    체인 사서 가방 묶고 다녔는지 궁금하네... 인도도 자주 가면 어떤 경우에 사기를 당하는지 알게 될테니 다음부터는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듯...

  4. 미친꽃 2010/03/12 14:07 Modify/Delete Reply

    이런 강도를 당했다니, 조심해야겠다. 나도 몇년전에 인도 한번 간 적 있었는데 사기나 강도는 당하지 않았지만, 바가지 좀 쓰고 여행이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나... 힘내. 그래도 고생한만큼 나중에 할 얘기도 많고 추억도 많아지고..

  5. 은영 2010/03/17 18:12 Modify/Delete Reply

    오늘 네팔 atm의 기계 이상으로 2000루피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인출됐다는 사인만 나온 때, 혼자 막 흥분하면서.. 돕 생각을 했어. ㅎ. 훨씬 큰 돈을 그렇게 어이없고 무기력하게 빼앗기고 난 돕에게.. 내가 너무 경솔한 위로와 조언을 했던건 아닐까? 하고.. ㅎ. 언제나.. 멀리보지 못하는 나인가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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