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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엄마와 양아치수험생

 

양아치 엄마와 양아치 수험생(2005.11.23)


작은 아이 수능시험을 며칠 앞두고 엄마인 나는 감기몸살에 걸렸다. 며칠전 부산 아펙반대민중포럼을 이틀동안 다녀오고 교원평가건도 이상하게 펼쳐지고 모임행사도 연거푸 있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곤한 날들이 계속되었는데 감기가 그 틈을 노린 모양이다. 삼일내내 열이 나고 골이 깨어진다고 할까 머리가 많이 아프고 기침이 약간이다.

어젯밤 늦은 시간, 아이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온 죽을 저녁밥 대신으로 나누어 먹는데  수험생인 작은 아이가 ‘우리는 둘다 양아치’라고 말했다. ‘자식 수능시험을 앞두고 기도는 하지 못할망정 밥도 안해주고 아프다고 누워있는 엄마도 양아치, 수능시험을 앞두고 당일치기한다면 갑자기 머리싸매고  책상앞에 붙어 있는 나도 양아치’라는 것이다. 그렇게 수능전날을 보내고 나는 오늘 새벽에 일어나 어제 죽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을 활용해 점심 도시락을 싸주었다. 아마 아이는 지금쯤 수능문제를 풀고 있을것이다. 고1과정을 마친 그애가 얼마나 할수있을런지? 어제 제말로도 고2까지만 다녔어도 훨씬 수월했을것이라고 하던데...


그애는 그야말로 교육부가 하라는대로, 가르치라는대로 가르친 아이다.  그렇게 키웠더니 한국대학이 아니라 미국 주립대학에서 입학허가서가 왔다.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그애는 적당히 창의적이고, 적당히 비판적이었다. 공부도 적당히 잘했다. 어렸을 때 부터 손가는 일 없이 철도 일찌감치 들어 부모를 편하게 해주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적당히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바로 그점 때문에 아이는 입시교육과 권위주의적 학교를 거부했다. 결국 몇 년동안의 갈등을 겪고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감하고 자퇴했다.  그후 우여곡절을 거쳐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 올 8월말, 입학했고 그사이 올해 한국대학에 수시 1차, 2차시험을 보았다. 도합 네군데 대학을 지원했고 세군데 대학에서 1차 서류전형 2배수 통과, 면접에서 최종 불합격했으며 한 대학은 아직 미정이다. 아이는 한 대학에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빠져있자 ‘그 학교가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이상 나도 더 이상 그 대학에 미련 없다’고 마음을 접었다


나는 너무나 자주, 너무나 절박하게 대한민국을 고발하고 싶다.

대한민국교육부가 하라는대로 학교만 믿으며 사교육안시키고, 창의적이고, 공동체적이고 성실하고 싹수있게 10여년 키웠는데 대한민국 대학교 입학단계에서 배제되거나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국경을 넘어 선택한 넓은 물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차별과 배제가 없다.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국경을 넘는  이유가 반드시 그 아이가 학력이 부족해서라고, 한국교육에 부적응해서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준비된 아이도 대한민국의 입시관문에서는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국경을 넘는다. 나는 엄마로서, 아무리 양아치 엄마라지만 ‘유학은 가족 해체이자,  자식손을 놓치는것’으로 생각하고 무던히도 아이손을 놓치 않으려 노력했다. 올한해 줄곧....

이를 지켜 본 친구가 말했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한 아이들은 돌아온다...’

 (200511.23 김정명신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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