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동이 싫어

일상 2012/06/17 21:07

나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 몸을 움직여 노동을 수행하는 신체노동이든 컴퓨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문서를 작성하는 사무직 노동이든 나는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하게 정해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직업으로서의 노동을 견디지 못한다. 학부 학생이었을 때 방학 동안 동생과 함께 소위 노가다를 하기도 했는데 동생은 일을 잘하는 편이었고 나는 일이 힘들고 괴롭기만 했다. 동생이 일주일 내내 일을 하면 나는 겨우 3일 정도만 했다. 나는 노동을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았고 노동을 대단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금리 생활자가 아니라면 노동을 전혀 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대학의 비정규교수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때가 있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어렵고 다양한 압박에 시달리기는 해도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얽매어 있지 않다는 그 사실 하나가 다른 모든 압박을 상쇄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방학이 되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 또 다른 진실이기도 하다. 농담처럼 한 말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no job, no money, no drink.

언젠가 사촌이 집에 와서 내 방과 거실 뒤켠 벽에 쌓아둔 책을 보고 놀라며 도대체 몇 권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많은 책을 설마 다 읽었겠나. 물론 다 읽었을리가 없다. 내가 사서 쌓아둔 책이라는 게 하루에 한 권씩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읽지 않고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산다. 습관처럼. 그래도 이 책들이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허허 웃기까지 했다. 지식 노동자로서 내가 그렇다고 열심히 지식 노동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요즘은 자괴감이 든다.

내가 신체노동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저 공장에 들어갔다. 87년 공장의 환경은 열악하고 엉망이었다. 내 심정은 그로부터 몇 년후에 읽게 되었던 공장에 불을 질러 법정에 선 15살 어린 소년의 심정과 똑 같았다.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노동을 하게 된 소년은 일이 너무 힘들어 어떻게 하면 공장을 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년은 공장에 불을 질렀다. 공장에 불이나면 일을 쉴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라는 책에 부록으로 실려있다.

나는 그 때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자로서 살지는 않겠다. 신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말이다. 맑스의 말처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면 사람들은 노동을 마치 페스트처럼 기피할 것이다. 맑스는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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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노동이 노동자에게 외적이며, 즉 그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노동자는 그의 노동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고행으로 그의 신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그의 정신을 파멸시킨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자신과 함께 있다고 느끼며, 노동 속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떠나 있다고 느낀다. 노동자는 자신이 노동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노동을 할 때에는 편안하지 못하다. 그의 노동은 그러므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 강제 노동이다. 그의 노동은 그러므로 어떤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그의 노동 바깥에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의 노동의 낯설음은, 어떠한 신체적 혹은 기타의 강제도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노동이 마치 페스트처럼 기피된다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외적 노동, 즉 그 속에서 인간이 외화되는 노동은 자기 희생의 노동, 고행의 노동이다. 결국 노동자에 대한 노동의 외적 성격은 노동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의 것이라는 것, 노동이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 노동자가 노동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종교에서 인간의 환상, 인간의 두뇌, 인간의 심장의 자기 활동이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즉 신적인 혹은 악마적인 낯선 활동으로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듯이, 노동자의 활동은 그의 자기 활동이 아니라. 노동자의 활동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속하며, 그 자신의 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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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 21:07 2012/06/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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