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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박정숙 여사


 

우리 엄마, 박정숙 여사. 올해 환갑을 맞았다. 평생 늙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얼굴엔 주름도 자글자글, 흰머리도 수북히 내려앉았다. 첨보는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어떻게 하다 삶이 이렇게 꼬였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그 때마다 부모님, 특히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다고 대답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하셨지만 지극히 상식 선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시는 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싫다는 거 강요받아 본 적도 없고 하지 말라고 닥달 받아본 적 없다. 그래서 우리 사이엔 늘 비밀이 없었다. 대학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접한 것도 전라도 강진, 장흥 출신인 부모님의 아웃사이더 기질(우리 부모님은 한겨레신문 창간 때부터 독자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때문이었다 믿고 있으며 공부보단 데모를 전공하게 된 것도 최루탄이 난무하던 거리에 자식과 함께 참가했던 그분들 때문이었다. 결혼도 안하고 별다른 벌이도 없이 늙어가는 딸내미를 챙기면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툭툭 결혼 얘기, 공부 얘기를 꺼내지만 병역거부 무죄판결이 났을 때도 젤 먼저 축하를 해준 것도 엄마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이번 여행은 평소 별로 효도도 못하고 살았기 땜에 환갑을 빙자해서 가족여행을 가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첨엔 근처 온천이나 제주도로 여행가자고 했던 것이 판이 커져서 일본 행으로 낙찰, 준비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후쿠오카 행을 결정했고 3박 4일 간의 온천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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