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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저항하는 사람들

“평화의 바람으로 노래여 날아가라”
생명평화 사랑하는 이들 대학로에서 ‘평화난장’ 열어
2006/5/15
김고종호 기자 kkjh@ngotimes.net
전쟁에 저항하고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학로에 모였다.

13일 오후 1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는 '평화난장' 문화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전쟁없는세상, 평화인권연대, 길바닥평화행동, 경계를넘어,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바닥,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등 국내 평화운동단체들과 개인참여자들이 함께 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죽음' 퍼포먼스의 나레이션


평화난장 행사의 첫 도입부는 '죽음' 퍼포먼스였다. 이게 뭘까 궁금했다. 그런데 스피커에서 갑자기 총소리와 폭격소리가 요란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행사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폭격소리는 32초간 계속 됐다.

이윽고 적막이 찾아왔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새벽이 밝는 소리 같기도 했고, 생명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쓰러진 사람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이때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인 '진흙' 씨가 나레이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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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평화난장 참가자들이 '죽음'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총과 폭격소리가 난무한 가운데, 죽어가는 이라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레이션이 낭독되었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의 군인들이 떠오른다고 해요.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천4백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것을요.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 세 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남자아이일 수도 있고, 저처럼 붉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일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이에요.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봐주세요.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 바로 제 모습을 떠올려주세요.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 16일 바그다드의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 폭탄에 살해당한 3백 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거에요. 그날 공습으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고, 벽에 몰려있던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형체도 없이 타버렸지요.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순간 바그다드의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에 있는 열 네 살의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 거에요.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대요.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라는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지도 몰라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무스타파는 단돈 25달러밖에 안되는 약만 있으면 완전히 나을 수도 있다고 해요. 하지만 여러분이 이라크에 취한 경제봉쇄 때문에 이라크에는 지금 약이 없어요.

어쩌면 저는 걸프전이 벌어졌던 세 살 때 여러분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지도 몰라요. 알리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아버지 무덤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대요.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요.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버지를 가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후략)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져있어 신기하게 쳐다보던 시민들은 나레이션을 들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이라크 아이들의 말에 쓰러져 있던 이들은 다시 일어섰다. 이라크의 아이들도, 그렇게 일어섰으면 좋겠다. /김고종호 기자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평택 대추리 상황을 보고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내 땅에서 살고 싶다는 주민들에게 정부는 논바닥을 파헤치고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쳐 협박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하며 "일부 언론은 주민들이 반미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곳 주민들은 당당히 자신들이 미군을 막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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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딸과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온 한 아버지가 평택 대추리 폭력진압과 관련된 피켓을 보고 있다.

작년 10월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고동주 씨가 발언에 나섰다. 고 씨는 "지난 1월 24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3월 14일에 보석으로 나왔고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받은 후 항소심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는 말로 심경을 전했다. 그는 '노래여 날아가라'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며 세상의 평화를 기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고동주 씨.
김고종호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고동주 씨.

 

 

 

 

 

 

 

 

 

 

 

 

 

 

 

 

노래여 날아가라 우리 생명의 힘을 실어 
깊은 겨울 잠을 깨어 노래여 날아가라
노래여 날아가라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
평화의 바람으로 노래여 날아가라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 반이라는 기간의 징역을 살고 출소한 임재성 씨는 "5월 15일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날"이라며 "흔히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소수라고 하지만 외국인들은 한해 1천 명에 이르는 한국 젊은이가 이 이유로 감옥에 간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구속되는 사람에게 촐소인사를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임재성 씨의 출소 첫날
 


임재성 씨가 1년 반이라는 기간을 살고 충주구치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날은 하필이면 평택에 폭력적인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지던 지난 4일이었다.

임재성 씨는 출소하던 날 자신의 후원모임 인터넷 클럽에 "덕분에 건강히 돌아왔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이 글에서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평화운동의 동지들과 계획을 세우고, 황새울의 벼들이 다시 무사하게 자랄 수 있도록 미력을 보태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남긴 글 말미에 달려있는 추신(ps.)은 그의 출소 첫날이 어떠하였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그의 허락을 받아 해당 부분을 올려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임재성 씨.
김고종호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임재성 씨.

ps. 어제(5월3일) 징역 안에서 윤 국방장관이 평택관련 성명을 발표한다는 이야기만 어찌어찌해서 들었는데. 5월 4일 새벽, 제가 출소를 준비하던 그 시간에 대대적인 군경합동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더군요. 나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같이 활동했던 이들이 모두 대추리에 집결했기에 오늘 못 왔다는 이야기에 어쩌나. 마중 온 이의 전화로 같이 활동하는 이들의 출소 환영인사를 받았는데, 자기는 지금 닭장차 안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이 무슨 미친 노릇인가 싶었어요. 지금 연행되어서 구속되는 사람에게 출소인사를 받는 이 상황. 방금 출소한 사람이 방금 연행된 사람에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고, 그는 나에게 건강하게 나왔는지 물어보고, 그리고 빨리 보자고. 아니 내가 널 접견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ps2. (고려대) 출교 7인의 이야기는 알았지만. 정식이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어요(여기서 '정식이'는 출교자 중 한명인 조정식 씨를 말함). 이 역시 나와서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 그 생각이 떠나지가 않아서 낮에 통화를 했지만, 집에서 짐 풀고 저녁 먹고 학교 본관 앞 농성장에 찾아갔지요. 출소자와 출교자의 만남. 정식이는 출소한 날 당일 찾아와 준 내가 반갑고 난 이렇게 본관 앞에서 삭발한 머리로 꿋꿋하게 농성을 책임이지는 정식이가 반갑고. 내일이 5월 5일. 개교기념일 행사로 농성장철거가능성의 분위기 속에서 바쁜 정식이를 붙잡고 이것저것을 꾸역꾸역 물어본 후에야 집에 돌아와서 보니 새벽 1시네요. 타이핑 한 글 정리하고, 이것저것 확인하다보니 3시반.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입니다. /김고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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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이 세상에는 걷어내야 할 철조망들이 너무 많다.

새만금사업 중단 운동을 벌였던 '갯살림' 활동가 이수진 씨는 "방조제로 가로막힌 새만금에 다녀왔는데 바람불면서 모래와 소금기가 날리는 모습이 사막 같더라"라는 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김제, 부안, 군산 일대 갯벌이 모두 말라서 폐사된 조개들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이 벌을 어떻게 받으려고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발언을 마치고 노래 '새만금을 만나면'을 불렀다.

새만금을 만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슬퍼서 아름답고 기뻐서 아름다운
땅과 사람들 함께 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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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대학로를 지나던 한 외국인 커플이 이라크 점령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을 보고 있다.

지은 '경계를넘어' 활동가는 "이라크 전쟁은 너무나 많은 생명을 죽였지만 우리는 지금 이라크에 너무 무관심하다"라며 "어떻게 하면 다시 그 반전의 목소리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미국이 지금 이란을 협박하며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라며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란에 직접 가보고 싶다"고 연대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미니 씨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는 방식이 철조망을 쳐놓고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이었다"라며 "노무현 정부도 똑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우리들을 외부세력, 폭도라고 몰고 있는데 진정한 외부세력은 미국 아닌가"라며 "미군은 미국을 지키고 주민은 마을을 지킬 때 평화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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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한 소주업체 홍보요원이 이라크 평화를 기원하며 꽃모양 색지를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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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아이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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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인근 서울대병원에서 잠시 마실나온 아이와 어머니도 붙인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글자는 '평화'.

'대항 지구화 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군 씨는 오카리나 연주로 지나가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첫 번째로 선택한 연주곡은 '클레멘타인'. 이는 사랑하는 딸을 잃은 어부의 슬픈 노래다. 사람들의 슬픔을 외면한 채 국익만 강조하는 현실의 슬픔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의 두 번째 연주곡은 드라마 '서동요' OST 수록곡인 '해밀'이었다. '해밀'은 비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말. "어려운 상황이 끝나고 맑게 갠 하늘을 보면서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담긴 연주였다. 과연 그러한 평화가 올 수 있을까. 이들처럼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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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이 세상이 비누방울처럼 아름답고 오색찬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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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종호기자 
전쟁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 그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까.
2006년 5월 13일 오후 23시 43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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