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정서

갈무리 2015/02/08 23:07

똑같은 곡인데도 연주하는 사람마다 소리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의 연주는 거칠고 누구의 연주는 부드럽다. 다같은 곡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것은 이런 차이가 아닐까? 올해는 베토벤을 듣자는 마음으로 계속 자주 베토벤을 듣는다. 뭐 어떤 순서를 정해놓고 듣거나 학습하듯이 듣지 않기 때문에 마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듣는다. 어제는 심포니, 오늘은 소나타 이런 식인데, 그래도 어떤 기준이라면 첼로나 바이올린은 제일 나중에 듣는다는 거다. 이것도 자의적인 선호에 따른 것일 뿐이다.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의 베토벤 소나타는 내가 이전에 들었던 것과 좀, 아니 상당히 다른데, 이걸 완전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음악은 듣는 상황이 중요하다. 마음도 중요하고, 분위기도 중요하고, 헤드폰으로 들을 때와 이어폰이나 스피커로 들을 때가 다 다르다. 이런 차이들을 옆으로 제껴두고 말하자면 부드럽고 우아하고 차분하고 고요한 울림이 있다. 이런 수사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음악은 누구에게나 다 자기 식대로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완전히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클래식 음악 비평이란 어떤 것일까 고민해보지만, 음악을 비평하는 것은 회화나 영화 비평과는 사뭇 다르다. 고전주의든 낭만주의든 음악에도 일종의 내러티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의 내러티브는 작곡가의 직접적인 의도에서건, 이후 비평가들의 해석에 의해서건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오선지 위의 음표란 다른 공간에 배치된 음표에 의해, 그리고 악기들의 구성과 관련해서만 그 의미를 내재적으로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조형예술이나 영화나 문학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설정된 내러티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일정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코드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음악에서 불협화음과 협화음의 구분은 이전 시대와 달리 그렇게 인위적이지 않다.

 

음악은 다른 예술과 달리 우리의 감각에서 뇌로 직접 이동한다. 이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뇌를 직접 두드린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올바르다. 음악은 뇌에 직접 떨림을 전달한다. 마치 영화 이미지가 운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들뢰즈는 영화 이미지를 운동의 직접적 소여라고 말하는 데 사실 음악은 그런 매개조차 없이 바로 뇌에 작용한다. 음악은 뇌에 울림을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더 잘 듣고 좀 못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잘 못듣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 잘 들을 수 있다. 단지 듣고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를 뿐이다.

그래서 고양된 감정을 가질 수 있고, 감정의 고양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만큼 평등한 예술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직접적으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음악이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고양된 정신의 소유자는 고양된 정서를 표현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좋은 음악을 듣고 즐겨야 하는데, 그건 음악을 듣고 즐김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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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8 23:07 2015/02/0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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