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영창밖에 길이없다니-시민의 신문칼럼(2006.2.6)

‘영창’밖에 길이 없다니?
[시민운동가 단상] 비판적·공동체적 아이의 살아남기
2006/2/6
김정명신 기자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양육하며 학교와 군대를 통과하는 과정을 본다는 것은 부모로서 갈등과 후회와 결단의 연속이다. 폐쇄적이고 선택이 매우 제한되어 있는 두 집단에서 한국교육이 목표한대로 적당히 창의적이고, 비판적이고, 공동체적인 아이들이 살아남는 법이 있을까? 오랫동안 교육시민운동에 참여했던 나의 대답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학교’는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군대는 별도의 말이 필요 없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민변, 민중연대 등 인권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노충국씨 사건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노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의료원 영안실에서 발족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 국방부 장관의 대국민사과 등을 촉구했다.
<시민의신문DB자료사진> 이정민기자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민변, 민중연대 등 인권사회단체로 구성된 '고 노충국씨 사건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노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의료원 영안실에서 발족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 국방부 장관의 대국민사과 등을 촉구했다.

대학을 다니다 입대하여 현재 군복무중인 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있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신문에 날 만큼 자기 상황이 어렵다’며 생전 안하던 욕설을 섞어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재 아이가 겪는 어려움은 상관과의 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신세대 장병인 아이는 합리적인 환경속에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온데 비해 연줄문화가 관행이 된 아이의 상관세대는 실력보다는 연줄이, 공과 사가 분명치 않고 계급을 이용해 불합리한 명령을 강요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세대차이자 사회의 축소판인데 폐쇄된 계급사회라 그것이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는 모양이다.

논산훈련소입소식에서 누군가 “이곳은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 훈시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고 폭력적으로 들렸다.  아이가 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 나는 군대의 비상식을 이해시키는 것,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때문에 걱정했다.

“군대는 폐쇄된 공간에서 성장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계급을 위주로 생활하는 곳이다. 다들 각종 사연을 마음에 품고 있어 별의별 일이 다 생길 수 있다. 때론 상대가 상식적으로 이해못할 행동을 하기도 할 것인데 무조건 네가 이해해라. 고향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보다. 할머니가 아프시거나… 갑자기 집안이 망했거나… 내색할 수 없는 괴로움을 상대방에게 푸나 보다 하고…”?

그런데 그 폐쇄된 계급공간에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아이가 피할 수 없이 닥친 모양이다.  “나는 네가 아주 힘들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했다. 몹시 걱정스럽다. 그런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 “상관명령에 개기다가 명령불복종으로 5일간 군대 영창을 다녀온 후, 전출당하는 길밖에는 없다” 고 아이는 대답했다.

나는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군대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군인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았고 주변 젊은 남성들도 사연을 풀어놓으니 모두들 이야기가 한 보따리들이었다. 그리고 각자 가진 ‘끗발’로 이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더구나 군대는 부실한 의료 체계속에서도 병사가 병을 얻으면 완치 판명시까지 내보내지 않아 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제대직후 병사가 말기 암 환자로서 결국엔 사망했다는 뉴스가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모두 절감하고 있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아이의 어려움을 풀어줄 해법을 찾아보았으나 중간에 포기했다. 아이가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최선의 출구라고 생각한 ‘군대내 영창’이라는 방법을 부모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며 막아섰는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출구가 있기나 한 걸까? 그것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지나 않을까?  머릿속에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남자들에게 군대에서 나라에 대한 충성은 자랑스러운 일이되, 힘에 의한 굴종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 끗발과 영창사이, 거부와 굴종사이, 다른 길은 없나?
해소되지 않은 물음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어느 날, 한 시민운동가와 이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한 가지 아픈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극복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두 가지 행동을 한다. 타협하거나 거부하거나… 타협하며 굴종했을 때 상처가 남고, 서투르게 거부했을 때도 상처가 남는다. 그러나 타협이건 거부이건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용기있게 실천하고 전적으로 책임질 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한 번 더 성숙하게 된다. 군대영창, 큰일은 아니니 너무 염려마시라.”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아이와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려고한다. 아이는 내게도 새로운 용기를 주고, 둘은 아픈 깨달음을 넘어 그렇게 성장해갈 것이다.

김정명신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2006년 2월 6일 오후 13시 2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5호 4면에 게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