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적]여의도 벙커
- 신동호 논설위원
- 입력 : 2015-07-27 21:39:49ㅣ수정 : 2015-07-27 21:41:16
그것은 1999년 10월 동베를린 중심가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히틀러가 최후를 마친 곳으로 유명한 ‘히틀러 벙커’ 얘기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해 옛 제국집정실 건물 정원 지하에 천장 2.8m, 외벽 2.2m 두께의 콘크리트로 지하 요새를 구축했다. 약 450㎡의 면적에 자신과 핵심 측근이 사용할 12개의 방을 설치했다. 그는 1945년 1월16일부터 이 벙커에 은신하다가 그해 4월29일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날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히틀러 벙커는 아무리 철옹성을 쌓아도 독재자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뒷날 소련군과 동독 정부는 나치 망령을 제거하기 위해 히틀러 벙커의 폭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외벽 일부만 손상됐을 뿐 파괴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주인을 파멸시키고도 건재하던 독재자의 흔적을 지운 것은 오히려 세월이었다. 독일 통일 후 잊혀져가던 히틀러 벙커에 대한 발굴 논의가 일었다. 독일 정부는 신나치의 성소가 될 것을 우려하며 반대하다 2006년에야 그 자리에 겨우 작은 표지판 하나 세웠다.
‘우연히’ 발견되기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여의도 벙커’도 마찬가지다. 2005년 4월 서울시가 대중교통 환승센터를 만들려고 현장조사를 하다 확인한 여의도 벙커는 규모 면에서 히틀러 벙커를 능가한다. 철문과 계단으로 연결된 160평 규모의 공간에 지휘대와 화장실, 기계실이 있고, 이 방과 복도로 이어진 20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소파와 화장실, 샤워실이 있다고 한다. 180평이면 594㎡로 히틀러 벙커의 약 1.3배 넓이다.
여의도 벙커 미스터리는 그것이 서울시나 수도방위사령부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시설물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군의 날’ 여의도 열병식 참관 때 유사시 대피할 방공호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한 사람, 이용한 사람이 살아 있을 텐데 나서서 설명하는 이가 없으니 이상하다. 아무 근거와 기록이 없는데 건설 비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서울시는 여의도 벙커를 지난 2월 보전해야 할 미래 유산으로 선정한 데 이어 최근 일반 개방 방침을 발표했다. 기록은 없는데 현물이 보존되고 증언하니 그나마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