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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뒷모습

  • 등록일
    2005/12/04 00:37
  • 수정일
    2005/12/04 00:37

휴가 하루 전날 전화가 왔었고, 다음 날 오전 11시에 녀석은 도착했다. 전날 아버지 선물 사가지고 일찍 들어가야겠다는 소리에 점심이나 먹고 보내면 되겠거니 하며 시작한 술자리는 거의 6시간 동안 이어졌다. 탕수육에 빼갈, 점심때 연 맥주집이 없으니 커피숖에서 병맥주. 그리고 나서는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고 우겨서 소주까지. 술이 오르는지 먼저 군대에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은 북한 인민들 문제를 가지고 짧은 입씨름을 해대고, 원래 하려던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이대로 공치는구나 싶어서 은근슬쩍 짜증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 술이 취할 대로 취했다. 새로 올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런 방문에 한낮에 달려올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 한편으로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꼬박꼬박 제일 먼저 만나고 챙겨주는 사람은 나다...

석 달 후면, 지겹게 볼 거라고.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힘주어 말하고선 일어섰다. 지하철역까지 바래다 주었다.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엔 부대에서 읽었던 극단의 시대며, 부하린의 글이며, 철학책이며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선 술에 취해 휘청휘청 걷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또 가슴을 쳤다. 안쓰러웠다.

녀석을 보낼 때면, 항상 그랬다. 가까운 사람과 헤어질 때, 꼭 한번씩 뒤돌아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아마 거의 매번 그랬지 싶다. 왜 그럴까. 내가 교만한 것일까. 아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녀석이기 때문에 안쓰러운 것인지. 아니면, 군복 때문에 안쓰러운 것인지. 둘 다인지. 정리안되는 생각 속에 욕지거리가 나왔다. 끌려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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