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콜린 워드 사망 소식

나의 화분 2010/03/12 02:30

 

한국에는 돌베개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anarchy in action)"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출중한 아나키스트 콜린 워드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2010년 3월 10일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젊은 아나키스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깊은 존경을 받아 왔으며, 실제 활동가들과 실천적인 도움을 서로 나누며 50년 가까이 헌신적인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콜린 워드는 1973년에 발표한 대표적인 저서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에서 아나키즘이 하나의 추상적인 이념으로서 추구해야할 목표가 아니라 현실에서 부단히 적용되는 삶의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래 책의 제목이 '아나키 인 액션(즉 현실에서 실현되는 살아 있는 아나키)'이지,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차원에서 '아나키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나키를 아나키즘이라는 이념으로 치환하고, 연구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나키의 터질듯한 생명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닐까요?

 

콜린 워드는 철저히 아나키를, 그리고 (학자들에 의해) 이념적 차원으로 죽어버린 아나키즘을 구체적인 현실의 운동으로 끌어내립니다.
부단히 작동하는 현실 운동의 여러 흐름들에서 아나키의 생생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 콜린 워드의 생각이었으며, 그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아나키는 꿈이나 목표 또는 죽어버린 과거의 이즘이 아니라 지금 이 억압적인 현실에서 끊임없이 다시 살아나는 구체적인 모습들인 것이죠.

문제는 그런 모습들에 연대해 아나키적인 사회를 만들어내고, 확대해나가는 것입니다.
아나키는 과거에 존재했던 단체의 이름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풀뿌리 민중들이 무의식적으로 구현해내는 삶의 모습들인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인 채 이념으로서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생명력 넘치는 아나키가 현실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콜린 워드는 현실 삶의 관계들 속에 아나키의 원칙들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단호히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아나키란 현실에서 협동관계, 공생관계, 상호부조를 추구하고 강화시키는 구체적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겐 서로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콜린 워드는 보여주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대해 콜린 워드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현실은 눈으로 덮여 있는 추운 겨울이지만, 그 눈 밑에는 새롭게 다가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씨앗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콜린 워드는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아나키의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씨앗들이란 콜린 워드에게는 구체적으로 풀뿌리 민중들의 자발적인 조직들, 상호부조의 공동체들, 여러 형태의 자치 결사체로 나타납니다.
현실이 강압적인 국가조직과 기업, 소수 대표자들이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 등의 모습으로 짜여져 있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콜린 워드는 대안적 사회가 실제로 아나키의 자유로운 원칙들이 지켜지며 작동하는 소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콜린 워드는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이외에도 약 30권에 이르는 많은 책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무척 광범위해서 그의 저서에는 분배의 문제, 건축, 스스로 집을 짓는 법, 교육, 동화, 도시계획, 아나키즘 이론 등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걸친 그의 폭넓은 관심사는 결국 풀뿌리 민중들이 자치 공동체를 건설하고 운영해가는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모든 문제들을 철저히 자유롭고 평등한 아나키의 원칙에 기반해 해결해나가는 가운데 하나하나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살아 있는 대안을 만들며 평생을 살아온 콜린 워드는 20세기 후반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실천적 지식인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였습니다.

 

1924년 8월 14일 영국 에섹스 주에서 태어난 콜린 워드는 미국에서 쫓겨나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엠마 골드만이 1938년 런던에서 열린 메이데이 기념 집회에서 연설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15세에 학교를 자퇴하고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이후 1942년에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징병되어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아나키스트 활동가와 교육 노동자로 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드는 활동을 줄기차게 벌입니다.
공동체를 만들고, 그속에서 살면서 잡지를 발간하고, 책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등등 사상가와 활동가로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 콜린 워드는 살아 움직이는 아나키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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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02:30 2010/03/1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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