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그냥 좋은 도구다. 도구라는 말이 도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논란들을 단순화해주는 측면이 있다. 그래도 도구는 도구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효과와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책과 컴퓨터의 차이가 엄청난 것처럼 인공지능은 그냥 컴퓨터가 아니다. 인간이 기억력이 한계가 있으니 활자를 통한 기억의 외부화와 컴퓨터가 인간의 기억을 외부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공지능은 기억을 외부화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외부화한다. 뭐 사람들 대부분 생각하지 않고 사니 누가 생각을 대신해준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다른 어떤 것이 생각을 대신해준다고 큰 차이가 있겠나.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틱톡이나 쇼츠, 릴스 이런 짧은 영상이 생각을 제거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나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어플들의 등장은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점처 제거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세 문장 이상 쓴 글은 잘 읽지 않는다.)

ChatGPT나 Gemini, Claude 같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제거하는 기술로는 단연 최고다. 생각하는 능력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한 건지도 모른다.

아마 2024년부터 대학에서 인문학 교양과목 강의를 하는 교수들 대부분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요약하고 감상문을 작성하는 과제를 성적 평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나는 올해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는 평가 항목을 없앴다. 이전에는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요약하고 감상문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과제를 내면 일부 학생들이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블로그나 여타 웹사이트에서 글을 긁어와서 짜집기해서 마치 자기가 쓴 것처럼 제출했다. 이건 좀 수고를 들여 채점을 하면 걸러낼 수 있었다.

AI가 나오면서 학생들은 그냥 대놓고 AI가 쓴 글을 그대로 긁어서 과제로 제출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과제를 하는 것을 부정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학생들은 AI를 활용하는 건데 뭐가 나쁘냐고 반문한다. “활용”이 뭔지 잔소리하는 것도 귀찮아 이번 학기에는 성적 평가에서 과제 항목 자체를 없앴다. 학생들도 좋아했다. 소위 윈윈했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글쓰기가 아니다. 주제를 정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굴리고 다른 것들과 연결하고, 자료를 찾고 주제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AI는 이걸 사람보다 더 잘한다. 그러니 곧 언론사에서 단순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는 기자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대신할 것이다. 결국 분석 기사와 칼럼도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대신할 공산이 크다.

내가 한겨레 신문의 저 짧은 서평을 읽고 문득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칼럼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ChatGPT와 Gemini에게 이런 칼럼을 하나 써보라고 했더니 3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칼럼을 쫙 썼다. ChatGPT는 무료 버전이고 Gemini는 유료 버전이다.

나 : 현재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의 전쟁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칼럼을 1600자 분량으로 작성해줘. 인문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독창적인 시각으로.

** ChatGPT :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지만,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인간만의 비극으로 머물지 않는다. 현재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단순한 지정학적 갈등을 넘어, 지구 환경 전체를 인질로 삼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전쟁을 정치나 안보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기존의 틀을 넘어, 생태적·존재론적 차원에서 다시 사유할 필요가 있다.

우선, 현대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환경 파괴 기계다. 정밀 타격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공습은 석유 시설, 항만, 산업 기반을 파괴하며 대기와 해양에 막대한 오염을 유발한다. 특히 중동 지역의 석유 인프라가 공격 대상이 될 경우, 그 여파는 단순한 지역적 재난이 아니라 전 지구적 탄소 순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불타는 유전과 유출된 원유는 생태계를 장기간에 걸쳐 황폐화시키며, 이는 인간이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이 환경을 ‘부수적 피해’로 간주하는 인식 구조에 있다.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자연은 여전히 전략적 자원으로만 이해되며, 파괴되어도 되는 배경으로 취급된다. 이 점에서 전쟁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자연을 침묵시키는 인식의 폭력이다. 다시 말해, 폭격 이전에 이미 자연은 개념적으로 ‘죽어 있는 것’으로 전제되고 있는 셈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사태는 근대적 주체 개념의 한계를 드러낸다. 국가라는 거대한 주체들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타자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 전체를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여기서 자연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계산되지 않는 것’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이러한 배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기와 해양, 생태계는 국경을 인식하지 않으며, 전쟁의 결과 역시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과연 전쟁은 누구의 것인가? 인간들 사이의 갈등이 왜 비인간 존재들의 파괴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만약 전쟁이 필연적이라 주장한다면, 그 필연성은 누구의 언어로, 어떤 존재들을 침묵시킨 채 구성된 것인가?

결국 오늘날의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종말을 드러내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갈등을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평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이해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전쟁을 멈추는 일은 곧 자연을 다시 말하게 하는 일이며, 그것은 인간 자신을 다시 사유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 Gemini :

잿빛 하늘 아래의 승자는 없다: 중동 전쟁이 지구에 새기는 지울 수 없는 흉터

2026년 현재,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성은 단순히 국경선의 변화나 정치적 주도권의 향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란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이 얽힌 이 거대한 화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발을 딛고 선 대지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전쟁을 바라볼 때,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이 지구라는 공동의 터전을 어떻게 제물로 삼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1. 탄소 발자국으로 뒤덮인 전장
우리는 흔히 전쟁을 총칼과 미사일의 숫자로 기억하지만, 그 이면에는 가공할만한 규모의 환경 파괴가 숨어 있습니다. 첨단 전투기가 한 번 출격할 때마다 뿜어내는 탄소량은 수만 명의 시민이 일 년 내내 일회용품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아낀 노력을 단숨에 무력화합니다.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장갑차가 질주하는 전장은 거대한 '탄소 공장'과 다름없습니다. 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대규모 군사 작전은 역설적으로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동의 하늘을 뒤덮은 것은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갉아먹는 검은 연기입니다.

2. 영토를 지키기 위해 영토를 죽이는 모순
전쟁의 당사국들은 모두 '내 땅'과 '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밀 타격이라는 미명 아래 석유 시설이 불타고 담수화 공장이 파괴될 때, 그 피해는 국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출된 원유는 페르시아만의 푸른 바다를 죽음의 빛깔로 물들이고, 폭발로 발생한 유독 물질은 바람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은 땅을 지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토양이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지하수가 독으로 변한 곳에서 거둔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인간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대지의 생명력을 탕진하는 행위는 미래 세대의 자원을 미리 훔쳐 쓰는 '세대적 도둑질'과 다름없습니다.

3. 국경보다 소중한 '숨 쉴 권리'
전쟁은 인간의 시야를 국경선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둡니다. 적을 섬멸하고 영토를 탈환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하여, 우리가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구 환경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중동의 비극은 곧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태평양 섬나라의 몰락을 앞당기며, 결국 우리 모두의 식탁을 위협합니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정치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무력합니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상대 진영의 군인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뿌리 내리고 살던 나무와 이름 모를 생물들, 그리고 그 생태계에 기대어 사는 무고한 생명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총구 앞에 선 적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총구가 겨누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직시해야 합니다.

결론: 새로운 평화의 정의가 필요할 때
이제 평화는 단순히 '총성이 멈춘 상태'를 넘어 '지구와 함께 공존하는 상태'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고결한 명분을 내세워도 지구의 숨통을 조이는 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2026년의 중동 전쟁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증오하며 파괴적인 기술력을 과시하는 동안, 우리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집인 지구가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는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단지 인간들 사이의 화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입니다.

잿빛 하늘 아래 승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상처 입은 지구와 그 위에서 신음하는 우리 모두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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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생존, ‘언어력’에 달렸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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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6 04:56 2026/04/26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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